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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갈음옷 / 윤혜주

부흐고비 2021. 12. 27. 20:14

보따리를 푼다. 오방색저고리에 물빛고운 본견치마 한 벌, 그리고 복숭앗빛 명주 두루마기 수의가 누런 담뱃잎에 싸여 있다. 행여 좀이 슬세라 세심하게 갈무리 한 탓일까. 견의 색과 광택도 그대로 살아있다. 마지막 가는 길 마음껏 호사를 누려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이승에서 손수 준비한 갈음옷이 화려하다.

영전사진속 어머니가 입은 무채색의 치마저고리. 그 색은 당신이 평생 좋아서 즐겨 입는 색인 줄만 알았다. 철철이 그 많은 남의 옷 지어주면서 고운 갈음옷 한 벌 해 입지 못했던 어머니. 나는 그때 어머니도 빛깔고운 옷 좋아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시집와서 쌀 서 말을 먹지 못하고 죽었다는 깡촌이었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낡은 손재봉틀 하나를 보물처럼 끼고 살았다. 어머니의 먼 인척이 이사가면서 물려준 귀한 재봉틀이었다. 겨울이면 화롯가에서. 여름이면 바람 드는 마루에서 가위와 인두, 자와 함께 움직였다. 어머니는 어느 누구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 실을 꿰어 박고 돌리던 손잡이에는 당신의 손때만 묻어 반질거렸다. 재봉틀 앞에 앉은 어머니에겐 어떤 경건함이 뿜어내는 여인의 향기마저 났다.

손끝이 맵고 짜기로 소문난 어머니였다. 명절 무렵이면 옷을 지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방안에는 공단, 양단, 옥양목, 포플린과 본견 등의 옷감들이 대나무 말대에 곱게 말려 차례를 기다렸다. 노루발이 돌돌돌 밟고 지나간 천 조각은 얼마 후 두루마기와 저고리, 조끼로 만들어져 나왔다. 손바느질 보다 몇 배 더 가지런하고 튼튼했다. 완성되어 재봉틀을 내려오던 옷을 보며 나는 신기함에 감탄하곤 했다. 만들어진 고운 옷을 집집이 나르는 일은 내 몫이었다. 예쁜 때때옷을 보자기에 싸안고 갈 때면 부러움에, 푸새된 명주의 흐드러진 노란색치마에는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끝을 거치고 간 옷은 이승의 옷보다 저승의 옷이 더 많았다. 근동의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가 만든 이승에서의 마지막 갈음옷을 입고 갔다. 벼를 벤 들판도 휴식에 들어간 시간. 어머니는 건조한 시간을 뭉개려 부탁받은 수의를 만들었다.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그림자 길게 문풍지에 일렁이며 한 땀 한 땀 내세에서의 평안함을 기원하며 밤새워 만들었다. 맑고 경건했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있어서 어머니의 이타적인 희생을 엿보기도 했다. 마치 놓고 싶지 않아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버릴 많은 것들에서, 떠나는 연습을 하는 사람처럼 근접할 수 없는 엄숙함마저 들었다. 하찮은 손끝의 재주일지라도 누군가의 마지막 갈음옷을 입히는 것이 마치 당신의 숙명인양 적요(寂寥)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공을 들였다.

단은 접에서 공글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가만히 숨져 주었다. 한번 마른 감은 다시 마르지 않았다. 영혼불멸과 내세 영생을 위해 바느질하는 내내 도중에 실을 잇지도 않았으며, 바늘땀은 되돌아 뜨지 않았다. 또한 끝맺음에 매듭을 짓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바느질하는 그 때만큼은 얼룩을 걱정해 천둥벌거숭이 같은 우리들의 근접을 막았다. 생명의 무게인지, 영혼의 무게인지 사람이 죽는 순간 고작 동전 다섯 개의 무게 21g이 떠난 육신을 감쌀 수의에 어머니는 노심초사했다.

주로 수의를 챙겨줄 자녀가 없어 홀로 떠날 준비를 하는 외로운 이들의 부탁을 받았다. 살아서 호사스런 옷 한 벌 입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길. 세상 어느 옷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가고 싶은 마음을 엿보았을까. 꼬박 이틀이나, 혹은 사흘 완성된 옷이 재봉틀에서 내려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거의 탈진한 모습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수의는 무명 흰 보자기에 곱게 싸 직접 가져다주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멍석을 깔던 어느 해 가을. 요양병원의 어머니를 뵈러 가면서 빨간 꽃무늬 스웨터를 입고 갔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곱다 돕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어머니의 눈은 스웨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무이한테는 어울리지 않을 색인데.” 떨어질 줄 모르던 어머니의 시선을 주책없다는 생각에 매몰차게 뿌리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지불식 끊임없이 변하고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던가. 며칠 후 다시 어머니를 뵈러가면서 그 스웨터를 사 들고 갔다. 그러나 ‘곱다 곱다’를 연발하며 기쁘게 입어야 할 어머니는 그곳에 없었다.

개운치 않은 눈과 청량하지 않는 귀. 아흔의 어머니는 유독 당신의 옷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좋아할 것 같아 자식들이 사다준 옷에 불평하거나 역정을 냈다. 주로 치수를 들어 타박하거나 불평하셨지만 내심 어머니의 불만은 딴 데 있는 듯했다. 그저 혀 두어 번 끌끌 차는 걸로 그 깊은 속내를 끝내 드러내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평생 어머니의 패션은 고무줄 치마와 무채색 저고리인줄만 알고 줄기차게 들이미는 속없는 자식들에 한없이 섭섭해 했음을 왜 몰랐을까.

자욱이 피어오르는 향속에서 어머니는 희끄무레한 저고리를 벗어버리고 방금 풀어놓은 갈음옷으로 갈아입는다. 영안실이 복사꽃처럼 환해진다. 엉킨 삶에의 회한도, 두고 가야할 모든 것들에 대한 미련도 내려놓은 가벼워진 육신으로 두루마기 자락 펄럭이며 너울너울 춤을 추신다. 꿋꿋한 한 그루 나무는 춤추는 잎새 되어 한 마리 나비처럼 눈물 젖은 복사꽃 사뿐히 지르밞고 저승 문으로 향한다.

몰라서 안한 실천과 알고도 못한 실천의 무게차이는 얼마나 날까. 나는 오늘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위로와 자학사이에서 서성인다.



윤혜주 수필가 《한국수필》 등단(2010). 한국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포항문인협회 회원.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 수필 대상(2014), 포항소재문학상(수필) 최우수상(2014) 수상. 전북일보 신춘문예 kd선(2015), 포항문화재단 문예창작지원금 수혜(2020). 수필집 『못갖춘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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