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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웃는 보살 / 남정언

부흐고비 2021. 12. 9. 12:12

솔바람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혼자 걷거나 여럿이 걸어도 좋다. 운문사 가는 길은 반듯하게 닦은 도로와 물소리 바람 소리가 이끄는 계곡 따라 사리암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호흡이 힘들지 않다. 여름 야생화는 사그라졌지만, 실한 열매가 매달려 있는 넉넉한 풍경이다. 굵직한 나무만 바라봐도 흡족한 길이다. 자동차를 타고 휙 지나쳐 버리면 결코 누릴 수 없는 싱그러운 바람에 울적했던 마음을 풀어낸다.

천천히 숲길을 걷는다. 키 큰 나무 작은 나무, 노숙한 나무 어린나무, 피는 꽃과 지는 꽃이 공존하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한적한 숲이 펼쳐진다. 이런 호젓한 길을 걷고 싶었다. 누구와 길을 걷는가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늘과 땅, 바람과 나무 사이에서 막힌 감정 없이 거창하지 않은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행복하다.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소소한 만족을 뜻하리라. 정情을 나누며 걷는 길이 값지고 진지하다.

어느 봄날이었나. 진달래와 벚꽃이 만개한 연보랏빛 길 위에 나들이 나온 비구니 스님의 명상 행렬을 지켜보며 가슴 아린 아름다움을 느꼈다. 봄꽃 속에 핀 꽃이었다. 한 줄로 조용히 걸어가는 스님들 걸음은 산만한 봄을 들뜨지 않게 조율해 주었다. 여름날엔 녹양방초로 흐드러진 길이었다. 하늘 향한 적송이 늠름한 솔향을 품어내었는데 어느새 계절은 붉고 노란 단풍으로 어우러지는 가을이다. 천년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면 온후한 반송을 제일 먼저 만난다. 감나무와 모과나무가 풍성한 자태를 뽐내고, 건너편 전각에 우뚝 솟은 은행나무가 마중 나와 노란 은행잎을 뿌린다. 온통 황금빛이다.

화랑 동산에 나무 종류가 다양하다. 키 큰 후박나무, 잣나무, 화살나무, 보리수가 꽃과 풀을 배경으로 듬직하다. 누가 더 잘났다며 나서지도 않는다.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에 나비와 벌이 함께 춤을 추는 자연 속에서 바람처럼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바쁘다 핑계 대며 중심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기대하는 덜 여문 씨앗은 아니었을까. 부족함을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여기며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 적은 없는지. 진심을 담은 오지랖이 진심 없이 반사된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가 일어났는데 숨어있던 미움은 붉은 단풍보다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숨을 낮추었다. 서로의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물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외부인 출입 금지’ 푯말이 걸린 불이문 앞에 섰다. 사백 년 수령의 은행나무 한 쌍이 담장 안에서 와르르 금빛을 쏟아낸다. 일 년 중 11월 첫 번째 주말만 앞마당을 개방한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린다. 처진 소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카메라 줌이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따라갔는데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사철 푸른 반송과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명품 사진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반송은 땅을 보고 웃고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다.

세월이 흐르는 곳에서 시간이 멈춘 곳이 있다. 호거산 높은 산세와 멋진 전각 끝에 닿으려는 쭉쭉 뻗은 적송과는 달리 땅바닥을 향해 둥그렇게 퍼진 나무,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가 내 심장에 꽂혔다. 솔바람 따라 시간이 흐르지만, 반송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오백 년 세월이 멈추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나무는 바닥을 향해 오체투지 하는 몸체로 보인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사방팔방 교만하게 웃고 있는 입매가 아니라 나지막한 곳을 두루 내려다보며 선하게 살피고 있는 관음보살의 미소였다.

삼월 삼짇날 막걸리 열두 말을 물에 타 영양제로 마시면 기분 좋게 취하는 반송. 몸색을 바꾸지 않고 몸피만 원만하게 자라 스스로 가지 근육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반송. 그늘을 넓게 만들어 근심의 내 고통을 덜어주려는 듯 푸근하게 안아준다.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 안내뿐만 아니라 서투른 인생길을 겸손하게 살아가라고 안내하는 하심下心의 나무라 하겠다.

나무는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자태 곱고 향기 나는 꽃들이 피고 져도 시기하지 않으며 주위를 덤덤하게 지킨다. 함께 손잡고 팔짱 끼며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눈과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드는 나무에 동화되어 모두 화안시 보살이 되어간다. 아마 '어우러진다'는 말은 보살과 딱 어울리는 말이리라.

보리수 아래 나무 의자에 편하게 앉는다. 소복하게 쌓인 연갈색 열매를 매만지며 몸속에 층층이 쌓여있던 미운 마음을 덜어내고 우울한 생각도 털어낸다. 솔바람 길에 서 있는 나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억지로 줄 서지 않아 자연스럽지 않은가. 마음의 도량이 더욱 넓어지는 듯하다. 진심으로 내민 손을 맞잡고 동행하는 지혜를 묵묵히 체득하고 있다.

화랑 동산을 빙 돌아 나온다. 삼층 석탑 앞에서 온몸을 구부려 절을 하는 여인이 보인다. 나이가 육십 중반은 넘었을까. 자그마한 키에 빛바랜 법복을 입은 몸이 허리를 펴다가 내 눈과 마주하자 맑게 웃는다. 혹시 저 평범한 보살님은 절간 안살림을 지키는 공양주 보살이 아닐까. 처진 소나무 풍채를 닮은 보살님과 서로 눈 바래며 걸음을 옮긴다.

빗살무늬 돌담 아래서 되돌아본 반송의 너그러운 미소가 나에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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