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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가방 / 장혜경

부흐고비 2022. 2. 5. 09:04

어버이날 선물로 아이들이 ‘효캉스’라는 호텔패키지상품을 보내왔다. 몇 번의 선물을 하다가 금일봉이 최고라는 말에 또 몇 번을 봉투로 받았는데 차마 아까워 쓰지 못하고 모아두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아직 많지 않은 월급으로 혼자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그걸 또 아껴서 마음을 전하는구나 싶으니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쓸 수밖에 없는 선물을 보낸 것이다. 1박 2일 상품이라 그리 준비할 것도 없고 해서 에코백을 하나 꺼냈다. 갈아입을 옷과 아침저녁 먹을 비타민, 간단한 화장품, 충전기 등등 챙기다 보니 가방이 작다. 적당히 핸드백에 옮겨 담으니 이번엔 핸드백이 무거워졌다. 다른 가방은 크기가 더 커서 그냥 이렇게 쓰기로 한다.

주기적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을 정리한다. 매번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쓸데없는 것들은 치우곤 하는데 얼마 지나면 또 쓸데없는 것들이 생겨있다. 마트에서 장본 영수증, 길 가다 받은 명함, 전단지 등등 자료가 담긴 USB나 자동차 키 같은 것은 매번 찾는 것이 번거로워 가방 안의 작은 주머니에 넣곤 하는데 가끔 엉뚱한 곳에 들어가 가방을 통째로 비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큰 가방은 많은 것을 넣을 수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면 찾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내가 가방을 선택하는 기준은 실용성이다. 필요할 땐 가방의 크기를 늘릴 수 있고 줄일 수도 있다거나, 백팩으로 멜 수도 있는데 숄더백으로도 변형이 가능한 트랜스포머 같은 백을 좋아한다. 백화점에 가면 브랜드 별로 가방 디자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중 하나다. 알록달록 앙증맞은 디자인의 가방들을 보면 딸아이들이 생각난다. 가방은 패션의 완성이라고도 하니까. 예쁘게 입고 멋진 가방을 든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하다. 원하는 디자인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간단한 에코백과 파우치 종류 몇 개를 만들었는데 바느질이며 작업공정이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브랜드별로 가방을 구경하다 보면 스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이 가격이다. 모양이나 소재는 비슷해 보이는데 브랜드가 바뀌면 가격에 동그라미가 하나에서 둘까지 더 붙기도 한다. 그렇게 비싼 가방이 진짜인지 짝퉁인지 알려면 비 오는 날 보면 된단다. 우산을 내가 쓰는지 가방이 쓰는지로 그것을 알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비 맞은 가방을 수건으로 쓱쓱 닦아내는 나로서는 낯선 이야기다. 그렇게 절절매면서 들고 다닐 이유가 있을까 싶다. 손에 들 수 없을 만큼의 물건을 넣어서 갖고 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가방이다. 옛날 괴나리봇짐부터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걸쳐 메고 다녔던 책보따리, 향을 넣어 소지하던 향주머니 등등에서 시작된 가방이 어느새 그걸 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눈으로 봐서는 구별이 힘든 S급, A급을 찾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명품’, 일단 명품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고가일 수밖에 없다. 만들어지는 수가 제한적이고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장인정신으로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들어진….” 이라는 말로 명품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정성’에 있다. 거기다가 잘 만들어지기까지 하면 그것이 명품이 되는 것이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 숙련되면 그 기술을 인정받아 장인의 경지에 이른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고급스러운 기술을 가진 사람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면 그것을 어찌 값으로 계산할 수 있으랴 싶다.

명품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누군가 그것을 만들었을 것이고 누군가 그것을 인정했을 것이고 누군가 그것에 합당한 값을 치렀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신분에 대한 갈등이 빚어졌을까? 김남주가 들고 있는 가방을 내가 든다고 해서 내가 김남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처럼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드리햅번이 주연이었던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영화에서 멋지고 아름답게 분장한 햅번이 이상한 말을 쓰는 장면이 기억난다. 하층민이었던 햅번이 교육을 통해 변화하게 되는 내용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느냐는 말처럼 겉만 바뀐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변화의 시작점은 내면이어야 하는 것이다. 명품을 드는 것만으로 내가 명품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명품을 갈구하는 대신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일단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조건으로 명품 조건의 하나는 충족된다. 장인정신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한땀 한땀 정성들이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비싼 명품으로 휘감아 명품이 되는 방법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럴수록 감사라는 말처럼. 내 영혼을 명품으로 만드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감사라고 생각한다. 명품가방 대신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가방을 준비하는 것이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방의 종류가 정해진다. 작은 가방엔 한 권의 책과 감사일기를 넣자. 만나는 것마다, 대하는 것마다 감사를 찾아 가방에 넣어보자. 가방을 챙길 때마다 정성껏 감사를 챙기자. 굳이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껏 만든 터무니없이 비싼 명품가방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은가? 내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감사를 담을 수 있는 작은 가방. 그것 하나면 충분하리라.



장혜경 한국 MBTI연구소 MBTI 일반강사, 어세스타 AAF교수단, 한국심리상담협회 아동심리상담사, 한국에니어그램교육연구소 한국형 에니어그램 일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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