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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눈물에 젖은 연하장 / 목성균

부흐고비 2021. 12. 25. 11:11

크리스마스카드는 젊은 날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애틋한 마음이고, 연하장은 세상 물정 아는 사내들이 주고받는 우정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근하신년(謹賀新年)’이나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덕담이기는 마찬가지인데 내게는 그리 느껴진다.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을 주고받아 보지 못한 나의 젊은 날은 너무 가난해서 섣달그믐쯤 노을진 빈 들녘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처연(然)하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크리스마스카드는 낯선 데 비해서, 연하장은 입던 옷같이 친숙하고, 간혹 잔잔한 추억도 한둘쯤은 깃들어 있다. 그 중하나가 장래가 불확실한 젊은 날 정섭이와 주고받은 눈[雪]물인지 눈[眼]물인지에 젖은 연하우편엽서로 된 연하장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를 짓던 해 겨울, 함박눈이 지는 어느 날이었다. 우체부가 눈에 쫓기듯 사랑 뜰 위로 올라와서 귀까지 덮는 털모자를 벗어서 툭탁툭탁 눈을 털고 내년 보리 풍년은 따 놓은 당상(堂上)이라며 마실꾼처럼 방으로 들어왔다.

마침 점심상을 물린 뒤였고 아버지도 사랑방에 계셨다. 아버지가 안채에 대고 찬밥이라도 있으면 볶아 내오라고 소리를 치셨다. 어머니가 옹솥에다 김치를 썰어 넣고 식은 조밥을 들기름 시 보아서 내오셨다. 방금 아버지와 나도 그렇게 볶은 밥을 먹고 난 후였다. 우체부는 밥을 먹고 나서 눈이 더 쌓이기 전에 가야한다며 돌리지 못한 동네 우편물을 밤에 마실꾼들이 오거든 돌려 달라며 떠넘기고 갔다.

그 우편물 속에 정섭이의 연하우편엽서가 있었다. 그게 내가 처음 받아본 연하장이다. 우표가 인쇄된 앞면은 방문에 발갛게 등잔불을 밝혀 놓은 산골 초가집 몇 채가 모여 앉아서 주먹 같은 함박눈에 파묻히는 전형적인 연하장 그림이 오프셋 인쇄되어 있고, 뒷면에는 사연이 깨알같이 박여 있었다.

그 사연을 지금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눈이 와서 네 생각하며, 걷다 보니 면소재지까지 오게 되어 우체국에 들러 이 우편엽서를 쓴다는 요지의 서두와 그 해 농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고, 그래도 우리는 젊으니까 좌절하지 말자는 뜨거운 마음을 피력했던 것 같다. 두어 군데 잉크가 물에 번진 자국이 있었다. 눈[雪]에 젖은 자국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정섭의 눈물자국 같아서 그가 사는 월악산 산골짜기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디.

나는 여름에 정섭이네 집에 다녀왔다. 그의 아버지가 지병인 장결핵으로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다. 가세는 기울 대로 기울어 마을에서도 떨어진 월악산 깊숙한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다. 논은 한 마지기도 없고 산전뿐인데 그나마 척박해서 전부 콩을 갈았다. 콩은 잘된 것 같아 보였다.

그 날 밤 우리는 별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너럭바위에 앉아 서 이슬에 흠뻑 젖으며 밤을 새웠다. 정섭은 콩 작황에 만족한 듯 너구리굴 보고 피물(皮物) 돈 내 쓰듯 몇 년 고생하면 황새가 끼룩끼룩하는 문전옥답을 사 가지고 마을로 내려갈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콩농사가 예상에서 빗나갔나, 아니면 콩값이 폭락했나, 엽서의 내용이 염세적이었다. 절망적인 정섭의 얼굴이 떠올라서 견딜 수 없었다.

정섭이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3학년 동안 한 책상을 사용했다. 그는 공부를 잘했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내라고 했을 정도다. 생각하니까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할 것이 아니고 뙤약볕에서 콩농사 짓듯 공부를 해서 잘한 것 같다. 졸업을 하고 교문 앞에서 헤어질 때 내 손 을 꽉 잡은 그의 억센 손아귀의 힘이 왜 그리 슬프던지 우리는 눈물이 글썽한 눈맞춤을 하고 이쪽저쪽으로 헤어졌다.

정섭이가 함박눈이 쏟아지는 월악산 골짜기의 먼 산길을 걸어서 한수 장터 우체국에 이르는 동안 열불 나는 마음은 다스려졌을까 생각하니까 교문 앞에서 내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눈물이 글썽하던 녀석의 얼굴이 생각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군용담요 기지로 만든 아버지 잠바를 끼어 입고 집을 나섰다.

나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연풍 장터 우체국에 가서 정섭에게 연하우편을 부치고 싶었다. 정섭이가 보내온 것과 똑같은 그림엽서에 방금 네 엽서를 받고 나도 네 생각에 눈 오는 십여 리 길을 와서 연풍 장터 우체국에서 이 엽서를 쓴다는 말을 서두로, 제발 내년에는 콩농사가 풍년이 들어서 네가 황새가 끼룩끼룩 나는 문전옥답을 사 가지고 마을로 내려가기 바란다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꼭 같은 우정의 태도로 답례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그 녀석의 좌절감을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풀 릴 것 같았다.

집에서 연풍 장터까지는 산골짜기를 지나서, 고개를 넘어서, 냇물을 건너가야 닿는 십릿길이지만, 눈을 감고 가도 갈 수 있는 눈에 익은 초등학교 통학 길이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어디쯤 걸려 넘어질 우려가 있는 돌부리가 있는지 눈에 선한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눈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짐작으로 눈 속에 곤두박질을 하며 걸어갔다. 눈 속에 가뭇하게 묻힌 장터마을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냇둑에 이르렀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우체국에 들어갔더니 직원들이 난롯가에 둘러서서 웅성거리고 있다가 놀라서 난로 곁의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었다. 벌겋게 단 톱밥 난로 곁에 서 있으니까 흠뻑 젖은 잠바에서 김이 떡시루처럼 올랐다. 교환원 아가씨가 보고 웃었다. 비웃는 웃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창피했다.

엽서를 써서 우편물 투입구에 넣고 나니 이미 날은 어둡고 있었다. 우체국 직원들이 숙직실에서 자고 가라고 붙드는 걸 뿌리 치고 떠났다. 눈발은 그쳐가고 있었다. 잊었던 기억인 양 한 송이씩 살포시 내릴 뿐이었다.

고개를 넘어 산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눈은 완전히 그쳤다. 하늘은 흐린데 달이 있는 것인지 눈빛 때문인지 골짜기는 환했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하니
산심야심객수심(山深夜深客愁深)이라



어디서 캥캥거리고 노루가 짖었다. 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났을 때처럼 마음이 호기로 벅찼다. 문득 김삿갓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도 정섭의 연하장을 받는다. 이 녀석이 사회적인 제 신분 때문인지 남대문 대문짝만한 연하장을 보내서 불쾌한 생각이 들다가도 변하지 않은 그리운 필체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연하장 보내 달라’ 쓴 덕담에 현혹되어 커다란 연하장을 받는 게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

녀석은 국책 은행의 이사까지 했다. 콩농사 짓듯 하면 못할 게 없다고 큰소리치며 월악산 골짜기에 별장 같은 집을 짓고 산다.

나는 올해도 이형도 화백의 ‘연곡의 유월’이란 산골 풍경이 그려진 우체국 연하장을 정섭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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