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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내곡동 동해고속도로 교각 아래서 같은 곳을 맴돌았다. 신복사 터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있었으나 도로와 야산을 두루뭉술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이럴 땐 큰길을 표시하는 거라고 알았던 터라, 믿는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힌 격이었다. 간간이 오가는 지역 사람조차 절터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으니 난감했다. 그냥 포기 할까 망설이다 조금만 더 고생해 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위성 지도를 열어 대략의 위치를 파악하니 내곡동 소방서 근처 안골이라는 곳이었다. 내곡동의 ‘내곡內谷’ 한자를 살펴보니 안골과 맞닿는다. 소방서 뒤 야산으로 향했다. 초입이 워낙 허름해, 이런 곳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뒤따랐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큼 폭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니 왼쪽에 ‘강릉 김씨 재실’이 있고, 오른쪽엔 어린이집이 나타난다. 이내 시멘트 길이 끊어지고, 비포장 길이 이어진다. 야산 어디에서 울어대는 산짐승 소리와 스치는 바람 소리가 늦가을의 스산함과 더해져 두려움을 자아낸다.

엷어지는 어둠 사이로 나무의 윤곽이 드러난다. 때로는 요상한 형체로 일렁인다. 야산을 가로지른 길은, 점점 험해지다 산허리 어디쯤에서 굽어진다. 겁 없는 내가 겁부터 잔뜩 집어먹는다. 간간이 산책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참 다행이다. 그러나 절터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없다. 몇 명의 사람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점점 불투명해지는 곳을 이대로 놓칠까 걱정이 됐다. 그때 한 중년의 여성이 갸우뚱하며 말을 덧붙인다.

“이 동네서 삼십 년을 살았는데...요. 절터라는 말은 못 들어봤고... 이 길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굽어지는 길 왼쪽 야산에 탑이 있긴해요.”

직감했다. 내가 찾는 곳이라는 것을, 적당한 긴장감이 돌고 가슴이 띈다. 걸음이 빨라진다. 오랫동안 궁금해하던 것을 만나기 위한 신선한 설렘이다.

신복사 터는 바로 코앞이었다. 강릉 시내의 야산, 길이 난 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나무숲에 폭 안겼다. 비바람도 피해 갈 것같이 아늑한 곳이다. 묽은 어둠 속 누군가 탑을 향해 앉아 있다. 기도를 올리는 모양이다. 방해할까 걸음을 단정히 하여 절터로 오른다. 숲속엔 새들이 요란하다. 이따금 고라니 소리도 들린다. 깊지 않은 산인데도 날짐승의 자취가 묻어난다.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과 산빛이 맞닿아 절터는 한없이 맑고 깨끗하다.

석축에 올라섰을 때 탑을 향해 앉아 있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석조물이라는 걸 알았다. 보물로 지정된 석조보살좌상이다. 강릉에서는 ‘명주보살’로 불린다. 강릉은 고구려 때 해와 밝음을 뜻하는 하슬라'로 불렸다가 신라에 이르러 ‘명주’로 불렸다.

어둠 속 보살의 뒤태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다. 해가 성긋 솟아오르자 팔각 지붕돌을 머리에 인 보살의 은은한 미소가 감돈다. 회색의 석상인데도 비루하거나 남루하지 않다. 장신구나 의복의 조각이 사실처럼 세심하고 화려해 귀한 태가 흐른다. 목걸이와 팔찌를 조각했으며, 어깨와 가슴에 두른 천의天衣에서도 부유함이 묻어난다. 옷자락의 흘러내림이나 주름의 주름의 굴곡이 자연스러워 바람에 일렁이는 듯하다. 한쪽 무릎은 꿇고 한쪽은 세운 자세로 두 손을 가슴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무엇을 받들고 있는 모습은 영원한 공양의 상징이 되었다. 석탑을 바라보는 눈길은 온화하다. 은은하게 머금은 미소는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닌, 감사함과 존경이 서린 듯 따뜻하다.

명주보살이 우러러보는 것은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다. 고려 시대의 작품인 석탑 역시 귀한 태가 흐른다. 바닥돌엔 사방으로 화려하게 연꽃을 조각했고, 탑 꼭대기에는 막 피기 시작한 연꽃봉오리 안에 동그란 머릿돌을 장식으로 얹었다. 웅장하진 않지만, 각 층마다 탑신부 와 지붕돌 사이에 받침돌까지 끼워 넣어 화려하면서도 복잡한 구조를 띤다. 받침돌이 조금씩 갈라지긴 했어도, 그다지 큰 손상은 없다. 현대에 이르러 다시 만들어 세웠다 해도 믿길 만큼 보존 상태가 좋다. 긴 세월, 이만큼 온전한 모습으로 버터준 것도 드물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에도 석조보살이 탑을 향해 앉아 있다. 이렇게 석조보살이 탑을 향하고 있는 것은 강원도 지방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신복사는 범일국사가 굴산사와 함께 신라 때 창건한 절로 알려졌다. 복을 찾는 곳을 뜻하는 ‘심복 尋福’, 신이 앉은 땅 ‘신복神伏’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때 ‘신복新福’이라 새겨진 명문기와 조각이 발견되면서, ‘신복사新福寺'로 부르게 되었다.

삼층석탑 뒤 야산에 금당지가, 왼쪽과 오른쪽엔 회랑의 흔적이 있다. 현재 절터로 남아있는 넓이로 보아 그리 큰 절은 아니었다. 강원도 명주 지역은 왕도에 버금가는 불교문화가 깃든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석탑이나 보살상에 굶주리거나 초라한 행색보다 부유함이 강하게 묻 어난다.

절터 앞엔 고층 아파트가 있다. 도심의 야산, 조용하고 한적해 사색하기 그만인 위치다. 햇살이 비쳐드는 따뜻한 아침이다. 어떠한 불미스러움도 거치지 않은 맑은 햇살이다. 절터는 더욱 따뜻하고, 아늑하고, 깨끗하기까지 하다. 좋은 기운이 모이는 명당이란 이런 곳이 아닐까. 바람과 햇살조차도 탐스럽게 들고 나는 곳, 어떤 시련도 겪지 았을 것만 같은 온화한 절터의 느낌이다. 중후하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메마르지 않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여느 폐사된 절터에 느껴지는 쓸쓸함이나 공허함, 고적함을 밀어낸다. 긴장이 풀린 탓인 몸이 나른해진다.

구김살 없는 석탑과 보살은, 세상 가장 안온한 미소로 사람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명주보살의 무릎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먼 곳까지 오느라 고단했을 내가, 간밤에 잠을 설쳤다는 걸 아는지 무릎이라도 내어줄 모양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보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 한숨 푹 잤으면 그만이겠다. 쏟아지는 잠을 애써 쫓고 싶지 않아 풀숲에 털썩 주저앉는다. 세상만사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지금의 이 행복만 누리고픈 아침이다. 일탈의 짜릿함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석탑과 명주보살 사이에 무수히 많은 계절과 사람들이 들고 났으리라. 영겁의 시간이 흘러, 나는 이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명주보살과 마주한다.

글,사진 박시윤 지음, 디앤씨북스 펴냄

 

 

부산 만덕동 절터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어찌 그릇된 것이랴 / 박시윤

 경주 용장사 터 - 주인 없는 허공에 발 딛고 서니 / 박시윤

 합천 영암사터 –눈 감고 들었네, 바람이 전하는 말 / 박시윤

 경주 감은사 터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 박시윤
 속초 향성사 터 – 그리하여, 오래오래 눈이 내렸다 / 박시윤
 고성 탑동리 절터 –볼 것 하나 없으면 어떠리 / 박시윤
 울진 구산리 절터 -바람이 흔들면 못 이긴 척 따라 나섰다 / 박시윤
 울산 운흥사 터 –구름에 들었는가, 안개에 휩싸였는가 / 박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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