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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며느리 오는 날 / 김수인

부흐고비 2022. 1. 5. 09:03

나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고 산다. 시쳇말로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면 바보라지만 그런 말은 해당사항 없다는 듯 흘려듣는다. 곱상한 모습에 상냥한 음성으로 “어머님, 어머님”하고 나타나면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런 며느리가 “어머님, 저희들 출발했는데요, 광어회와 국수가 먹고 싶어요.” 주문을 하면 나는 그때부터 가을 논에 메뚜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한다. 기장 해변으로 달려가 자연산 회부터 사다 놓은 뒤 멸치장국을 우려내고 갖은 국수 고명을 만든다. 파란 호박을 볶고 계란지단을 부치고 구운 김을 부셔놓고 양념간장을 만든다. 막걸리까지 준비하고 주문서에서 빠진 고구마튀김과 오징어 튀김 준비까지 해둔다.

혹여 집이 지저분하다고 느낄까봐 대청소를 시작한다. 밀대 걸레로 대충 밀던 것을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는다. 욕실도 수세미질을 거듭해서 물기까지 닦아낸 뒤에야 한숨을 돌린다. 내려오는 네댓 시간 동안 나는 번갯불에 콩 굽 듯 몇 가지 일을 처리한다.

새끼사슴처럼 눈이 동그란 아이들을 앞세우고 부산 아들네 가족까지 합류해서 들어서면 고요가 똬리를 틀고 있던 집이 뱃전에 퍼덕이는 활어들처럼 활기로 가득 찬다. 멸치장국 냄새와 국수양념간장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집안이 마치 시장 통처럼 왁자해 진다. 교자상 두 개를 펴고 준비해둔 생선회와 바싹하게 튀겨낸 튀김과 국수 그릇이 올려지면 며칠 굶주린 사람들 마냥 먹기 시작한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먹는 모습이 좋아 부엌을 드나들며 있는 반찬 없는 반찬 가져다 나르며 부산을 뜬다.

술을 마시지 않는 두 아들 대신 내가 며느리와 함께 막걸리잔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돋우어 준다. 세 고부姑婦가 밀렸던 이야기들을 봇물처럼 쏟아내면 아들 둘이는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선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이부자리를 깔아 잠자리를 준비해 준다. 아들 둘은 술로 인해 상처받은 가족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에서는 술을 일체 마시지 않는다.

무뚝뚝한 아들과 심심하게 지냈던 과거를 보상 받듯 며느리 둘과 정담을 주고받다 보면 밤이 이슥해진다. 밤이 깊어지면 심중에 쌓인 이야기가 나직나직 흘러나온다.

“동서, 그때 그 말은 서운하더라.”

“형님, 그 뜻이 아닌데 오해 하셨어요.”

그럴 때 나는 졸린다며 슬쩍 내 방으로 들어간다. 나에게도 불똥이 떨어질까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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