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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떤 의도(意圖) / 지홍석

부흐고비 2022. 3. 10. 16:54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인지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실행이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잘못 전달이 되거나 오해해서 들으면 배신감이 들 수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어서다.

등산을 떠날 때부터 하늘이 우중충했다. 오늘 목적지는 충남 서천의 월명산이다. 대구에서 부지런히 차량으로 달려도 세 시간 반 이상이 소요되는 곳이다. 산의 높이는 삼 백여 미터에 미치지 못하나, 바닷가에 위치해 고도가 높아 보이고 단아한 산세로 인해 정상에서 바라보는 달빛이 무척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왕복으로 7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를 한 번만 쉬고 계속 달려야 해서다. 그런데 아직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일기예보 때문이다. 충남 대부분 지역에 비 소식이 있어 오후 세 시가 되어야 그친다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기상청이다.

작년 여름부터 기상청은 묵사발이다.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는 비아냥에서부터, ‘오보청' '구라청' 등 각종 오명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넓게 확산이 되었다. 나도 한때는 흔들렸다. 기상청의 예보보다 청개구리 소리를 더 믿어볼까 하고 나름 심각한 고민도 했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은 등산을 업으로 하는 나에게는 더없는 악재다. 그런데 막상 주말이 되면 하늘은 쨍쨍, 그렇게 날려버린 행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월명산 등산의 시작점은 비인중학교다. 긴 시간 운전에서 오는 노곤함을 뒤로하고 산으로 든다. 하늘은 놀부의 심보처럼 잔뜩 흐려져 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때로는 산을 올려 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거침없이 불어온 바람에 소나무 숲과 나무들이 일렁이며 춤을 춘다. 그때마다 잔가지에 남아 있던 물기가 옷가지와 얼굴에 날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월명산은 전설의 산이다. 아기 장수에 얽힌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산자락에 한 부부가 살았는데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남부럽지 않았지만, 자식이 없는 게 근심거리였다. 그러던 중 월명산 기슭의 4층 바위에 100일 기도를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해, 기도를 열심히 한 덕택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쌍둥이는 비범했다. 첫 돌도 지나기 전 걸음마를 떼고 칼싸움 연습을 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마당을 날아다닐 것처럼 날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곤하게 잠들었을 때 팔을 들어보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날개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면 집안을 몰살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부부는 아이들을 죽이기로 했다. 아들을 산 아래로 데려간 다음 거대한 돌을 아래로 굴렸다. 쌍둥이는 떨어지는 바위를 애써 받아냈지만 마골대는 깔려서 죽고 용골대는 돌을 받아서 집어던진 다음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고 한다.

힘이 좋고 무예가 빼어난 용골대는 청의 장수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선봉장이 되어 조선을 침공했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압박하여 항복을 받아냈지만, 그는 끝내 부모는 찾지 않았다. 가장 믿었던 대상에게 외면받고 버림받은 비애는 당해본 당사자들만 안다. 그를 낳았던 부모는 용골대가 살아서 조선으로 쳐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월명산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숨어 지내다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사면팔방이 탁 트이는 월명산 정상에 도착했다. 낮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조망이 훤칠해 그 먼 거리를 장시간 운전해온 보람이 생긴다. 동북쪽 구릉지대와 서북쪽의 바다가 훤히 드러나 삼국시대에 이곳이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세 시간여 등산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축축하다. 거대한 정원처럼 꾸며진 비인중학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볼거리, 수령을 알 수 없는 분재처럼 예쁜 노거수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사진과 동영상을 번갈아 찍다 보니 일행 중 가장 늦게 하산을 한다. 먼저 도착한 몇몇 분들의 눈초리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애써 무덤덤한 척했다.

새해 첫날에 일출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날 참석했던 어떤 여자분의 이야기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택시 기사도 70세가 넘으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순발력이 떨어져 급발진 등 위기 상황 대처에 미흡한 것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언젠가 나이 지긋한 분이 운전한 택시를 탔는데 몸에서 냄새가 너무 나더라는 것이다. 그대로 가면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아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금방 세워달라고 하면 기사가 언짢아할까 봐, 핸드폰으로 문자를 확인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기사님 죄송한데요. 친구가 문자로 급한 연락이 왔는데 근처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좀 세워주시면 안 될까요” 하면서 내렸다고 한다.

불쾌한 냄새가 나는 노인들이 더러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짙어지는데 땀의 분비가 원활하지 않거나, 배출은 많은데 피부가 접혀서 관리가 어려운 겨드랑이나 귀의 뒷부분과 사타구니 등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 스스로 잘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냄새를 제거하려면 노폐물 배출을 위한 적당한 신체 및 야외활동도 좋지만, 무엇보다 자주 깨끗이 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 산악회에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분들이 많다. 그중에는 두 부류의 회원들이 있는데, 등산을 마치면 반드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분과 입고 있는 옷이 젖고 아무리 축축해도 그대로 차를 타는 분들이 있다. 내게는 모두 소중한 고객들이라 참을 수 있지만, 함께 한 다른 분들이 불편한 냄새를 느껴 부담스러워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욕을 먹으면서도 제일 늦게 하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내려온 분들이 씻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젖었던 옷과 몸이 조금이라도 더 마를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돌아오는 여정에 자동차 창문을 자주 여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냉난방이 잘되는데도 누군가가 자연의 바람이 좋다며 창문을 자주 내리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거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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