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두 개의 문 / 이경화

부흐고비 2022. 3. 4. 08:44

제11회 동서문학상 은상

아침부터 시작된 장맛비는 오후에 들어서면서부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장마가 시작된 지는 한참이나 지났지만 그동안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나는 병실을 지키며 창밖을 주시하며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들을 바라보았다. 점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검은 어둠이 온 대지를 감싸 안았다. 어둠이 온 대지를 감싸듯 내 온몸과 영혼도 감싸는 듯하다. 마음속에 시작된 고통은 온몸으로 퍼져 육신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오랫동안 창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병실 침대에 삭정이와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듯 눈물이 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않고 그대로 둔 채 아버지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살며시 붙잡는다.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있으니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어쩜 아버지를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인생의 마지막 문이 열려 아버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버진 나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생의 마지막 문에 들어서지 않고 악지스럽게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악지스럽게 고통을 참아내며 어렵사리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처절하다. 차라리 마음 편히 보내드리고 싶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보며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기에 선뜻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다. 나 또한 간절하게 바라보며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기에 아버지를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인생의 마지막 문은 바로 죽음의 문이다.

일 년 전, 아버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지독스런 가난 속에서도 오로지 근면성실함으로 작은 부를 성취하였던 아버지의 인생은 아들인 내게도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수 십 년 동안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아버지에게 작은 위로를 안겨주었던 담배는 돌이킬 수없는 고통이 되어 돌아왔고, 결국 아버지의 목숨까지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버진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면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만 하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아버지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 또한 자식으로서의 도리라 생각되지만, 아버지에게 아들로서 마지막 선물을 해드리고자 아버지의 죽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 오래오래 사시면서 손자손녀 품에 안아보셔야 됩니다.”

기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겨지지 않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알 수가 없다. 아버진 소싯적에 부모를 모두 잃고 외롭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었다. 그러기에 늘 먼 훗날 태어날 내 아이들 만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수년 전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고 이젠 아버지 혼자 남았는데, 그런 아버지도 인생의 마지막 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소망이 물거품이 될까봐 내심 두려울 뿐이다.

한동안 아버지를 향해 있던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옮긴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두 눈을 감고 아버지가 조금만 더 삶의 끈을 붙잡고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인생의 마지막 문이 조금만 더 있다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도 더디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머지않아 다가올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것은 그 어떤 행복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만남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미 죽음의 늪에 빠져 버린 아버지가 너무도 안타까워 새로운 만남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간절히 원했다.아내와 결혼한 지 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아이를 갖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하늘은 우리에게 아이를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얻게 되었다. 아내가 병원을 찾아 회임 사실을 알게 되던 바로 전날,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마음의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에 찾아든 아이의 회임 소식은 그토록 기다렸던 행복이었지만, 겉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웃고 말았다.

아내와 함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어렵사리 입을 열어 말했다.

“아버지, 곧 있으면 할아버지 되겠네요.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생겼습니다.”

내 말에 아버진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크게 소리라도 지르며 기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죽음을 향한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설렘이 아버지의 온몸과 육신을 감싸고 있었다. 한동안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만이라도 아버지가 죽음을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머지않아 태어날 아이를 아버지가 꼭 품에 안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남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출산의 고통이 아내의 온몸과 온 영혼까지도 뒤흔들기 시작했다. 온 몸을 칼로 써는 듯한 고통이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소스라쳤다.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에 온 몸을 칼로 써는 듯한 고통이라고 말한단 말인가. 나는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아내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점점 밤이 깊어지자 아내는 더욱더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찾아든 고통은 쉽사리 물러가지 않았다. 고통은 밤새도록 아내를 괴롭게 했다. 무통주사를 끊고 새벽 5시부터 힘주기를 시작했다. 자궁이 3Cm이상 열려야만 출산을 시도할 수 있다고 했다. 자궁을 3Cm까지 열리게 하는 것은 산모의 몫이라고 했다. 아내는 탈진상태가 되어 의식을 잃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분만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아이를 품에 안아보고자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버지나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 고통 받고 있는 아내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곧 있으면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가야, 네 할아버지가 널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단다. 조금만 빨리 세상에 태어나렴.’ 간호사가 아이가 나오려고 하니 빨리 분만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분만실로 들어가 아내의 머리맡에 섰다. 아내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했다. 아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내는 그토록 기다라고 바라던 아이를 세상에 내놓고자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썼다. 잠시 후, 아이의 뒤통수가 아내의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것이었다. 드디어 만나는 구나. 드디어 우리 아가를 만나는 구나. 머리가 빠져 나오자 곧 이어 어깨가 빠져 나오고, 손이 빠져 나오고, 두 다리가 빠져 나오고… 아내의 자궁을 빌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의 모습은 세상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아이가 바구니에 놓여졌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병실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가 생각났다. 탯줄가위로 아이의 탯줄을 자랐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 인생의 첫 번째 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이는 너무도 건강했다. 아이는 곧장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잠시 후 아내는 다시 분만실로 옮겨졌다. 분만실에서 아이에게 젓을 물려주었다. 아이는 아내의 젖무덤을 찾아 본능적으로 작은 입을 가져다댔다. 아내의 젖꼭지를 물고 힘차게 빠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어서 빨리 아이를 아버님에게 데려가세요. 아버님이 아이를 기다리시겠어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품에 안고 분만실을 빠져 나와 아버지가 있는 병실을 향해 달려갔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당신의 손자가 지금 갑니다. 병실에 도착하여 조심스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김없이 아버진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품에 안겨주었다. 아버진 아이를 품에 안고 한동안 아이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벙싯거리며 아버지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동안 아이를 내려다보던 아버진 잠을 자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거두었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인생의 마지막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열고 나온 인생의 첫 번째 문과 아버지가 열고 들어가는 인생의 마지막 문이 서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문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문도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문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공간을 들랑날랑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문을 열고 닫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듯 우리네 인생에도 시작이 있었으면 분명히 인생의 마지막이 있음을 우리는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진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생의 마지막 문을 열고 세상을 떠나셨고,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생의 첫 번째 문을 열고 세상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본 인생의 마지막 문과, 아이의 출생을 통해 본 인생의 첫 번째 문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품에 안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과 아이의 삶이 하나가 되어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랬듯 나 역시 언젠간 인생의 마지막 문을 열고 세상을 떠나야할 때가 분명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열고 나온 인생의 첫 번째 문 속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아버지가 열고 들어간 인생의 마지막 문 속에는 과연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킹 / 김경희  (0) 2022.03.04
속돌 / 안희옥  (0) 2022.03.04
이별의 능력 / 권혁주  (0) 2022.03.03
조각보 / 김제숙  (0) 2022.03.03
포옹 / 손훈영  (0) 2022.03.03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