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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칼 / 박현기

부흐고비 2022. 2. 14. 07:55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칼을 갈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등을 돌린 채 부엌 바닥에 숫돌을 놓고 쓱싹쓱싹 날을 세우는 모습이 아주 낯설다. 닭을 잡더라도 장독에 몇번 문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왠지 엄마의 뒷모습이 아주 단단하며 칼날보다 더 서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엄마!”라고 불렀지만, 엄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왔냐? 방에 들어가 있어라.”라고만 했다. 그 소리는 엄마의 소리라기보다 냉랭한 찬바람 소리였다. 엉거주춤 방에 앉은 소년은 불안에 휩싸였다. ‘혹시나….’

잠시 후 엄마가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진홍색 상 위에는 방금 날 세운 식칼이 새파랗게 번뜩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년과 엄마가 상을 가운데 두고 앉았다. 소년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다. 쏘아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나는 도둑질하는 자식은 키우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식도 필요 없다. 잘못 키운 내 잘못도 있으니 오늘 둘 다 죽자.” 엄마의 손이 가늘게 떨리며 칼을 잡으려 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급해진 소년이 엄마의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칼도 무섭고 엄마도 무서웠다.

그날 저녁 소년은 일찍 잠든 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불콰하게 들어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자백 받았나?” 엄마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예, 울며 빌다가 이제 잠들었나 봐요. 가끔 용돈 한 푼씩 주소.” 어머니 아버지가 옆에 잠든 동생 둘과 소년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소년은 깊이 잠든 척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밤이 깊어 갈수록 가슴만 답답했다. 당장 내일이 걱정이었다. 돈을 훔친 도둑놈이 아버지께는 뭐라고 용서를 빌며 형과 누나 동생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후회의 한숨만 푹푹 나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고향의 할머니가 아실까 가장 두려웠다. 그러고 보니 아까 어머니에게 혼날 때 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분명 학교에서 먼저 왔을 텐데….

그러다 설핏 잠이 들었던가 보다. 꿈속에서 문득 소년은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맘껏 뛰놀던 고향의 앞 뒷산도 간절하게 그리웠다. 다시 전학을 시켜 달라 할까. 보내 줄까. 도둑질한 걸 알면 할머니는 뭐라 할까. 엄청나게 꾸중하시겠지만, 그래도 무작정 할머니에게 가고 싶었다. 다음 날부터 소년은 밤이면 고향에서 할머니와 뛰노는 꿈을 꾸고, 낮이면 식구들 눈치 살피느라 바빴다. 이상하고 또 이상한 것은 식구들 누구도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일을 이야기하는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똑같은 일상이 흘러갔다. 누가 무슨 말이든 해주면 좋을 텐데 지은 죄가 있어 가슴만 콩닥거리며, 학용품이 필요해도 돈 달라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느냐? 누구랑 어디에 갔느냐? 궁금할 터인데 아무 소리 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루하루가 갈수록 불안했다.

소년은 지금의 학교로 전학 오기 전까지 돈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 때는 어쩌다 돈이 생겨도 쓸 곳도 없었다. 가게라고는 집과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조그만 문구점 하나가 전부였다. 그 흔한 껌이나 눈깔사탕 하나 사본 적이 없다. 소년의 부모는 자식 육 남매 중 한둘을 꼭 시골 할머니 곁에 두고 객지를 다녔다.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자식 여섯을 줄줄이 달고 셋방 구하러 다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 손에 자란 소년이 오학년 일 학기를 마치자 갑자기 전학을 시켜주었다. 영문도 모른 채 한 학년이 한 반뿐인 작은 학교에서 한 학년이 여섯 반인 큰 학교로 전학을 했다. 그러나 소년은 처음 같이 살아보는 어머니 아버지도 어색했고,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 복작이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학교를 파하면 갈 곳이 없었다. 시골에서는 산이며 들 마음대로 내달려도 괜찮았고 군것질거리도 풍부했다. 찔레 송기 감 밤 옥수수 고구마 콩, 보이는 건 뭐든지 소년의 것이었고 장난감이었다.

할머니는 작은 학교에서도 매일 두들겨 맞던 손자가 큰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소년은 한동안 친구 하나 없이 겉돌았다. 다행히 교내 백일장이나 경연대회에서 글짓기 상을 연거푸 받으면서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군청의 과장이란 소문도 한몫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만화방에 가잔다. 처음으로 만화를 보며 우유과자랑 막대사탕, 초콜렛을 먹어봤다. 부드럽고 달콤한 그 맛은 시골에서 먹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극장도 가고 빵집도 가고, 학교를 파하고 쏘다니며 보는 것 먹는 것 모든 게 신기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소년에게는 돈이 없었다. 시골에서는 놀이에 전혀 돈이 들지 않았지만, 도시에서는 가는 곳마다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돈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처음 몇 번은 데리고 다니며 사주던 친구들이 노골적으로 너도 돈을 내라며 압박을 가해왔다. 군청과장 아들이니 돈이 많을 거 아니냐는 거다. 소년은 주눅 들고 소외되기 싫어 돈이란 걸 구해보려 했지만, 있을 리 만무했다. 용돈이 뭔지도 몰랐다.

우연하게 소년은 장롱 이불 속에 돈이 있는 걸 보았다. 돈을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다. 며칠간 수없이 망설이다 몰래 백 원을 꺼냈다. 돈 가져오라는 친구 얼굴도 떠오르고 돈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 얼굴도 떠올랐다. 된다, 안 된다 그렇게 망설여도 돈이 좋긴 좋았다. 친구와 어울려 만화방에도 가고 과자도 사 먹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년은 왕자가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처음 한두번은 그렇게 망설여지더니 서너 번이 넘어가자 그런 생각이 차츰 없어지는 것이었다. 조금 더 대담해졌다. 백 원씩 꺼내던 돈을 이백원으로 늘렸다. 엄마가 눈치 챈 것은 그즈음이었다. 장롱에 돈 못봤냐며 넌지시 묻는 것을 소년은 딱 잡아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도 네,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은밀한 뒷조사에 결국 사달이 났다. 방 두 칸짜리 전세로 옮기려고 미리 타 놓은 곗돈 만원 중 사천 원이었다.

소년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있을 면목이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품안에 있기를 원했지만, 소년은 학교와 친구와 도시가 다 싫어졌다. 무작정 할머니가 있는 고향에 가고 싶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끝내 할머니 곁으로 갔다. 그리고 오십 년이 흘렀다. 열아홉부터 객지를 떠돌던 소년의 머리도 이제 희끗희끗해졌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는 한 번도 돈 훔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때의 그 칼은 소년에게 법과 도덕과 양심으로 평생 살아있다.



박현기 님은 대구수필문예회, 수필미학문학회, 영남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민들레 피는 골목』. 동성교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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