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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감성여행 / 이현수

부흐고비 2022. 1. 16. 10:06

여행단원은 서른세 명이었다. 모두가 러시아 사람들이고 동양인은 아내와 나 두 사람뿐이었다. 러시아인들 틈에 끼어 북유럽 네 나라를 여행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애당초 우리는 러시아를 향하여 떠났었다. 셋째 아이가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있어서 만나러 갔던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와 북유럽은 근접해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가는 것보다 경비가 삼분지 일 이상 저렴할 것이라는 셋째의 말이 우리를 유혹하여 내친김에 북유럽까지 둘러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9박 10일간의 여행, 버스와 크루즈 투어로만 이어지는 이번 여행은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벙어리요 귀머거리인 우리들에게 모험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무모하게 보였는지, 헬싱키에서 처음으로 통성명을 한 헤밍웨이-외모가 헤밍웨이와 흡사하여 우리는 줄곧 그를 그렇게 불렀다-의 첫마디가,

“당신들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이었다.

아까째리나는 숙련된 전문 가이드로서 줄곧 알 수 없는 장황한 해설과 설명을 늘어놓을 뿐, 이방인으로서 동행하는 우리 두 사람의 존재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버스 내부를 돌아다보는 일도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 관광단 같으면 대개 여행사에서 파견된 가이드 외에, 관광단을 대표하는 한 사람을 선출한다. 공식적인 여행의 진행은 가이드가 주관하지만, 그 밖의 비공식적인 일들은 대표자가 주관하여 진행하기 마련이다. 차 안에서 자기소개를 시키고, 며칠 지나면 형, 아우로 호칭하면서 노래방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대표는 공식 비용 외의 달러를 갹출하기도 하고, 가이드는 여행객들이 원하건 않건 여기저기 쇼핑센터로 데리고 다니기 일쑤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와 달랐다. 각자 소개도 시키지 않았고, 억지로 부추겨 흥을 돋우려 하지도 않았으며, 대표도 뽑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크고 작은 이벤트를 벌이기도 하고, 큰 소리를 치기도 하고, 가이드에게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을 텐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이드는 9박 10일의 여행기간 동안 한 번도 쇼핑센터로 안내하는 일이 없었다. 승객들 중 어느 누구도 버스에 설치된 TV나 라디오를 켜 달라는 사람도 없고, FM 음악 방송을 들려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도 없었다. 가이드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설명하는 목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각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거나 풍경을 감상할 뿐, 혹 대화를 할 때도 목소리를 낮춰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진짜 세련된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각자 알아서 먹어야 하고, 한 번 버스가 머물면 두 세 시간 이상 자유 시간을 주곤 하였다. 자유시간이란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각자 알아서 탐색하고 해결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모이기로 한 시간을 단 일분의 착오도 없이 칼날같이 지키고, 침묵 가운데 차례를 기다리며, 철저히 공중도덕을 준수하였다. 나는 그러한 그들이 점차 차갑고 무섭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교사, 대학 교수, 사업가, 정년퇴임한 인텔리 여성, 대학을 갓 나온 젊은 남녀, 전문 직업인이 아닌 듯한 몇 사람 등, 일행은 대부분 교양을 갖춘 사람들로 보였다.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저들 앞에서 우리도 헤프게 감정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오슬로에서였다. 가이드는 두 시경, 시청 뒤에 여행단을 풀어놓으면서 4시 50분까지 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부담스러운 세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그 장소에 갔을 때 거기에는 있어야 할 일행도 버스도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4시 15분을 50분으로 잘못 들었던 것이다. 언어학 교수인 헤밍웨이가 능숙한 영어로 통역하여 줄곧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그의 Fifty와 Fifteen의 발음을 구분해 듣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차례는 노르웨이 항구에서 크루스를 타고 떠나 코펜하겐 부두에서 내리는 여정이 잡혀 있었다.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은 만리타국의 텅 빈 항구에서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는 황당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가이드와의 전화통화로 겨우 알게 된 야간 급행열차를 타고 밤을 세워 달려 도킹할 장소로 가는 외롭고 불안한 열차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예정에 없던, 노르웨이에서 스웨덴을 거쳐 덴마크에 이르는 장장 11시간의 열차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즐긴다’는 느낌과는 사뭇 동떨어진 두려움과 낭패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코펜하겐 부두에서 일행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별로 감정이 없는 덤덤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보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빼쩨르브르그로 향하는 버스에서 하나 둘씩 내려서 자기의 주거지로 돌아갈 때에도, 아직 남아 있는 승객들에게 그들은 아무 인사도 없이 각자 조용히 사라져 갔다. 잘 닦여진 교양과 지성 때문일까, 아니면 슬라브 민족의 특성일까, 오랜 동안 공산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단련된 자기 방어적 표정일까.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도 정나미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단 한 사람, 우리가 내심 친근하게 느꼈던 여자-외모가 동양인의 피를 받은 듯 황색이었던 -가 내리면서 허리를 굽혀서 큰 소리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내려서도 멀어지는 버스를 향하여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마 그녀의 몇 대 조상은 고려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시끄럽더라도,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좀 다투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감정 표현을 헤프게 해서 조금은 경박하게 보일지라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의 여행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모스크바에 돌아와 셋째 아이에게 우리의 느낌을 털어놓았을 때, 그 애는

“한 꺼풀만 벗기면 그들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어요.”

라고 했다. ‘한 꺼풀’이라도 근 열흘 동안이나 벗겨지지 않았다면 참 견고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 또한 이 여행에서 헤픈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헤밍웨이와 헬싱키에서 헤어질 때도 감정을 누르고 가벼운 악수만 하였다. 서양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열정적인 포옹이라도 할 걸 그랬나 보다.

이성이 발달한 사람보다 감성이 윤택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 보다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멀고 긴 ‘인생여행’을 감성이 풍요로운 이들과 함께 한다면 훨씬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현수 수필가 전남 장흥 출생 동국대,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수필과비평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 교수·부총장 역임 수필집 당신의 뒷모습』 △이론서 한국문학론고, 호남민속문화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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