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옹기 / 윤승원

부흐고비 2022. 3. 1. 10:33

제10회 동서문학상 동상

옹기 일가족이 베란다에 오종종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쌀이며 고추장을 담은 크고 작은 배불뚝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는다. 요즘엔 플라스틱, 스테인 그릇들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옹기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것들엔 물질문명을 지향하는 획일성만 있어 좀체 정이 가지 않는다. 그에 비해 옹기는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따뜻한 흙의 질감을 느낄 수 있어 볼수록 친근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울러 말한다. 질그릇은 오지잿물을 덮지 아니하고 진흙만으로 구워 만든 것이고 오지그릇은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위에 오짓물을 입힌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옹기는 주 부식을 저장하거나 고추장 된장 등 양념이나 주류를 발효시키는 용구로 사용되었으며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음식저장 용기라고 한다.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는 아니었지만 종갓집이 해야 하는 제사며 집안 대소사들을 묵묵히 치러냈다. 그중 고추장, 된장을 담그는 일은 그해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된장을 담글 때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몸가짐을 단정히 한 후 우물물을 길어다 큰 독에 붓고 왕소금을 자루에 넣어 녹였다. 물과 소금의 농도를 알맞게 맞춘 다음 잘 띄운 메주를 큼지막하게 쪼개고 솔로 씻어 물기 뺀 후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었다. 불에 구운 참숯과 말린 빨간 고추 몇 개도 함께 들어갔다. 그런 다음 항아리 둘레에 새끼줄로 금줄을 치곤 버선을 거꾸로 해서 매달았다. 행여 범접할 악신(惡神)을 물리치고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전래의식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들은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이웃마을까지 이구동성으로 소문이 났다.

장독들은 시간을 숙성시키는 도구다.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시간을 품고 있는 장독들은 나를 있게 해준 과거와 또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릴 적, 혹 장독대에서 놀다보면 파평 윤(尹)씨의 그 짭짤하고 달콤하고 한편으론 고집 센 내력이 고스란히 느껴져 뭉게구름처럼 아득해지곤 했다. 눈을 감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의 인기척들이 두런두런 장독 사이를 돌아다녔다. 달그락! 뚜껑을 열어 항아리에 담긴 것들을 손으로 찍어 맛을 보곤 하던 흰 옷자락들의 할머니들.

여름날 풋감을 주워 보리쌀 담긴 항아리에 넣어두고 일주일가량 기다리면 감은 홍시처럼 물렁물렁하게 익었다. 어린 우리들은 서로 제 것이라 표시해두면서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때 항아리는 조급한 우리에게 기다림의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한번은 남동생과 서로 감춰둔 감 때문에 싸우다 항아리 뚜껑을 깨뜨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벌을 섰는데 장독간에 앉아 울다보면 어느 순간 동생에게 향해 있던 마음의 모서리들이 항아리처럼 둥글어지곤 했다. 그때 장독대며 내 무릎 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달빛들은 아직도 내 기억의 항아리에 풋감처럼 저장되어 있다.

장독들은 대개 조금씩의 간격을 두고 장독대에 놓여있다. 핫바지처럼 헐렁한 품 사이로 햇살과 바람과 빗물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며 장들을 발효시키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는 안과 밖이 단절되어 있지만 옹기는 안과 밖을 연결시켜주는 숨구멍이 있어 이곳으로 들숨과 날숨을 쉰다. 끊임없이 숨을 쉬면서 옹기의 내부는 외부를 지향하고 외부는 또 내부와 소통하며 그 경계를 무애하게 넘나드는 것이다. 장독대에는 그러나 모든 항아리들이 다 내용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 쓰임을 위하여 비워둔 항아리엔 감나무 잎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거나 귀뚜라미가 세를 들고 있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심심할 땐 빈 항아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기도 했는데 당! 당! 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항아리종(鍾)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들이 마당과 뒤뜰을 푸르게 적시곤 했다.

경주박물관 안압지유물관에는 유명대옹(有銘大瓮)이라는 큰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주로 곡식을 저장하던 항아리로 곡물이 자그마치 10석이나 들어간다고 한다. 빗살무늬가 그려져 있는 회청색 경질 토기는 불뚝한 배 둘레에 비해 아래위가 좁아 불안정해 보인다. 그런데도 상한데 하나 없이 천년 세월을 건너온 옹기의 모습에서 어쩌면 대갓집 곳간을 지켰을 당당한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항아리에 저장되었던 곡식이 한 집안과 마을의 양식(糧食)이 되었고 그 양식의 힘이 천 년을 지나 오늘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항아리의 의미가 여간 큰 울림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니었다.

장맛이 좋아야 복이 든다는 말이 있다. 장맛은 그 집안만의 고유한 음식 맛을 내고 좋은 음식은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다. 집안이 번성한 집 장독간을 보면 하나 같이 윤기가 흐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항아리에다 신을 모시고 어떤 소원도 빌면 이루어진다며 신성시하기까지 했을까. 유명사찰이나 종가 댁 안방 실근위에 모셔져있는 신주단지가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모나지 않아 나쁜 기운이 맺히지 않고 좋은 기(氣)가 자연스럽게 돌아 안으로 모아질 것 같은 옹기. 만월이라도 비추는 날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정안수 그릇이 장독간에 다소곳이 올라가 있기도 했다.

옛 사람들은 옹기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옹기는 일상생활에 그릇의 용도로 쓰는 외 순장의 부장품으로도 사용하였다 한다. 그런가하면 죽음을 항아리 속에 넣고 영혼을 잠재우는 널로 사용하기도 했다. 육신도 영혼도 독널에서 발효가 된다고 믿었던 걸까.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 흙으로 빚어진 옹기 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태어날 것을 믿었던 때문이 아닐까? 메주는 죽어서 장을 만든다. 태아를 가진 산모의 몸과 닮은 항아리는 그러니까 제 안에 죽음과 삶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옹기의 둥글게 흘러내리는 선(線)은 부석사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처럼 완만한 곡선을 가진다. 그 둥근 선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슬픔들이 발효되어 편안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 서울시에서 타임캡슐 안에 여러 가지 자료들을 넣어 땅에 묻는 것을 본 적이 있다. 500년 후에 타임캡슐을 꺼내 지금의 시대상을 후손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그 타임캡슐이 항아리모양을 닮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타임캡슐은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역할을 한다. 현재를 숙성시켜 미래를 준비하는 항아리의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햇살목욕을 하고 있는 장독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장을 담그려 하는데 좀 와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내일은 마침 휴일이니 딸애와 함께 가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김치를 담그고 그것을 장독에 함께 저장하며 아이는 또 어느 훗날에 어머니가 되어 이 전래의 풍습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것이다. 문득 칠순의 어머니야말로 유구한 시간을 저장해둔 옹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내 몸이 천천히 둥글어지고 있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미 / 장미숙  (0) 2022.03.02
박하사탕 / 김영미  (0) 2022.03.01
은비녀 / 임경희  (0) 2022.03.01
찌그러진 반지의 기억 / 김혜정  (0) 2022.02.28
서랍속의 기다림 / 김정미  (0) 2022.02.28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