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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건강해서 고맙다는 말 / 김창수

부흐고비 2021. 12. 27. 09:05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쿵쿵쿵…. 그러다가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이 흐른다. 이어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잔잔한 멘트가 나온다. MRA 장비 안에서의 일이다. 검진 가기 전부터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까지 몇 번에 걸쳐 마음은 강물처럼 출렁거렸다.

지난 연말이었다. 앉았다가 일어서는데 갑자기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좀처럼 아프단 말 안 하는 양반이….”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정밀 검진한 지도 좀 됐으니 일단 검사 한번 해보자는 아들의 연락이 왔다. 자주 어지럼증을 느끼는 아내와 함께 가기로 했다. 검진 일정 잡혔다는 말에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몇 년 전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혈관 조영제를 맞고 봄바람에 들불 번진 듯 온몸이 뜨거워져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이번 검사는 전번과 다르다며 안심하라고 한다. 예약 시간에 맞추려니 아침 7시 이전에 출발해야 했다. 며칠 전, 군위 근처 상주-영덕고속도로상에서 노면 살얼음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그 생각에 서울까지 어느 경로를 택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기증이 사라지자 가지 않을 핑계를 찾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곧바로 뇌 MRA 검사실로 안내받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검진 요원 앞에 섰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주면서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아니, 20분이면 된다고 하던데….’둥근 미끄럼틀 같은 장비 안으로 몸이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마치 고래 입속으로 큰 물고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답답해서 벌떡 일어나고 싶다. 귀마개를 착용했는데도 쿵쿵거리는 기계음이 어수선한 마음을 헤집는다. 눈만 감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면 검사가 아니었다. 과연 이 통속에서 끝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아내는 또 어떻게 버틸까. 그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것도 못 견디면 손주 녀석들한테 조롱거리가 되겠지.’ 상황의 반전이 불가능했기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사실 알게 모르게 내게 폐소 공포증이 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작은아들 입대 직전, 가족 여행 중 ‘성류굴’에 들어갔을 때였다. 입구에서 20m쯤 걸음을 옮겼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가족들 두고 혼자 뒤돌아 나왔다. 창피했다. 오래전 내가 두어 번 즐기면서까지 다녀온 곳이 아니었던가. 이런 몸의 변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때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로 큰 파도를 버겁게 넘던 적이 있었다. 대입 수험생 뒷바라지, 어머니의 병구완에다 안면 마비증까지 달려들어 삶을 한바탕 뒤흔들었다. 그 틈새에 폐소 공포증도 끼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 책상 앞에 환자로 앉았다. MRA 영상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아들의 입만 쳐다본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스치는 것을 보고서, 난 이미 결과를 짐작했다. 잠시 후 “어머니의 뇌 속이 아주 깨끗합니다.”라는 말에 안도했다. 맘속으로 나보다 아내 건강을 더 염려했던 터였다. 다음은 내 차례다. “아버지도 문제없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다행이구나, 여겼다. 하지만 ‘아주 깨끗함’과 ‘문제없음’의 뉘앙스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짝을 만나 둥지를 튼 후로는 이렇게 셋이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점심상 앞에 놓고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고 싶었는데, 아내가 속이 불편하다고 하는 바람에 빈속으로 하행 고속도로에 올랐다.

도중에 아들이 “두 분 다 건강하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언젠가 하고 싶었던 연명 치료 얘기를 화두로 던졌다.

“연명 치료 거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거 같더라. 나도 그게 옳다고 생각해.”

“당신의 마지막은 내가 결정할 거야. 쓸데없는 소리는….”

물론 내가 먼저 간다는 행복한 전제가 깔린 말이었다. 약물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누워서 세월만 뻐끔뻐끔 잡아먹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 그것이 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요즘 이런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기력이 다한 해가 서산마루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다. 무릇 인생이란, 저승행 일엽편주에 실려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숙명이다. 인간만이 이를 자각한다는 점이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득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던 ‘죽음’이란 말이 병원 들락거리면서 구체적 의미로 다가온다. 마치 소풍 가듯 이승을 훌쩍 떠나는 고승․대덕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할 것인가에 관해 천착해보리라.

거동이 힘든 환자를 감당하기에 벅차 요양시설로 보낸다. 그것을 당연한 행로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 같다.시설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버려지는 것으로 인식한 나머지 가족의 눈치를 살피고 불안해한다. “늙고 병든 몸은 눈먼 새도 앉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맡겨놓은 후로 찾는 발길이 점점 뜸해진다면, 환자 처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린 연탄처럼 계속 흘러가는 데 뻗대봐야 소용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집착을 버리고, 순리에 따르겠다는 신념을 다지는 법을 해탈한 수도승은 알고 있지 않을까. 그의 겉옷이라도 한번 걸쳐보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가장 힘겨운 순간을 위해 동아줄 하나쯤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 어머니는 생의 끝자락에서 종교적 절대자에게 많이 의지했다. 아마도 그것이 다음 세상으로 들어가는 데 한층 수월했으리라. 삶이 백지장처럼 얇아져, 남겨진 세계가 확연히 작아지기 전에 나도 그런 줄 하나를 마련해야겠는데 생각에만 머문다.

어릴 때는 공부 잘하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연로해서 자식을 기쁘게 함은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건강해서 고맙다.’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자식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명해진다.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가슴엔 벌써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김창수 수필가 《수필과비평》 등단,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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