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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월, 반곡지의 사랑 / 홍정식

부흐고비 2021. 12. 6. 17:21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반곡지(盤谷池)에 가면 사랑에 빠진다. 누구라도 그렇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냐고 묻는다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고 대답한다. 자식인 내가 지켜본 두 분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같이 살아도 따로 사는 것과 진배없다는 말이다. 그런 두 분이 반곡지에 서면 달라진다. 해서 삶의 불화가 일어나거나 적이 불편하다면 반곡지로 가 볼 일이다.

아버지의 말씀이다. 1968년 여름이었다. 네 어머니를 만난 때가. 1·21 사태가 일어나고 예비군법이 새로 만들어진 해였지. 참 오래된 이야기다. (아버지의 얘기는 주로 군대와 관련되어 시작되는데 아마도 해병대 출신인데다가 K2 공군부대 군무원으로 근무하신 탓이지 싶다.) 맞선 자리가 들어왔으니, 시간을 내어 남산면으로 가라는 전갈을 받았다.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라이방으로 멋을 좀 냈지. 그리고 고향 친구가 마침 수송대에 있어서 운전병 한 명과 지프차를 하나 배차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림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가능했다. 먼지가 폴폴 나는 시골길이었지. 한 시간여를 달려 네 외가에 도착했다. 대청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처녀가 있었는데 바로 네 어머니였다. 그런데 부끄러웠던지 내내 얼굴을 숙이고 있어서 도대체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일부러 사이다 잔을 쏟았다. 어머, 하며 일어서서 반상을 훔치는 네 어머니는 참 반반하고 봄 햇볕처럼 따뜻해 보이는 처녀였다. 그리고 달 같았다. 경산시 남산면 사월(沙月), ‘모래밭 위로 뜬 달’ 이라는 지명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는 아버지만의 지론이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남산면에서 걸어서 한나절 정도 걸리는 102년 신라에 합병된 압독국의, 후일 압량읍이 된 경산시 압량면에서 칠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한잔 걸치시는 날에는 어머니의 청순하고 순수한 그 얼굴에 반해 압량벌의 대장군의 기개로 네 어머니를 낚아챘다고 하셨다.

이에 대한 어머니의 말씀이다. 대청에 앉아 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흙먼지가 올라오더니 지프차에서 웬 말쑥한 청년 하나가 내리더라. 청년도 청년이었지만 지프차가 멋있더라. 시골에 자동차야 있을 리 만무하고 소달구지나 다니던 시절인데 얼굴은 희멀겋지, 공무원이라고 하지, 저 정도의 차도 부리지, 그만하면 됐구나 싶었다. 사이다를 반상 위에 놓고 앉았는데, 하얀 손이 보이더라. 평생 펜대만 잡고 사는 팔자니, 나도 거기에 잉크처럼 묻히면 되겠다 싶었지. 그때 네 아버지가 사이다를 쏟았는데 허둥지둥하던 내 모습이 참 쑥스러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칠 남매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지, 군무원의 월급도 장마철 순간의 햇살 같은 거야. 네 아버지는 그저 그런 말단 국방부의 공무원이었으며 몰락한 가문의 불운한 후손이었다. 이것이 어머니의 후일담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절반은 남산면 사월리에서 컸으며 절반은 대구의 동구 불로동(不老洞)에서 컸다. 어머니의 보름달 같던 얼굴은 아버지의 퇴직과 연이은 사기 피해 그리고 사업 실패로 모래성처럼 쉽게 사그라져 갔다. 늙지 않는 동네인 불로동에 산다는 말이 무색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사월의 외가로 갔다. 그리고는 달이 찰 때까지 오지 않았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오길 자라목 뽑듯 내놓고 기다리다 지치면 반곡지로 물고기 사냥을 나갔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낚시에 일가견이 있었다. 자인면까지 나가 조립 낚시를 사고 외갓집 뒤에 무수히 자란 대나무 중에 죽 뻗은 장대를 꺾어 낚싯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엄 밭에서 지렁이를 잡고 보리밥에 참기름을 비볐다. 손바닥만 한 붕어나 중지 크기의 피라미를 망태기에 가득 담아 오면 외할머니는 즉시 붕어들의 불룩한 배를 가르고 매운탕을 끓이고 피라미 조림을 만들어 홀쭉한 내 배를 채우게 했다. 반곡지의 붕어는 맛이 남달랐고 간혹 눈먼 메기가 올라오는 때가 있었으므로 서둘러도 한 시간은 걸리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에 의기양양 어린 꾼은 낚싯대를 둘러맸다. 그 출정 길에 배가 출출하거나 목이 마르면 희뿌연 새벽이 사그라질 무렵 못 주변으로 지천이었던 천도복숭아를 몰래 베어 먹었다. 천진난만한 시절이었다.

며칠 전 여든의 나이를 훌쩍 넘겨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 아버지와 등이 복숭아나무 가지처럼 휜 어머니를 모시고 반곡지에 다녀왔다. 초록의 포도들이 알 굵게 여물어가는 상대동 밭 사이로 잘 닦인 포장도로를 달려 지날 때 어머니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현재의 상대 온천과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터라 어머니는 동네 처녀들과 빨래하러 상대동으로 다니곤 했다. 겨울에도 물이 따뜻해 하대동이나 전지동, 반곡동에서도 머리에 빨래를 이고 왔다. 친구들이 모이면 빨래는 핑계였고 처녀들은 수다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스물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리고 시집을 가서 이 빨래 땟국물처럼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처녀들이 팔순의 나이가 다 넘었으니 참 웃긴다. 달도 그대로고 나무도 그대론데 우리만 늙었구나, 하신다.

근데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지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압량과 남산은 작은 개천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그래도 산 넘고 물 건너야 이어지는 거지. 두 지역을 잇는 건 자인(慈仁)면이었다. 그 이름이 참 기막히게 멋지다. 인자한(仁) 어머니의 마음(慈) 아니겠니. 자인면에서 벌어지는 장날이면 모두가 모이게 마련이었다. 당시 자인 장은 우시장과 염소 시장으로 유명하고 특히 제사상에 올릴 돔배기 산적거리는 꼭 자인 장에서 사야 했다. 그 맛이 특출 났다. 아마도 오 일을 두고 열리던 자인의 어느 장날이었지. 일찍 남편들을 멀리 보낸 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이 염소를 두고 흥정을 하다가 장날 쌀 팔 듯이 자녀 혼사를 이야기하신 거지.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너도 있고.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곡지를 여유롭게 걸으신다. 그때의 외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드신 어머니와 눈부신 팔월 볕에 씀벅씀벅한 눈으로 돌아보시는 아버지의 기억을 사월동 먼 하늘에 걸린 낮달이 비춘다. 신라의 처녀와 압독국의 총각도 어느 날 이곳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을까? 천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나는 뒤에서 선남선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반곡지의 윤슬도 살아나 좋은 배경이 된다. 사랑하고 싶은 날이다.

수상소감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은 더 좋아하며 읽는 것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어느 날 도서관이 좋아졌고 나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다가왔습니다.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움에 대한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 고백이 누군가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그리움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늘 독서의 힘을 강조해 왔습니다. 대구일보에서 제 글을 잘 봐주셔서 이제 조금 더 큰 소리로 ‘독서가 최고의 즐거움이다’ 라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해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늘 저에게 늘 기쁨이 되고 삶의 이유가 되는 가족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지만요.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광중학교 교사 △대구수필창작대 수료 △대구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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