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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비주류의 항변 / 박태우

부흐고비 2022. 1. 17. 08:39

나는 술과 친하지 않다. 무슨 신념 때문이 아니라 체질상 술과는 거리가 멀다. 소주 한두 잔만 걸쳐도 얼굴은 금세 홍당무로 변해 오해받기 일쑤다. 직업상 자주 찾아오는 술자리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술자리에 가면 꽁무니를 빼기에 급급하다. 어느 자리에 앉아야 술 세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 일쑤다. 잔꾀를 부려도 술자리에 합석한 이상 기본량은 비켜가기 힘들다. 일제히 한 잔을 비워야 한다든지 선배나 상사가 면전에서 술잔을 건네면 피할 길이 없다.

초반 한두 잔은 그럭저럭 버틴다. 분위기가 익어가면서 잔이 돌고, 급기야 폭탄주마저 춤을 추면 좌불안석이 된다. 비주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심정이다. 힘겨운 버티기 작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입에 갖다 대는 시늉만 하고 슬그머니 잔을 빼돌린다. 자칫 고약한 주당에게 발각되면 벌주를 감내해야 한다. 냉수가 든 잔을 들이켜고도 소주를 마신 것처럼 얼굴을 찌푸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상습적으로 할 수는 없다. 술자리가 마무리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시선은 자꾸만 시계 쪽으로 향한다. 냉정한 시계 침은 내 심정도 모른 채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는다.

미량의 알코올 공격에도 내 몸은 단번에 신호를 보낸다. 금세 취기가 오르고 얼굴이 불콰해진다. 속이 매스껍고 머리도 어지럽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어느새 몸도 휘청거린다. 바깥에 나와 냉수를 들이켜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일찍 도망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술을 좀 마실 수는 없을까. 몇 달 전 우연히 한의사 친구를 만나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체질적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니 적게 마시는 수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지만 나는 그래도 방법이 없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한때는 알코올과 맞서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기도 했다. 때로는 회식에 앞서 약국을 찾아 알코올 내성제를 복용하면서 전의를 다져본 일도 있다. 술 깨우는 데 그만이라는 약사의 말을 믿고 기대를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몇 년 전에는 잠들기 직전 매일 소주 한두 잔을 들이켜며 주류 대열 편입을 꿈꾸기도 했다. 조금씩이라도 상습적으로 마시면 내성이 쌓일 것으로 여겼으나 허탕만 쳤다.

나에게 술은 수면제와 다를 바 없다. 눈꺼풀은 알코올 무게에 금세 손을 들고 만다. 쏟아지는 하품과 함께 밀려오는 잠을 쫓으려 물에 얼굴을 적셔 보지만 취기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슬그머니 술자리를 빠져나와 허둥대다가 빈 방을 찾아 새우잠을 청한다. 나의 독특한 술버릇을 아는 지인들은 내가 사라지면 옆방부터 수색한다. 피폭당해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깔깔 웃어댄다.

술꾼들은 어느 정도 취기가 돌면 막무가내로 술잔을 돌리며 분위기를 몰아간다. 비주류는 손사래를 쳐보지만 그들의 강공작전을 당해낼 수 없다. 자꾸 제동을 걸다가는 분위기 깨는 사람으로 몰린다. 이쯤 되면 주량과 목소리 크기도 비례한다. 술꾼들은 술잔을 들고 부어라 마셔라 소리를 지르며 좌중을 휘젓고 다니지만, 비주류는 소리를 죽인 채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주류는 비주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술도 못 마시는 게 뭐 한단 말인가.” “주량과 능력은 비례하는 거야.”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서는 씩 웃어넘기지만 마음이 편할리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폭음으로 인한 실언과 실수에 여지 관대하다. 술 권하는 사회 풍속도는 갈수록 가관이다. 최근 모 지자체에서 술을 많이 마신 공무원 3명을 뽑아 음주문화상을 주었다고 한다. 술을 많이 마셔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켰다는 게 수상의 이유다. 지역 경제를 살릴 방법이 고작 공무원에게 술 권하는 것일까.

음주 자체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술은 신이 내린 가장 멋진 음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대인관계에서도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술 한잔하세.”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 자 마음을 열겠다는 뜻이 스며있다. 평소 쌓인 고민과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훨훨 날리는 데도 굳이 일조를 한다.

술은 묘한 힘을 지녔다. 몇 잔이 오고 가면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금방 마음의 빗장도 걷힌다. 술판이 무르익으면 너와 나는 어느새 우리는 하나라는 결속의 울타리를 엮는다. 주류의 일체감 속에 비주류는 소외지대로 밀려난다. 주류와 비주류는 자연스럽게 금이 그어진다. 술자리에서 소외받는 비주류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다.

내 주량은 소주 서너 잔이다. 둘이서 삼겹살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비우면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 이상은 고문이다. 마시는 속도도 늦는 편이다. 둘이서 소주 한 병 비우는 데 한 시 간은 족히 걸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쉬엄쉬엄 들이켜야 한다. 이 기분을 술꾼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침해받고 싶지 않다.

주당들에게 외치고 싶다. 비주류의 애타는 심정과 고통을 조금은 읽어 달라고, 또 주류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지 말라고,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은 술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아! 비주류의 설움이여!



박태우 수필가 《수필과비평》 등단, 경향신문사 기자 인생 33년 마감하고 2021.12월 정년퇴임.

저서 『실전 미디어 글쓰기』, 『한국의 맛』(공저), 수필집 『여섯 번째 가족』. 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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