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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이에 대하여 / 최민자

부흐고비 2022. 2. 4. 09:01

인간이라는 말.

인간은 그러니까 인+간이다. 사람 인(人) 자체도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받쳐주는 모양새지만 그 또한 완전히 공평하진 않다. 하나는 괴고 하나는 일어선다. 누군가 밑에서 떠받치지 않으면 비스듬하게라도 서 있을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이란 말이다. 거기에 또, 사이 간(間)이 하나 더 붙어야 비로소 사람을 의미하는 독립적인 단어로 유의미하게 작동한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와 소통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스미고 물들이며 완성되어 간다는 뜻이다. 사람이 인(人)이 아니고 인간(人間)인 이유다.

활자를 아무리 정연하게 배치해두어도 사유(思惟)가 일어나는 곳은 행간(行間)이듯이 사건과 사연, 역사와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도 '사이'다. 마음도 마찬가지, 영혼이나 정신이 뇌세포에 저장되어 있는 것도, 좌심실 우심방에 스며 있는 것도 아니다.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 간에 주고받는 전기적 신호가 촉발하는 생화학적 유기적 반응,' 그것이 마음이고 감정이라는 거다. 하니 개별자의 인격이나 정체성이라는 것도 서로 다른 존재와의 맞물림 속에서, 타자와 타자 사이의 조웅관계 속에서 누적되고 표출되는 현상들의 교집합 같은 것 아닐까.

존재의 세 기본재 뒤에 하나같이 간(間)이 따라붙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그리고 인간(人間)……. 천체물리학자도 철학자도 아니었을 옛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가 거대한 매트릭스임을, 모든 게 다 '사이'의 일임을 헤아리고 통찰할 수 있었을까. 인터넷의 웹도 화엄경의 인드라망도 그러니까 다 '사이'의 일이다. 낱말 하나 꿰맞추는 데에도 눈 너머 눈으로 성찰할 줄 알았던 선인들을 생각하면 기술의 진보와 지혜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외롭게 홀로 떠 있는 것 같아도 물밑으로는 가만히 어깨를 겯고 있는 섬들처럼, 모두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목젖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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