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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액자에 대한 유감 / 목성균

부흐고비 2021. 12. 25. 12:23

지방관아 아전의 집, 품격을 못 갖춘 거실 벽면에 길이 170센티미터, 폭 50센티미터쯤 되는 서예(書藝)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액자는 열네 자의 한자를 초서로 쓴 것인데, 내 얕은 진서(眞書) 실력으로는 고작 여섯 자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초서라 모르는 글자를 옥편으로 찾아볼 수도 없었다. 글자의 앞뒤를 어림짐작으로 맞춰 가며 유추해석을 시도해 보았으나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만 표구(表具)의 용도로만 걸어 두고 볼 뿐이었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 간에 허전한 벽면에 잘 만든 표구가 한 점 환경정리용으로 걸려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 친구들 외에는 이 액자의 내용에 대해서 물어 본 사람이 없었다. 다행한 일이다. 우리 집에는 아직 이 액자의 내용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만큼 서예에 안목이 깊은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찾아올 리 없다. 가끔 흉허물없는 친구가 찾아 와서 “야, 이 액자 좋다. 얼마짜리냐?” 하며 표구의 환금성(換金性)에만 관심을 기울일지언정 정작 “뭐라고 쓴 거냐? 잘 쓴 거냐?” 하고 문화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친구는 없었다. 나하고 같은 문화수준들이기 때문이다. 또 물어 보았다 해도 “나도 잘 몰라” 했을 것이고 친구는 “그럼 이 액자는 개발에 편자 격이네” 했을 터이지만 내 자존심에는 하등 지장이 될 리도 없다.

그런데 요즈음 와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군에서 제대한 아들놈이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들락거리는데, 다들 대학물을 먹은 녀석들이다. 어떤 녀석은 액자 앞에 한참 서서 제법 서예에 대한 관심이 예사롭지 않은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런 녀석이 불쑥 글의 내용을 물어 온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친구들이 물었을 때처럼 모른다고 한다면 내 체면은 고사하고 그런 아비 앞에 서 있는 자식의 체면은 뭐가 되겠는가.

내가 이 액자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것은 액자가 어느 날 돌연히 불청객처럼 우리 집 거실의 벽면을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액자를 선물한 분은 법광(法光)이라는 스님이다. 이 분이 민원 관계로 나와 몇 번 만나면서 안면이 익자 식사라도 한번 하자고 청해 왔는데 나는 거절을 했다. 내가 청백리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낯가림을 하는 터라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겸상이 싫어서 그 분의 성의에 무례를 범한 것뿐이다. 그런 나를 스님은 『목민심서(牧民心書)』 푼어치나 읽은 청백리인 줄 알았던지 과분하게도 액자를 선물했다.

액자는 인편에 집에 보내 왔다. 액자를 가져온 사람은 물건을 전했다는 인수증만 받아갔지, 정작 액자 내용은 전해 주지 않았다. 그 후 스님을 만났을 때 액자를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액자의 내용은 물어 보지 못했다. 내 무식을 감추려는 가증스러운 의도가 반이고, 내 학식 정도를 믿고 액자를 선물한 분에게 “뭐라고 쓴 글씨를 준 거요?” 하고 묻는 게 “당신은 개발에 편자를 달아 주었어” 하는 것처럼 선의에 대한 무례 같아서 못 물어 본 게 반이다.

이 액자를 받았을 때 소심한 나는 당황했다. 값비싼 서예품이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다행히 낙관(落款)이 찍힌 곳에 법관이란 그 스님의 법명이 쓰여 있어서 구입한 것이 아니고 스님의 자필이라는 데 일단 안심은 되었다. 뇌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스님이 국전에라도 오른 서예가라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그런 분의 액자라면 돈이 되는 미술품으로 시골 군청 주사(主事)의 집에 걸어 놓기에 과분한 뇌물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액자는 내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를 일깨워 주었다. 액자에 대한 내 바람은 이율배반적이었다. 처음에는 액자의 글씨가 명필(名筆)이 아닌, 내 처지에 맞는 글씨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차차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액자는 내가 몰라서 그렇지 필력(筆力)을 다해서 써 준 명필일 거라는 과대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그 욕심은 더해져서 당초 내 신분에 글씨이기를 바랐던 마음은 깨끗이 사라지고 오히려 이 내 존재를 가벼이 여기고 재주도 없는 주제에 시건방지게 초서로 후려쓴, 별것도 아닌 글씨를 준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만약 그렇다면 ‘이 놈에 중놈을-’ 하는 오기까지 생겼다. 결국 내 이중인격이 나를 더 속상하게 했다. 액자는 볼 때마다 내게 갈등을 가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러나 내 집에 와서 걸린 이상 액자의 글씨의 내용과 가치를 올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액자를 사진에 담아 가지고 아는 서예학원 원장에게 보였다.

그는 사진의 글씨를 보더니 대뜸 “초서일수록 획과 점의 생략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초서에 능숙지 못해서 필력도 약해, 글씨에 헛멋만 넘쳤어.” 시큰둥하게 글씨 평을 하더 니 “썩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보통 솜씨는 되는 글씨요. 거실에 걸어 놓아도 부끄러울 것은 없겠소” 하고 나를 위로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에 바랐던 대로 내 분수에 맞는 글씨라는 말인데 왜 마음이 그리 허전한 것일까. 나는 사진에 담아 간 글씨를 보고 그가 감탄을 하여 마지않기를 바랐다. 글씨에 감탄할 서예학원 원장의 얼굴을 나는 자만스럽게 바라볼 마음의 준비까지 다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변변치 못한 평을 받고 보니 맥이 풀렸다. 그래서 나는 그 서예학원 원장을 사이비 서예가든지, 아니면 글씨가 좋아서 질투를 하는 것이든지, 또는 ‘추사 김정희’가 ‘원광 이광사’의 글씨를 잘못 알아보았듯 편견을 가지고 글씨를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서 서예학원 원장의 인생과 필력이 원숙해지고 서예가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이 액자의 진가를 실토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명필일 것이라고 자위했다.

서예학원 원장은 액자의 글씨를 초서에서 전서(篆書)로 옮겨 써가지고 해석을 해주었다.



世與靑山何者是(세상에 어느 것이 옳으냐)
春光無處不開花(봄빛이 없는 곳에 꽃이 피지 않는다)



액자의 내용은 공직자에게 귀감(龜鑑)되는 글이었다. 행정은 모름지기 꽃을 피우는 봄빛 같아야 하느니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목민심서』를 못 읽어 보아서인데 그 서책에 들어 있는 글귀나 아닌지ㅡ.

그 스님이 민원 해결에 고충을 겪은 나머지 공직자인 내게 충고를 한 것인지, 아니면 시원스럽게 해결을 보아서 기쁜 나머지 칭찬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직생활의 바른 좌표를 설정해 준 한 말씀 같아서 귀하게 여겨졌다. 비단 공직자에게만 해당 되는 말이 아니라 삶의 보편적 가치 기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의 친구들이 이 액자 앞에 서면 얼른 나서서 글귀를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고 ‘너희들도 봄빛같이 살아라’ 하고 덕담을 추가해 주고 싶어졌다.

아무튼 명필의 여부를 떠나서 되새김질해 볼 의미 있는 글귀를 지방관아 아전의 집 거실 벽면에 걸어 준 그 스님의 진의가 느껴져서 좋았다. 당신의 삶이 비록 벼슬살이에는 못 미치더라 도 꽃을 피우는 청산 같은 행정을 일필휘지(一筆揮之)같이 시행할 때, 당신은 올바른 인생을 사는 거라는 설법(說法)의 요약 같아서 액자를 바라보면 ‘암, 깨끗한 구실아치가 때 묻은 벼슬아치 보다 낫지’라는 아전인수격인 생각이 직업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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