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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God바위 할아버지 / 남정언

부흐고비 2022. 2. 5. 09:01

산에 오르면 하늘이 가까워진다. 하늘 끝에 닿고 싶은 마음은 낮은 곳에서 시작해 걷고 또 걸어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바라보며 하늘을 우러러 온전히 자신을 낮추는 일이 기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년 가을비 내리던 날, 홀로 기도하러 왔다가 가만히 엽서 한 장 써서 소원성취 느린 우체통의 붉은 입에 밀어 넣었다. 물먹은 돌부처께 올린 간절한 마음은 아직 변함없다. 나에게 ㅍㄹ공산 갓바위는 God바위다. God는 혜성 같은, 신 같은, 전지전능한 뜻을 가진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나는 어리석은 자신을 이해하고 숨어있는 불성을 되찾게 만드는 조력자라 여기고 있다.

여기는 경북 경산시 팔공산이다. 대구를 비롯해 군위, 칠 , 영천, 경산 네 개의 시와 군에 걸쳐있는 큰 산이다. 경산의 지형은 사람 인人 자를 굵게 뭉텅거린 세모 모양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새삼 느낀다. 경산에는 일체유심조의 원효와 이두를 만든 설총,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세 성현을 모신 문화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갓바위의 정식 명칭은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의 불상이다. 정성껏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부처의 옆모습을 꿰뚫은 구조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디선가 들리는 산 비둘기 소리가 애련哀憐하다.

갓바위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다. 대구에서 오르는 앞길은 1,365개의 돌계단인데 한 시간 정도 걷는다. 무궁화와 야생화를 보며 연리지 나무까지 만나는 돌계단 숲길에서 건강하 땀방울을 흘린다. 나는 경산에서 오르는 뒷길을 선택했다. 시멘트 계단으로 오르는 길은 이삼십여 분 걸린다. 경산 길은 삼단으로 구분한다. 하단인 일주문을 지나 연꽃 다리를 건너니 석등을 밝히는 길 공사가 한창이다. 천계로 들어서는 입구가 넓어지고 있다.

십 년을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한다는 보살님을 뵌 적이 있다. 순결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단박에 알아차렸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준비로 가슴이 설렌다는 그분에 비교해 기껏해야 좋은 날만 골라 서너 번 정도 찾아오는 나는 낯부끄러운 신도일 수 있겠다. 분명 불교 공부를 했으나 내 기도는 오로지 참회와 부모님을 비롯한 세상 인연 인과응보에 감사를 올릴 정도로 단순하다.

오늘은 종교가 다른 문우들과 걷는다. 주위를 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갓바위를 오르내린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중단의 약수터와 삼성각이 나온다. 깨달음을 얻고자 합장하고 다시 걸으면 애자모를 모신 작은 굴이 보인다. 다음 생에 누구든지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를 두손 모은다. 곧이어 대웅전 앞 여의주如意珠를 문 용머리는 하늘로 승천할 만큼 기세가 등등하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탈하고자 한 부처의 뜻을 새기며 삼배를 올린다. 대웅전 앞 석탑을 감싼 연등에 달린 이름들의 기도와 염원은 하늘로 향한다. 나도 연등이 되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탑을 돌아본다.

숨을 고른다. 마지막 상단을 향해 계단 한 줄을 오르면 약사여래불.... 그윽하고 나지막한 기도의 외침들! 약사여래불이다. 그동안 얼마나 약사여래불을 찾았던가. 세 살 적, 누가 던진 돌로 인해 얼굴 미간 흉터가 생길 때부터 어머니는 막내딸의 기도를 시작하셨다. 열일곱에 나타난 목병으로 육 년 넘게 병원을 오가며 수술해도 병명조차 나오지 않아 집을 팔아 목숨 줄을 이어준 어머니와 정성을 다해 새벽 기도를 다녔다. 그 후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고 마흔이 넘어 수술했을 때 약사여래불 앞에서 삼천 배를 하며 항암의 고통을 이겨냈다. 남매를 훈육하면서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을 할 때도 갓바위를 찾아 천 배 올리며 견뎌왔다. 올해는 종아리 인대 파열, 다리 골절에다 팔목 인대까지 늘어나는 어이없는 사고로 봄부터 가을까지 깁스와 보호대를 착용해야 했다. 분명 몸 상태를 보면 산에 오를 형편이 못되지만, 엄마와 어른이기 때문에 의지만 갖추고 갓바위 부처님을 뵈러 나온 터이다.

파란 바람이 분다. 환한 하늘에 영산재를 알리는 깃발이 펄럭인다. 날이 좋아 바윗돌도 가실하다. 약사여래불 뒤를 든든하게 지키는 키 큰 마가목 한 그루가 신장처럼 의젓하게 서 있다. 불볕더위를 거뜬히 이겨내고 빨간 열매를 자비롭게 매달고 있다. 바람이 분다. 내 발밑에 떨어진 빨간 열매 한 알을 줍는다. 몸을 돌리면 신라 후대에 만들어진 5m가 넘는 좌상, 머리에 판석을 얹은 여래상이 엄숙하게 내려다본다. 손에 든 약 함만 없다면 항마촉지인의 부처다.

나는 석굴암 부처와 군위 제2석굴암 부처와 견주어 본다. 석굴암 부처의 백호 금강석 자리 흉터에서 내 어릴 적 미간 상처를 위로받았다. 군위 부처처럼 석굴에 조용히 있다가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되는 용기를 얻었다. 지그시 눈을 반쯤 감고 오른쪽 어깨를 앞으로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인자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나는 크고 넓적한 얼굴이 우리 선조 중 누군가와 모습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향을 피우고 고개를 들어 God바위 할아버지와 눈맞춤한다. 그때 광배 바위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God바위 할아버지에게 무어라 깟깟, 또 깟깟 떼를 쓴다. 바윗돌 사이에서 움튼 어린 소나무도 얼굴 내놓고 들은 척 만 척하는 모르쇠 God바위 할아버지를 향해 아우성친다. 시끄러운 까치에게 항복하는 할아버지가 슬며시 나를 향해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이제까지 내 사연을 들어줄 어른 한 분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답답하면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대책 없이 갓바위 부처를 찾아 하소연하며 살아왔다.

God바위 할아버지는 “이제까지 잘 살아왔다. 자신을 믿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말씀하신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소원은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더 낮추어라.” 한마디 덧붙이신다. 인계人界에 살면서 어디 낮추어야 하는 것이 이것뿐이겠냐고, 육신이 고달팠으니 더욱 사려분별을 갖추고 살아야 한다며,

집에 오니 엽서 한 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갓바위 할아버지가 웃고 있는 엽서다. 느린 우체통이 일 년을 보관했다 보내준 엽서를 읽으니 내 기도는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오늘은 갓바위 할아버지의 묵직한 말씀까지 받아왔다. 마가목 붉은 열매를 본다. 부러졌던 뼈와 늘어난 근육은 튼튼해 질 것이다, 또 살. 아. 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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