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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발해를 꿈꾸며 / 정영태

by 부흐고비 2021. 12. 6.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우리는 매 순간 꿈을 향해 나간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발해가 멸망한 지 천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 옛날 영광을 되찾으려는 사람이다. 그들이 모여 사는 경상북도 경산시 발해 마을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일까. 발해를 건국한 사람은 고구려 후예들이다. 고구려가 신라에 나라를 넘겨준 후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요동 땅으로 가서 발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696년 건국해 230여 년을 부국강병 국가로 성장했다. 바다 동쪽의 번창한 나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부유하게 살던 발해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멸망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권력층의 내부 분열과 거란의 잦은 침입이 주된 원인이었다.

한순간에 분해된 발해, 발해가 멸망하자 그 후예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고구려 후손이 세운 고려로 돌아왔다. 발해 세자 대광현은 수만 명의 민중을 데리고 고려로 귀화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이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원보수(元甫守)라는 벼슬과 함께 대(大) 씨에서 태(太)씨로 사성(賜姓) 내렸다고 한다. 그들은 고려로 귀화한 후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일부는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복숭아가 붉게 익는 7월 어느 날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국도변에서 우연히 마주친 마을 표지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발해 마을’,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해라는 이름에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좁다란 다리를 건너니 마을은 복숭아밭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복숭아가 익는 계절이라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고 군침을 돌게 했다. 나뭇가지마다 불그스름한 복숭아가 탐스럽게 달렸다. 복숭아나무 밑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수확에 한창이었다.

마을 들머리에는 공동 창고가 있었다. 창고 안에서는 방금 딴 복숭아를 수북이 쌓아 놓고 아주머니 대여섯 분이 박스에 담고 포장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발해 마을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워낙 바삐 움직이니 말 걸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혼자 마을 한 바퀴를 돌아볼 요량으로 동네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벽화였다. 마을 담벼락에는 크고 작은 그림들로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 활약상을 벽화로 다시 승화시켰다. 말을 타고 넓은 광야를 호쾌하게 누비는 모습은 사실적이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칼과 창을 높이 들고 위엄 있는 자세로 호령하는 모습, 병사들과 승리의 환호를 외치는 장면 등 다양하게 그려 놓았다.

안쪽으로 더 올라가니 대조영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태극기와 마을에서 제작한 발해를 상징하는 깃발이 하늘 높이 펄럭이고 있었다. 집주인을 불러 봐도 인기척이 없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상현사(尙賢祠)는 1920년경 후손들이 사당을 만들어 매년 춘분과 추분에 대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 안에는 대조영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영정은 살아 있는 후손을 대상으로 머리 모양을 기준으로 삼아 복원을 했다고 한다.

송백리에 발해 마을 형성은 임진왜란 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조영 장군 부친인 대종상 선생의 31세손 태순금 선생이 문경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터를 잡았다. 그들은 송백리에 살면서 가문이 번성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했다고 한다. 당시 마을 일대와 청도까지 땅을 넓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태씨는 일만여 명이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발해 마을은 유일한 태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재 남천면 송백리에는 스물일곱 가구에 사십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근래 들어 중국이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더니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우리 고구려와 발해, 심지어 고조선까지 자기들 역사라며 왜곡하고 있다. 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东北边疆历史与现状系列研究工程) 줄임말로 중국의 동북부 만주 지역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국가 산업이다. 그 핵심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 고대역사까지 자기들 조상이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음식 김치부터 한복, 삼계탕, 비빔밥까지 그들의 문화라고 얼토당토않게 우기고 있다. 하지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후손이 대한민국에 엄연히 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땅에 발해를 뿌리로 둔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뜻밖이었다.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니 현재 우리네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 산업화에 밀려 젊은이는 도시로 나가고 나이 드신 분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끼리 어울려 복숭아밭에서 함께 일하며 나름대로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곳곳에 발해 후손이란 자부심은 대단했다. 마을 담벼락에 그려 놓은 대조영 장군의 활약상과 발해 깃발, 무엇보다 태씨라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대문 앞에는 봉황무늬에 태씨 몇 대손이라는 문패가 부부 이름으로 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발해를 꿈꾸며, 구십 년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그룹 가수가 부른 노래 곡목이다.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염원한다는 노랫말이 대부분이지만 진정으로 발해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살고 있다.

수상소감

농부는 봄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보아 수확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결실의 계절 가을에 작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 입상이란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지난해부터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로 절제된 가운데 소소한 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눈여겨보았던 것을 글로 옮겨봤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입상작으로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함께 한 지인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계간 ‘문장’ 신인상 △문장작가회 회원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한국 수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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