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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동서문학상 금상
에로티시즘의 기호학은 여인의 다리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스타킹에 환호한다. 본다는 행위는 육감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다리의 아름다움은 스타킹에서 완성된다. 발끝서 엉덩이까지 입었지만 말갛게 속살이 비치니 감각이 핀처럼 날카로워지는 걸까. 미니스커트에 유혹이 강렬한 원색 스타킹을 신은 여인이 계단을 오르면 남자들은 목이 탄다. 스타킹과 속살의 색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특별한 자극을 선사한다. 늑대들의 심장박동이 다급해진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허벅지의 깊숙한 곳까지 숨바꼭질을 해대니 어질어질해지리라. 덩실 뜬 달도 내려와 핥고 싶어질 만큼 홀리는 곡선에 남자들의 성적 충동은 꼭대기에 다다른다. 페티시즘도 스타킹에서 퍼지지 않았던가. 책 ‘남자의 물건’으로 대박을 터트린 김정운 교수는 여자의 물건 중에 스타킹을 꼽았다. 거리의 망사 스타킹을 보면 흥분이 범벅돼 낚시가게 그물만 봐도 야릇해진다나?
입었지만 입지 않은 것. 스타킹은 만져지지 않는 살이다. 절제된 관능, 제2의 피부다. 미세한 올이 홀치고 얽혀 살결을 만났을 때는 팽팽하고 도발적이다. 스마트폰 액정보호 필름처럼 살에 밀착되어 은밀하게 교섭한다. 발가벗겨 보여주지 않고 윤곽으로 부추기니 환상은 좀체 가라앉지 않는 농밀함으로 짙어간다. 침범해선 안 될 엉덩이와 다리가 만나는 선, 내밀함의 영역이란 특별하다. 오감을 찌릿찌릿 자극해 놓고 새침하게 경계를 긋는 얄궂은 천. 삽시간의 매력과 유혹을 내뿜는 투명막이다.
스타킹을 입힌 다리는 비밀스럽게 말을 건다. 여우 같은 여자들은 스타킹이 남자를 유혹하는 뇌쇄적 무기라는 걸 안다. 영화에서 가터벨트를 한 여성이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망사 스타킹을 벗으며 유혹하는 장면을 봤으리라. 처음엔 보온을 위해 스타킹을 신었지만 이젠 남녀 육체적 사랑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가스라이터로 변신할 수도 있다. 스타킹은 여자의 물건 중에 알짬이다. 자존의 강화며 드러내기의 도구라 할까. 거리에 투명한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홀로 있다는 건 도전과도 같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여성을 옥죄었던 억압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것이다. 19세기까지 여자들은 첼로를 켤 수 없도록 결박당했다. 말을 타고 전쟁터도 나갈 수 없었다. 다리를 벌리는 것은 무조건 금기했다. 남성의 지배와 억압, 여성의 성은 생식의 수단으로만 간주했을 뿐 섹슈얼리티는 철저하게 무시돼 왔다. 요즘은 광고에서 의도적으로 여자들이 다리를 벌린다. 매혹적인 스모키 메이크업에 블랙 스타킹을 신고 상품 옆에서 다리를 꼬거나 벌려 시선을 끌어당긴다.‘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의 다리 바꿔 꼬기는 얼마나 유혹적이고 긴장감을 안겨줬던가.
스타킹은 소모적인 것이 매력이다. 손톱 가시랭이에 긁히면 앵돌아지게 올이 나간다. 평등사상의 깃발로 불릴 만큼 비싸지 않으니 다행이다. 팽팽한 수평선을 끌어당기듯 허벅지에 올라올 때까지 몰입해 잡아당겨야 한다. 스타킹은 신축성과 색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하트, 도트, 다이아몬드, 꽃무늬, 화려한 장식… 햇볕에 문어처럼 축 늘어진다 싶은 날에 다리를 에로틱하게 입혀라. 지르퉁한 기분일 때 스타킹을 꺼내 다리를 화장하라. 밋밋한 살갗의 지겨움에 감각 있게 색칠하라. 남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그 촉감을 느끼고 아찔함을 맘껏 누려라. 싱싱하게 살지 않는 것은 크나큰 대역죄다. 잡아당기면 쭉 늘어나는 스타킹처럼 유연해지는 것이다. 블링블링한 조명 아래서 현란하게 흔드는 댄서처럼 엉덩이를 실렁실렁 흔들며 문을 박차고 나가라. 스타킹에서 몸의 리듬을 느껴라.
여자들이여, 스타킹으로 도발하라. 스타킹은 세상으로 나가는 무기다. 내가 아는 선배는 젊었을 때 망사스타킹을 못 신고 청춘을 넘겨버려 서럽다고 징징댄다. 누구도 선뜻 손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의 콩떡 나이 오십이 되니 망사스타킹을 보면 화가 치솟는다고 한다. 남자와 다툰 날은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또각또각 걸어라. 꿀꿀한 기분도 환희로 자유를 허락하리라. 스타킹은 동사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게 한다. 삶이 그렇듯이 스타킹은 당기고 끌며, 스며들고 번져나며, 조여들고 풀어지면서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여자의 물건 중에 심장의 괄호를 여는 데는 스타킹만 한 것도 없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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