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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비와 코끼리 / 차혜숙

부흐고비 2022. 1. 18. 09:08

나비 한마리가 날아왔다. 주방 안으로 날아들어 나풀거리는데 어찌나 큰지 천장을 뒤 덮는다. 황금색 날개에 흰점이 박혔고 그 날개 끝을 아버지가 부여잡고 두둥실 떠 있다.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버지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아버지 날개 부러지니 빨리 내려오세요.”

그제야 내 말을 들으셨는지 아버지께서 나비를 놓아주었는데 어인 일인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황금빛 나비는 청색을 띤 호랑나비로 변하면서 몸은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로 바뀌었다.

이럴 수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참으로 신비롭고 오묘한 꿈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은 채로 한동안 멍하니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요즈음 중국 드라마인 '후궁견환전'에 흠뻑 젖어 들어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청나라 옹정황제에게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일깨우기 위해 견환이 추운 겨울날 망토 속에 나비를 가득 담아 황제 앞에서 활짝 펼치니 망토 속에서 수십 마리가 날아가는 그 광경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잊히질 않더니 무의식이 표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얼마 전에 바라춤을 추는 고승 이야기를 듣고 그분을 해원하고자 화폭에 그려 넣은 나비가 꿈속에 환생한 것일까. 내가 그린 호랑나비가 몸도 길고 청색과 보라, 남색이 어우러진 나비이고 보면 어쩌면 부처께서 나비의 몸을 빌려 일깨우고자 오신 것이 아닐까.

더욱이 오래전에 세상을 뜨신 아버지도 나비 따라 두둥실 춤을 추는 것은 어떤 연유인지. 나비는 몽환적이요, 잊을 수 없는 영혼의 사랑을 의미함에 나비 연을 띄우며 내세에서도 영원히 사랑하고 맺어지길 기원하는 것을 볼 때 영혼과 영혼이 결합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의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 아버지가 오셨나 보다.

가톨릭에서 종부성사를 받으신 아버지가 샤먼적인 내게 종교를 초월해 하늘은 하나임을 일깨워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선한 삶 속에 마음을 다스리고 정도를 지키면 중용에 다다를 수 있음을 꿈을 통해 보여주는 것일까.

황금빛은 재물과 재수를 상징함이요, 호랑나비는 운수대통을 의미하는 것을 볼 때 나비 몸 또한 코끼리로 화함은 부처를 나타냄에 바라춤을 추었던 고승이 내게 불법을 가르쳐 주심이리라.

불가에 의하면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 보살의 으뜸이 되어 생명 관장하고 재수와 복덕을 나누어 준다.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는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세상에 존재하는 중생들을 모두 받아들여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중생 구제와 실천을 하는 보살로서 코끼리를 타고 다니셨기에 그런 모습으로 내게 깨달음을 주고자 하심인지도 모른다.

환몽적 세계를 노니는 유랑객의 화신이라는 나비, 영혼을 이어주고 죽은 이에게 최상의 춤을 선사하고 무중력 상태에서 훨훨 날아올라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나비야말로 처절한 진통을 겪으며 탈바꿈하는 40여 일간의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성층에서 나비가 되는 것은 우리네 인간사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짧은 기간 동안 완전한 탈바꿈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최고의 완성품으로 이 꽃에서 저 꽃으로 행복을 따라 사랑을 전도하는 춤은 신의 영역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나비 꿈을 통해 코끼리가 나타남은 부처께서 피폐해져 있는 내 마음과 삶을 다시 한번 정화하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차혜숙 수필가 1990년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무무무』, 『주머니속의 기, 행운을 가져온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공저), 『복기생』. 『나비와 코끼리』. 수상: 송강 400주년기념 시부문 당선(한글학회) KBS 자녀교육체험수기 대상, 이종환의 여성시대 글짓기 2회, 한맥문학상(수필) / 종교문학상, 한국불교승단협의회 2002년 올해의 인물상 불교문학상(작가상/본상) / 서포 김만중상(대상) 상상탐구작가상.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계간문예작가회, 현대작가협회 이사 한맥문학회 감사, 서대문문학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氣의 세계에서 小우주를 논하다” - 독서신문

지난 24일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오후 인사동의 서호갤러리에선 ‘차혜숙의 우주’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로 열리는 그의 전시회는 표현하기가 난감하다. 난생 처음 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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