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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박하사탕 / 김영미

부흐고비 2022. 3. 1. 10:34

제10회 동서문학상 동상

현관 계단 끝에 검정 봉지 하나가 놓여 있다. 봉지에는 이름도 성도 없지만 나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알 수 있다. 안에 담긴 것도 반갑지만 봉지 주인의 안녕을 확인했기에 마음이 놓인다. 우리는 이렇게 봉지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읽는다.

봉지 안에는 봄빛을 겨우 받은 어린 쑥이 한 줌이다. 옆에는 깨끗이 다듬은 달래 한 움큼이 곁들여져 있다. 그대로 냄비에 들이기 좋을 만큼 단정한 모습이다. 봄이라 향기 머금은 그것들을 애써 장만하신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우리 집에서 보면 어머니가 사시는 마당이 보인다. 지척이라도 문 꼭꼭 닫고 들어앉으면 백리도 넘는 거리다.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마당을 내다보며 밤새 걱정이고 궁금하다. 이렇게 다녀가신 흔적을 봐야 마음 귀퉁이 짐을 내려놓고 편한 잠을 잘 수 있다. 어머니는 이런 내 마음을 아시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 앞에 무언가 두고 가신다.

어저께는 냉이였다. 냉이 뿌리 그것이 무에 그리 굵다고 쪼개어 씻는 잔일을 자초하셨을까. 동초와 시금치를 시작으로 계절을 봉지에 담아 놓고 가신다. 아삭한 상추에 호박잎으로 싼 애호박이 삶은 시래기와 무 배추로 이어지다 간간이 깻잎 무침이라든지 무장아찌에 고추전으로 가을을 맞는다. 호박죽은 넉넉하니 큰 양푼이다. 구순이 가까운 세월까지 내어주고 아직도 더 주고 싶으신 마음을 봉양해야 할 임무를 잊은 나는 납죽납죽 받아먹기에 길들기까지 했다. 봄에 올라오는 순은 보약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어린 것을 뜯으려면 맨손이었을 것이다. 바람막이 양지 볕은 따뜻하지만 아직은 찬 기운인데 시린 손가락을 녹일 입김조차 불기 힘겨운 노인네의 마음이 찌릿하게 전해온다.

오랜만에 인기척이 들린다. 퇴근시간에 맞춰 나오신 것으로 보아 하실 말씀이 있으시리라 짐작이 간다. 급히 뛰어나가 들어오시라 당겼다. 네댓 개의 계단이 오르내리기 힘들다며 미나리가 담긴 봉지만 주신다. 그러면서 또 주머니를 뒤진다. 풀물이 들어 까매진 손톱과 대비를 이루는 하얀 박하사탕 세 알이다. 살찐다고 안 먹으려는 내게 쥐어주며 계단에 앉는다. 나도 따라 앉았다.

사탕 하나를 까먹었다. 입 안이 화하다. 어머니는 밭에 심을 것을 헤아리신다. 고추 모종이며 가지 모종에서 출가시킨 육남매 사는 이야기로 방향을 틀더니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한 올 한 올 풀어내신다.

“살아 계실 땐 참 많이도 싸우시더니만, 지금 보고 싶으세요?”

대답이 궁해진 어머니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신다. 속정이 깊은 내외분이었다. 그저 대화하는 방법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머니를 슬쩍 놀렸다. 십여 년을 홀로 지키는 집이 부쩍 외로우신가 보다. 늦기 전에 아버님 곁에 가고 싶단다.

“아버님이 어머님 얼굴 잊어버리고 새장가 갈까봐 걱정되세요?”

막내며느리라는 자리가 좋다. 해가 갈수록 간이 풍선처럼 자꾸만 커진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머니는 그저 들어주신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나는 차돌과 푸석돌 같은 모양새였다.

원래 부지런하신 성품인데다 잠시도 쉬지 않는 몸놀림에 천둥벌거숭이 같은 나는 적잖이 힘들었다. 종부로 평생을 사신 손끝은 장이며 큰일 음식에 빈틈이 없었고 바느질도 빼어나 수의에 두루마기까지 못 만들어내는 것이 없으셨다. 나는 어머니께 일을 배우느라 하루 종일 따라다녀도 흉내조차 제대로 못 냈다. 하는 짓마다 실수 연발에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주눅이 들어 도저히 함께 못 살겠다는 소리가 입안에서 하루에도 수 천 번 맴돌았다.

차돌과 푸석돌이 부딪치면 어설픈 푸석돌만 깨어지는 줄 알았다. 이러다 부스러져 폐석이 되는 건 아닐까 서러웠다. 그러나 필요 없는 지저깨비를 떨치고 나서야 온전히 단단한 돌이 된다는 것을 어머님은 누누이 강조하셨다. 어머님도 처음엔 푸석돌이었단다. 시할머니의 엄격함이 군더더기 없는 차돌로 만들었고, 당신의 며느리 또한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나는 차돌이 되기보다는 슬쩍 비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방법을 터득했고 분가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차돌이 되지 못했다. 바람이 차다며 나를 들어가라고 하면서도 어머니는 일어서지를 않으신다. 며느리와 해보기가 좋은 거 같다. 고추장을 담그는 법을 이르며 내년에는 혼자 하라신다. 말은 저리 하셔도 도 해주실 것이 뻔하다. 아무래도 내가 못 미더운가보다. 메줏가루는 어디에 두었는지 소금은 삼 년 묵은 것이 좋단다. 스무 해를 보고 들은 이야기라 새로울 것이 없다.

사탕을 또 하나 입에 넣었다. 이미 맛 들여진 혀는 노련하게 사탕을 감쌌다. 반팔 밑으로 드러난 팔에 소름이 돋는다. 안과 밖은 문하나 차이지만 온도는 여름과 겨울이다. 다시 들어가자 권해도 그냥 앉아 계신다. 박 씨 댁 손부 본 얘기며 베트남 새댁 둘째 아기가 인형 같다더니 또 호박구덩이에 거름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옮겨간다. 물 건너 온 베트남 박이 맛있다고 올해는 한 포기 더 심을 영농계획까지 풀어내신다. 거들어 드릴까 해도 혼자 하신단다. 바깥일을 하는 내가 버거워 보이나 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하나도 그저 있는 것은 아니라했다. 구멍투성이 푸석돌이나 매끌매끌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차돌도 돌담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이 다 있기 마련이다. 푸석돌의 울퉁불퉁한 귀가 있어야 흙을 붙들 수 있으며 깔끔한 외양으로 마무리하는 차돌이 있어야 매끄러운 담을 만들 수 있다.

담에 돌들도 딱 붙어있기보다는 조금은 사이를 두고 있을 때 더 단단하고 아름답다. 알차지는 않아도 커다란 푸석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단단한 차돌이 그 사이를 메운다. 사람사이도 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음이 멀어질까 걱정이다. 적당한 간격은 사람 사이를 너그럽게 한다. 세월이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차돌은 야무진 손끝으로 일하고 푸석돌은 팔뚝 힘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해가 서산에 간신히 걸려 있다. 남은 사탕 하나를 만지작거린다. 마저 털어 넣을까 말까. 입에 넣으면 또 한 대목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내 마음은 부엌에 졸고 있는 국으로만 간다. 손 안에서 사탕포장 비닐이 구겨진다. 조몰락거리며 만지고 또 배배 틀어 싸매기를 여러 번 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머님이 일어나신다. 저녁 잡수고 가시라 권해도 등을 보인다. 몇 해 전 다친 허리가 구부러져 땅과 기역자로 만난다. 어머니의 자존심은 꼿꼿한 허리였지만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하셔야만 한다.

내 걸음으로 한 달음일 것을 어머니의 걸음으로는 한참 걸린다. 떨어지는 해가 어머니의 등에 업혀있다. 가뜩이나 굽어진 등에 업힌 굵은 것이 믿다. 끄집어 내리고 싶을 만큼 연민이 어릉거린다. 남은 사탕 하나를 마저 입에 까 넣었다. 쏴하고 달콤한 맛이 내 목구멍을 거쳐 가슴에 닿자 코끝이 찡해진다. 오늘따라 허리가 더욱 굽으신 듯하다. 연인들이 사탕을 주고 받는 것으로 사랑의 고백을 하듯이 어머님도 내게 가슴 깊은 무언가를 알리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어머니가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이야기를 길을 걸으면서 하셨을 것이다. 내 입에 사탕이 다 녹을 때까지. 말씀하지 않아도 듣고 몸짓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가족인 것을.

내일이면 또 하나의 까만 봉지가 집 앞에 놓여있을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그냥 비닐봉지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어머니와 나에게는 우리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사랑의 중매쟁이다. 나도 그 봉지에 세상에서 제일 큰 사탕을 담아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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