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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멀리 또 가까이 / 김성옥

부흐고비 2022. 1. 6. 08:27

온종일 마음이 쓸쓸하다. 살고 죽는 문제가 비일비재 일어나는 인생길이지만 태어나는 기쁨보다 죽는 슬픔이 내겐 왠지 더 크다.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일들이 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 놀라움과 허전함은 마음의 갈 곳을 잃어버리곤 한다. 다잡지 못해 헝클어진 일상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더 힘든 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사회생활이 무너진 요즘에 어쩌다 건너건너 듣는 소식들은 한탄스런 사연들이 눈물을 쏟아내게 만든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미국에서만 오십만 명이 넘는다. 해도 걱정스럽고 딱한 마음만 들었다. 내 주위에는 적어도 그 대열에 서지 않으리라 믿으며 그러길 간절히 소원했다. 하지만 어제도 그제도 눈에 선한 사람들이 떠나갔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가족 모두가 악기를 다루고 찬양도 잘하시는 김 선교사님께서 얼마 전 응급실에서 허망하게 혼자 떠나셨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직 젊고 소프라노를 부르는 늘씬한 맵시의 사모님과 기타를 프로급으로 치던 아들이 내 핏줄인 양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미에서 성장하신 선교사님은 한국말이 어눌해도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신 열정으로 기억에 더욱 남는다. 이제는 유럽에서 점점 기독교가 사라진다고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 사역을 하신 지 2년도 안되었다. 처음 도전하는 일은 모험이고 두려움이 크지만 주님 한 분만 의지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며 선교 동참을 기도로 물질로 마음으로 하길 원하셨다.

큰 도움을 못 드린 것이 때늦은 후회로 가슴을 내려치게 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씀이 더욱 새롭게 각인된다. 작은 힘이라도, 기쁨이라도 드렸어야 하는데 왜 못 했을까. 다음에 또 오시겠지 하는 나만의 여유는 나의 논리에 불과하며 내 스스로의 위안 같은 느낌이 드니 더욱 답답해진다. 죄송합니다! 천국에서 선교 일을 하고 싶으셔서 어떻게 계신지요? 중얼거리며 잔뜩 흐린 하늘에서 하나둘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내 눈물을 섞어 걷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말이 없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 건지 성격이 차분한지 아님 당최 말하길 좋아하지 않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고역스러운 경우가 있다. 이 아가씨가 늘 묵묵히 피아노만 쳤지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며 깍듯하게 인사성도 바르고 공손하여 요조숙녀구나 생각하였다. 가끔 피아노 반주자가 없으면 와서 도와주던 목사님 친구의 딸이었다. 아픈 엄마, 여동생을 돌보며 본인도 건강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 말을 잃고 사는 느낌이 있다. 볼 때마다 괜한 안쓰러움에 말이라도 더 걸고 싶고 작은 도움이라도 건넬 것이 있을까 싶었다.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하라 듯이 한마디의 위로라도 조심스럽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선뜻 나서질 못하였다. 제삼자를 통하여 듣는 말들은 더욱 측은한 생각에 다시 보고 또 보게 되었다.

아버지의 잘못이 엄마를 자살미수까지 이르렀고 여동생은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왔다. 본인도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명문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을 한 수재이며 유능한 젊은이가 왜 저런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지 안타깝고 마음도 서글펐지만 공연히 화가 나며 속이 상했다.

눈에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거의 일 년 가까이 대면 예배가 중단되고 내 집안에도 어려운 일이 생겨 근래에 목사님의 설교 영상으로 주일 성수를 하였다. 내 코가 석 자이니 남을 돌아 볼 여유도 적어지고 오랫동안 캄캄한 굴속을 지나며 살아온 팬데믹 기간 같았다. 서서히 백신주사가 보급되어 순서를 맞으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데 뜻밖의 소식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 비극은 영화에서나 연극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지 못한 일은 멀리에 있는 줄 알고 편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얼마 전 그 아가씨는 죽고 엄마와 동생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한다.

둘째 남동생이 껄껄 웃으며 전화가 왔다. 반가운 소식이라도 있나싶어 덩달아 나도 모르는 웃음이 흘렸다. ‘누나! 우리 집안에도 이런 일이 생기네.’ 3주 전 올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가도 입원도 못 하고 집에서 격리 중이라 했다. 허탈한 웃음, 씁쓸한 웃음도 있다는 사실은 아연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차츰 좋아져서 이제 연락한다고 조심조심하라는 당부가 간절하였다.

나쁜 소식은 멀리서도 오지 말고 좋은 소식만 가까이에서 들려왔으면 하는 당찬 이야기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서 돌고 돌아 들려온다.



김성옥 수필가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제1회 청향문학상 작품상 수상.

                    저서 『다우니의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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