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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먼 산자락을 휘감은 물안개가 서서히 옅어지며 강은 아침을 맞는다. 물결은 잔잔하게 흐르고 이따금 가마우지에 쫒긴 물고기들이 강물 위로 튀어 올랐다가 잽싸게 달아난다. 고기잡이 배 위에 백로 한 마리 하염없이 홀로 서 있다.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의 손길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녀석이 애처로이 고개 떨구면 어부는 못이긴 척, 작은 고기 서너 마리를 던져준다. 백로는 긴 목을 주억거리며 단번에 물고기를 집어 삼킨다. 나른한 강 수면에 비친 백로의 모습이 어인일로 낯이 익다. 요즘 나는 부쩍 시간을 잊은 채 세상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잦다.

여름이면 나와 아버지는 서로를 찾으면서 눈을 맞추기 바빴다. 집 근처의 금강으로 투망 메고 고기 잡으러 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누가 더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도 나만큼이나 고기잡이를 즐겼다. 아버지가 투망을 던지고 나는 어망 들고 따라다니면서 잡힌 고기를 들쳐 내고 담는 역할을 했다. 등짝이 따끔거릴 정도로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타원형을 그리며 투망을 던지는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버지가 그물을 감아 잡고 물가로 나올 때는 어떤 놈들이 걸려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파닥거리는 물고기의 하얀 비늘이 손바닥에 묻어 미끈거려도 그저 좋았다. 가슴은 들리고 콧구멍은 벙싯거리면서 입으로는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강 밑바닥에 큰 돌이 많을 경우에는 아버지는 그물을 잡고 계시고 나는 물에 들어가서 그물 아래를 누르며 돌을 피해 살살 걷었다. 우린 환상의 콤비였다. 물고기들이 도망가려고 정신없이 맴돌다가, 그물이 들리는 틈사이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다. 내 손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아예 강 밑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물을 들어 올리면 주렁주렁 물고기들이 매달려 나왔다. 피라미, 가라지, 마지, 동사리, 치러, 모래무지, 꺽지, 빠가사리, 메기, 돌고기 등 종류도 다양했다. 손 안에서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엄지와 검지로 눌러서 배를 따고 내장과 부레를 꺼낸 다음, 물에 휘휘 헹궈 양념고추장에 푹 찍어서 입안으로 날름 넣으면 촉감과 미각과 청각이 다 동원 되어 황홀하였다. 힘 좋은 놈들은 그 순간에도 고추장 묻은 몸을 틀어대며 요동치는 바람에 입 언저리를 빨갛게 물들여놓곤 하였다.

친구 같던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난 것은 내가 입대해서 근무 중이던 한 겨울의 일이었다. 위독하다는 관보를 받고 급히 기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겼다.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를 다시 뵐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지난 기억들이 아련해졌다.

추운 겨울에 군대에 보내놓은 큰 아들 생각이 나서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없다고 불도 안 때고 자려 해서 어머니를 울리셨다. 또 경찰서 의경 숙소에 찾아가 히터를 모든 내무반에 설치해 주시며, 이렇게 하면 내 아들도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지 않겠냐고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내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도록 마음의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동생을 파트너 삼아 아버지의 투망을 고향집 마당에 던지며 연습을 해 보아도 매번 반 정도 밖에는 펴지지 않았다. 서툰 솜씨로 강가에 가서 여러 번 그물을 던져봤지만, 빈 어망과 빈 가슴만 쓸어 담고 집으로 터덜거리며 돌아오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래서 다음에는 어항을 들고 강으로 나가 작은 피라미들을 잡아 튀김을 하고 어죽을 끓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얼마나 자주 강가에 가서 살았는지, 지금은 큰딸이 어항기술자로 성장하여 나보다 물고기를 더 잘 잡는다.

어느새 백로는 어부로부터 서너 차례 더 물고기를 얻어먹는다. 아마 거의 십 분마다 한 번씩 먹이를 던져주는 어부의 마음이 고마워서 고기잡이배를 떠나지 못하나 보다. 하도 오랫동안 강 쪽으로 목을 빼고 바라보느라, 나도 백로처럼 길어진 목을 주억거린다. 프로답게 어부의 손길은 재빠르다. 그물을 건져내는 솜씨가 익숙한 장인답다. 잘박잘박 소리 내며 강의 기억을 길어 올리는 그물코마다 은색 비늘 같은 싱싱한 시간들이 매달린다.

물안개가 말끔하게 걷히고 아침 해가 비친다. 구부정한 등으로 눈부신 해를 안고 그물을 던지는 아버지 모습이 부챗살처럼 강물에 퍼져나가고 있다. 상념에 젖어 강을 바라보다 흠칫 놀란다. 아버지가 손짓을 한다. 내내 물음표로 서있던 백로는 기다란 목을 끄덕인다. 배가 강을 헤치고 나아간다. 고깃배 난간에 앉은 백로의 눈에 설핏 강물이 흐른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버즘나무 댁' - 박정화

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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