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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스물과 쉰 / 장영희

부흐고비 2022. 3. 11. 08:31

오후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때는 인정받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친구는 오륙 년 전에 소위 '명퇴'를 당하고 그냥 이런저런 봉사 활동을 하며 소일한다고 했다. "아직도 일하라면 잘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어디 가나 무용지물에 퇴물 취급이나.... 봉사 나가는 곳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더라고. 넌 젊은 애들 사이에서 살아서 모를 거야. 난 젊은애들 앞에서 주눅 들어" 허탈하게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대답했다. "얘, 주눅은 무슨 주눅! 죽자 사자 열심히 살았는데 무슨 죄 지었어?"

친구가 간 후 볼일이 있어 백화점에 들렀다가 배가 고파지자 식품 매장에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층을 가로질러 가는데 얼핏 화장품 진열대에 놓인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오후가 되니 화장이 들떠 입가의 팔자 주름은 마치 가뭄에 논 갈라지듯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었고 눈 밑주름은 더욱 자글자글해 보였다. 나잇살인지 청승살이지, 젊을 때보다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날이 갈수록 더 몸무게가 늘어 이제는 아예 얼굴이 어깨에 딱 붙은 듯, 목은 아주 없어 보였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식탐은 더 심해지는지 무얼 먹을까 생각하는 일은 행복한 고민이다.

냉면을 먹을까, 칼국수를 먹을까, 아니면 비빔밥? 이리저리 음식 부스를 기웃거리는데 유리케이스 안에 먹음직스러운 일본식 김밥(마끼)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다가가자 젊은 여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무슨 마끼를 먹을까... 레인보우? 크런치?' 난 여러 가지 색깔의 날치알과 야채로 화려하게 장식된 김밥들 중 '레인보우'라고 쓰인 마끼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 맛있어요?" "그럼요, 맛있어요. 근데 그건요, 젊은 분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나이 드신 분들은 그냥 프라이드 마끼를 많이들 드세요." 프라이드 마끼? 즉, 괜히 새로운 것 먹으려는 당치 않은 생각 말고 먹던 것이나 먹으라는 말로 들렸다. " 늙으면 먹는 것도 다른가요?" 반기를 들려고 눈을 든 순간 나는 금방 꼬리를 내렸다. 야들야들하고 투명한 피부, 윤기 나는 검고 싱싱한 생머리, 탱탱한 가슴, 그리고 그렇게 작은 공간에 어떻게 내장이 다 들어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의 가늘고 얇은 허리, 아니 그보다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당당한 젊음의 위력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늘어진 뺨으로 군살 붙은 아랫배로 언감생심 내가 젊은이들이 먹는 레인보우 마끼를 먹는 새로운 모험을 하려고 했다니. "그럼 그냥 프라이드 마끼 주세요....."

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프라이드 마끼 한 봉지를 사 들고 나오면서 나는 그래도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먹는 것도 다른 '멸종'이 되어 가는 일인가? 돌이켜 보면 내가 스무 살 때 쉰 살 난 사람들을 보면서 스무 살이 나이 먹어 절로 쉰 살이 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쉰 살로 태어나는 무슨 별종 인간들처럼 생각했다. 눈가의 잔주름과 입가의 팔자 주름을 짙은 화장으로 필사적으로 감추고 단순히 생물학적 연륜만으로 아무 데서나 권위를 내세우고,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려고 일부러 크게 웃고 떠들고, 가난한 과거에 원수를 갚듯이 목젖이 다 보이게 입을 쩍 벌리고 밥을 먹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슬픈 존재들.....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 가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 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노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늙는다는 것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그야말로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 색다른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연륜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풍부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실감이 안 난다. 삶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는 게 아니라 단지 삶에 익숙해질 뿐이다. 말도 안되게 부조리한 일이나 악을 많이 보고 살다 보니 타성이 강해져서 그냥 삶의 횡포에 좀 덜 놀라며 살뿐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나이 들어가며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즉,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드니까 나보다 더 나이 들어 가시는 어머니가 자꾸 마음 쓰이고, 파릇파릇 자라나는 조카들이 더 애틋하며, 잊었던 친구들이나 제자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즉, 나뿐만이 아니라 남이 보인다. 한마디로 그악스럽게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 간다고 할까, 조금씩 마음이 착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인간의 '착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 나뿐만 아니라 남도 생각해 주는 그런 착함이 없다면, 그러면 세상은 금방이라도 싸움터가 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발상 자체가 나이 듦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까 그 레인보우 마끼를 못 먹은 데 대해 옹색한 변명을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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