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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간장종지 / 예경진

부흐고비 2022. 2. 15. 07:55

문자가 날아온다. 경쾌한 음향이 온몸을 흔들어 깨운다. 손가락의 터치한 방에 액정 화면 가득히 글 한 편이 펼쳐진다. 한 바닥에 불과한 글이 그저 스쳐갔을 하루를 물구나무서게 한다.

카톡으로 배달되는 글은 작다. A4에 쓰인 글이 대접만 하다면, 카톡 글의 크기는 종지만 하다. 시 한 수, 진심이 담긴 댓글, 삶의 지혜가 담긴 경구 등은 길이가 짧고, 문장이 간결하여 누구나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읽는 이의 마음에 순간 불꽃을 일게 하고,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목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며, 닫혔던 생각을 열어주기도 한다. 글의 양이 아니라, 글에 담긴 온기가 시린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다.

‘무소유’에 대한 글을 대했다. 나는 무소유에 대한 글을 읽으며 역발상으로 ‘소유’로 풀어보기로 했다. 소유는 무소유의 반대어이지만, 어찌 보면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집착이 떠날 때까지 간직하라, 갈증이 없어질 때까지 채워라.’로 해석해 보면 소유하고, 간직하고, 채우는 일이 갑자기 경건해진다. 어쩌면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평생 공들이는 일이 아닐까. 갈증이 남으면 마음은 그것에 매이고, 허기가 남으면 몸은 몸살을 앓는 법.

내 젊은 날의 욕구는 직장 동료의 허세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손 큰 시어머니와 사는 고달픈 현실을 내게 심심찮게 풀어냈다. 어제는 시어머니가 사 온 제철 생선을 박스째 갈무리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단다. 엊그제는 보따리마다 싸온 채소로 저녁 내내 장아찌를 담았다고 말했다. 내겐 그녀의 푸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가 힘들다는 말 뒤로 은근히 드러내는 도도한 여유가 부러웠다. 두둑한 고방과 생선을 쟁여놓고 사는 그녀의 살림살이를 귀에 담으며 새댁은 실눈을 떴다.

나도 내 삶의 고방을 두둑하게 채우리라 작정했다. 값비싼 도자기 그릇의 자태에 혹하여 찬장 가득 사들였다. 명절 끝에 시어머니가 주시는 음식 보퉁이를 챙겨 올 때면 더 불룩해 보이는 형님네 보퉁이와 슬쩍 바꿔치기도 했다. 박스째 구입한 유자를 채써느라 손가락이 곱아지고, 매운 생강즙에 손가락이 아려도 밤이 늦도록 그 일에 매달렸다. 가족을 위해 내 손맛을 높이는 일이야말로 주부가 갖추어야 할 격이라 여겼다. 그럴수록 그릇의 크기는 커지고, 수량도 늘어났다.

세상살이가 집안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둥글둥글 어울려야 할 중견 직장인이 되면서 한껏 사람을 품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몇 사람과 호흡을 맞추면 못해낼 일이 없었다. 순수한 선의도 사욕으로 둔갑하는 세상을 거치며 일을 풀어가는 힘도,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힘도 관계라는 걸 깨달았다. 성에 차지 않는 인정을 받으려 엄살을 피우면서 모두에게 욕심 적다는 말만 듣고 싶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간 맏이로서의 노고를 은근슬쩍 떠벌리며 내게 따뜻한 털외투 한 벌은 사 주어야 한다고 동생들에게 억지다짐을 받아냈다. 말을 뱉을 때까지 그 요구는 너무나 정당해 보였다. 자식 대접에서 늘 꼴찌로 밀릴 수밖에 없던 장녀는 한 번쯤 헛손질이라도 하고 싶었던가. 바로 그때 여태껏 잊고 있던 뭔가가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간장 종지였다. 쓰지 않던 종지였다. 찬장 한 귀퉁이로 밀려 있던 종지였다. 차곡차곡 쟁여 놓은 큰 그릇에 가려진 종지도 내가 가진 그릇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대접도, 주발도, 접시도 아닌 종지는 물을 담아도 겨우 목 한 번 축일 수 있는 양만 받아들인다. 무엇이든 푸짐하게 담을 수 없다. 장미꽃 사이의 찔레처럼, 스타로부터 열 걸음 남짓 뒤에 선 백업가수들처럼 눈길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더욱 조심스레 정성스레 담아야 하는 게 종지가 아닌가.

손바닥에 종지를 올렸다. 말간 보랏빛이 반들거린다. 허리가 볼록하고 속이 넓다. 밥상머리에서 간장 종지를 밀어 주던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국그릇, 밥그릇, 반찬그릇이 널려 있지만, 밥상 한복판에 자리한 엄전한 간장 종지. 어머니는 간장종지를 아버지 밥상에 올릴 때면 늘 두 손으로 받쳤다. 간장은 식탁을 차리는 이의 정성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 간장 종지를 몇 번이나 식탁에 올렸던가. 별 생각 없이 가족이 먹을 음식마다 미리 간을 맞춰 두었다. 가장은 제 입맛에 맞게 생선을 찍어 먹겠다며 굳이 간장을 찾았다. 그는 어쩌면 생선 간보다도 간장 종지를 받쳐내는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작은 것이 때로는 품격을 높인다. 간장 종지는 밥상이나 제사상 한가운데 차려진다. 당신 입맛에 따라 간을 맞추라는 종지의 배려가 주변 그릇을 다스린다. 겨자씨 한 알, 장기판의 졸, 매운 작은 고추, 석간수 한 방울의 힘을 어찌 모르랴. 때로는 옷 젖는 줄 모르는 가랑비 같은 슬픔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법을 간장 종지에서 배우기도 한다.

종지가 작은 만큼 순식간에 차고 넘칠 줄 알았다. 작다고 하여 쉽게 채울 수 있는 건 아니요, 작다고 하여 함부로 버리고 치울 일도 아니다. 작지만 제 위치를 지켜내는 간장 종지의 따뜻한 기품이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삶이란 소유하고, 채우고, 비워내는 끝없는 여정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하나, 둘 제 길 떠나고 나서 가장을 위해 차리는 저녁상 모습이 변했다. 예전과 달리 그릇 개수가 줄었다. 크기도 작아지면서 빈 공간이 늘어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제 소小소유의 과정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삶과 간장 종지의 미덕을 아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오늘만큼은 내 종지 속에 누군가의 하루를 물구나무서게 할 온기로 가득 채우고 싶다.



예경진 님은 부산 출생. (전)중등교사, 제1회 청보작품상 수상, 부경수필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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