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조약돌의 반란 / 김종태

부흐고비 2021. 11. 18. 08:32

지난 5월 하순부터 내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걸음걸이가 약간씩 흔들리고,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곤하고, 갈증이 심하여 물통을 가지고 걸어야 했다. ‘금년에 처음 인생 80 고개 높은 문턱을 올라서는 순간의 설렘이겠지’ 하고 참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느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J 내과에서 심전도, 엑스레이 등 필요한 검사를 받은 결과 뚜렷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순환기 내과를 거쳐, 이비인후과 이동원 교수의 집도로 턱밑의 조약돌처럼 만져지던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이 이루어졌다.

약 1년 전부터 턱밑에 작은 조약돌 같은 것이 발견되었지만 아프지도 않고 생활에 지장도 없어 그냥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로 알았다. 한 주가 지나 수술 시 떼어낸 부분의 조직검사 결과는 ‘림프종(암)’임이 판명되었다. 이 문제의 조약돌이 바로 림프암. 이것이 큰 반란을 일으켜 나를 피곤하게 하고, 숨차게 하고, 갈증 유발과 허벅지 종아리 발목을 붓게 만든 주범이었단 말인가?

2년마다 하는 정기 건강검진에서는 나도 병원도 무관심했던 것 같다. 같은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배성화 교수 주관으로 6월 23일(수) 오후 채혈, 심전도 검사, 엑스레이 촬영 후 661호실 입원으로, 조약돌 반란군에게 완전 포위를 당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 나이에 이제는 지난 세월을 좀 이야기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 삶의 속도는 시속 130km이었다. 신호등의 좌회전 신호도 빨간 신호도 나에겐 없었다. 그저 맘대로 가도 되는 초록색 신호뿐이었다. 휴일도 평일도 없는 365일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완전한 공휴일이었다.

문필생활은 흉년을 모르고 문인들과 친구들과 술이 있는 곳은 언제나 풍년이었다. 독서와 수필은 이젠 안 하고 안 써도 그만이다. 무거운 짐을 다 벗어 던지고, 잠자리 날개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퇴직 생활과 황혼 생활의 참다운 맛을 만끽하며 살아가려고 했다.

지금 아들 두 명과 며느리들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손자 둘, 손녀 둘도 도담도담 잘 자라고 있으니 나는 복 많은 사람이다.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인생! 가는 그날까지 움직이며 보람샘이 마르도록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마지막 꿈이었다. 내가 겪은 경험은 어찌나 잔뿌리가 많은지 나도 잘 정리가 안 된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제국의 말기에 태어나, 해방과 초등학교 시절 6.25 전쟁을 겪고, 산골 마을에서 원시적 농경 생활을 거쳐, 초·중·고 교사와 고등학교 교장과 대학교수까지 경력을 쌓은 사람은 아마 전국에서도 몇 안 되는 교육실천가라고 나는 자부한다.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신 재주는 없다. 독특한 두뇌를 타고나서 공부를 계속한 게 아니고,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개발하여 실천에 옮기며, 오로지 남다르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내가 처한 환경이 주는 경험과 독서와 학문을 통해서 습득한 위인들의 생활철학을 기초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항상 구르며 자신을 예쁘게 단장하는 냇가의 조약돌과 같은 힘겨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보물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생스러웠던 인생살이에 대한 마르지 않는 땀방울이요 추억이다.

나는 또 내 인생을 변화시킨 3가지 자랑거리가 있다. 첫째는 마주 보는 산과 산의 거리가 100m 남짓한 깊은 산골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둘째는 나의 부모님이 농민이라는 점이요, 셋째는 나의 직업이 교육자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나는 땅을 파는 호미와 괭이 대신, 지식과 지혜를 파는 펜과 분필을 바꾸어 잡고 부조리한 세상을 교육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마치 홍수나 태풍이 오면 더욱 요란한 노래를 강바닥과 모래에 남기며 꾸준히 맡은 일을 다 하는 한 개의 조약돌이었다.

그런데 이 조약돌이 나를 병실이라는 곳에 잡아 가두고 고통과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날 허리뼈에 골수검사를 한 후 4시간 동안 꼼짝 않고 허리뼈를 침대 바닥에 대고 누워 있어야만 하는 것은 첫 번째 인내심을 시험하는 관문이었다. 오전부터 각종 검사로 시작된 골수검사는 오후가 훨씬 지나서야 그 지긋지긋한 부동자세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밤 12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무려 열한 시간 동안이나 음식은 물론, 물 한 방울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페트(Pet)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가뜩이나 침샘이 말라 견디기 힘든 상태인데 이건 정말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 사하라 사막을 낙타와 함께 걷는 상인들도 이런 목마름은 겪지 않았으리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땐 생수로 입안을 적시고 뱉어냈지만, 근본적인 갈증은 벗어날 수 없었다. 생애 최고의 인내심을 스스로 점검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온몸의 암세포와 한바탕 싸움인데 무엇을 못 참아내겠는가! 낮에 겪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밤사이에 모두 씻으려 했는데, 이건 또 웬일인가!

얇은 커튼 하나씩을 사이에 두고 6명이 같은 병실에서 입원 생활을 하는데, 그중 75세된 K씨는 밤새도록 미친 늑대 소리 같은 기침, 재채기, 큰소리 하품 등으로 이웃 환자들의 잠을 못 자게 한다. 그런데 맨 안쪽에 누워 있는 83세의 K씨는 치매 걸린 사람처럼 밤새 고함이다. “사람 살려”, “불이야”, “사람을 가두어 놓고 집에 안 보내준다”. “파출소에 가자”하다가 몹쓸 욕을 계속 혼자서 크게 지껄인다. 옆 사람이 시끄럽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문 간병인이 계속 달래도 소용이 없다.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한판 싸움이 일어난다. 환자를 완전히 물건 취급한다. 이것이야말로 낮에 겪었던 고통과 부동자세에 필요했던 인내심의 10배 이상의 고역이었다. 잠을 못 자게 하니 이보다 더 큰 형벌이 또 있을까? 억지로 참아가며 옛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지옥 같은 지겨운 밤을 보냈다. 애당초 입원실을 택할 때 독실은 외롭고 6인실을 내가 택한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살아온 속세(俗世)가 성소(聖所) 이였음을 깨닫게 한다.

아무튼 나는 환자다. 그래도 좀 똑똑한 환자에 속한다. 인생 ‘8춘기’에 들어선 기분이 꼭 ‘4춘기’ 같다. 내가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가져갈 추억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함께 살면서 서로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입원문화가 좀 더 개선될 필요는 있다. 세상 주변이 나에게 맞지 않다고 불평하지 말고, 나를 세상 주변에 맞추어 나가자고 마음을 바꾸니 떠드는 것도 노래로 들린다.

나는 성질이 좀 뜨겁다. 남자 화장실의 변기가 엉망이면 내가 대신 버튼을 눌러준다. 그런데 내 옆의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있는 나의 간병사는 70대 중반의 화가이다. 그녀는 전직 교육자 이였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했으니 나에겐 1등짜리 공짜 간병사이다. 아들 두 명도 함께 와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고, 며느리들은 컴퓨터로 서울의 첨단정보를 빠르게 전해주고 있다. ‘팔불출’이라는 말을 들어도 좋다. 어차피 나는 조약돌의 공격을 받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포항의 동생까지 입원실에 왔다. 5남매가 격려의 문자나 전화로 위로한다. 밤낮으로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아내는 일어나 철저히 살핀다. 그걸 말리거나 끊어버리면 진주 목걸이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

영국속담에 ‘아내 없는 사람은 지붕 없는 집과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용기와 희망을 갖고 일어서자. 고통을 이기려고 발버둥치면서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조약돌에 포위된 슬픈 난민.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온몸에서 슬픔이란 슬픔은 모조리 빠져나가고, 다시 생의 의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슈퍼 델타 코로나19의 확산, 최악의 상황에서 인생 공부를 하고, 병실의 노래를 부르자. 여기서 쓰러지지 않으려면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우치고, 같은 방에서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의 통로를 만들어 주자.

작은 의사는 질병만 돌보고 환자의 몸은 돌보지 않는 의사요, 보통 의사는 질병과 몸을 돌보고 병력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이며, 위대한 의사는 질병과 몸과 병력을 총체적으로 돌보는 의사라고 한다. 주치의 배성화 박사님은 환자의 말을 충분히 듣고 아픔의 구체적 사실을 파악하며 처방하려고 노력하는 친근한 모습이다.

의사는 희생과 봉사, 때로는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가지에서 곱게 피어나는 꽃이라 하겠다. “배성화 박사님, ‘배’달의 민족 ‘성화’가 이 가톨릭대학 메디컬 센터(Medical Center)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고, 전 세계에 빛을 발하도록 기도한다”는 나의 말에 함께 웃고, 다음부터 계속되는 통원치료 및 2차 입원 치료에 기대를 걸고 진료실을 나왔다.



김종태 프로필: 한국수필 문단 등단. 처용수필문학회, 토벽문학회, 교우회(대구교대 4회 동기회) 회장. 경상일보 교육Columnist. 교육부 · 문화체육부장관상, 국민훈장(홍조근정)

저서 : 교육에세이, 강의교재 40여 권, 박사학위논문 외 다수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 장기성  (0) 2021.11.18
셈법 / 김영희  (0) 2021.11.18
잊혀진 왕국 / 서영윤  (0) 2021.11.17
혼魂의 노래 / 최운숙  (0) 2021.11.17
나선형의 등 / 조옥상  (0) 2021.11.17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