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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기다리면 그날이 오긴 올까?”
긴 전화 통화 끝에 노래의 후렴처럼 친구와 매번 나누는 말이다. 아무도 답을 모르는 화두처럼 공허하다. 지난 몇 해 가을 바다를 건너 날아간 제주에서 며칠을 몸 부딪치며 수다 떨던 날들, 바다의 수평선이 아스라이 보이는 찻집에서 마시던 아침나절의 커피 향, 같이 함에 더 무게를 두었던 우리의 시간들을 어찌 잊을까 싶다.
‘이상적인 삶이란 골방과 광장을 오가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이다.
일 년 반전에 시작된 코로나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삶에서 사람들을 점점 멀어지게 했다. 우리들의 광장이란 철학자의 심오한 얘기가 오가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그렇고 그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어떤 이에겐 노래교실이 열리는 주민 센터가 될 수도, 학생들에겐 교정의 넓은 잔디밭이, 이웃 할머니에겐 매일 드나들던 노인정일 수도 있다. 활짝 열어젖힌 광장에 모여 노래하고 대화를 나누던 평범했던 생활이 이리 그리울 줄이야. 오늘도 길거리엔 쏜살같이 내달리는 앰뷸런스의 소리가 깨진 일상 속에서 왱왱거린다.
한동안 바이러스의 공격이 잠잠한 틈을 노려 친구들은 조금씩 광장으로 발을 내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만만하게 볼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린 광장에서 골방으로 어두운 곳을 찾아가는 바퀴벌레처럼 집안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다. 친구들은 빛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나이를 탓하며 얼굴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지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부디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길 바라며 아쉬움 속에 헤어졌다.
플라톤이 말하는 골방이란 타의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매일 시끄러운 광장에서 머물 수는 없다. 때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장소를 원한다. 그곳에선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난 자유로움을 주어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주는 태생적인 고독이 있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인 골방 생활은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는 외로움이란 병이 찾아와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가 골방을 벗어나 광장으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말이라는 교각을 세워 외로움을 덜어주는 다리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한층 지혜로워진 듯한 친구들은 말했다. 꼭 필요한 일 외엔 외출하지 않았더니 점점 밖으로 나간다는 게 귀찮아졌단다. 처음엔 견딜 수없이 답답했지만 지금은 집안에서 맴돌아도 살만하다고 한다. 기나긴 지구의 역사 속 험난한 환경에 잘 적응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답다. 늘 어울려 살아와 사회적 동물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본성을 내다 버린 것 같다며 웃프게 말했다. 무엇을 탓하랴. 이것도 살아남기 위한 탁월한 선택 아니겠는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말에 조금씩 불안해진다. 이럴 땐 컴컴한 골방에서 한줄기 빛 같은 전화기를 든다. 마음을 내어 안부를 묻는 것은 오랜 시간 공유한 기억이 무디어져 관계가 시들해지는 것이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에게 걱정이 앞섰다. 광장을 멀리한 긴 시간의 골방 생활은 누구에게나 후유증이 올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안부를 주고받았던 H는 갑작스러운 병마가 찾아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들게 싸움 중이라는 소식이다. 하루하루를 간추려 직조해 온 내 삶의 옷자락에 퇴색되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을 수 놓아준 친구이다. 우린 종종 그 기억을 꺼내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달려가 손을 잡아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H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힘내라는 소리만 혼자 되뇌었다. 영혼의 끈이 이어져 있다면 그녀에게 전해질 거라 믿고 싶다. 누군가는 침몰하는 배에서 구명조끼를 벗어줄 수 있는 사이를 진정한 친구라 불린다고 말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아프게 물었다.
문득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싶다. 생명(生命)의 본질은 살아야 한다는 하늘의 명령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나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란 뜻일 터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에 갇혀있지만 기다리다 보면 벗어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뒤돌아보면 간절한 기다림 없이는 어떤 희망도 쉽게 찾아온 적이 없었다.
예전처럼 밖 세상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그날이 찾아오면 골방에서 걸어 나와 광장에서 친구들과 기다릴 것이다.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길이 활짝 열리면 나를 찾아 먼 길을 올 거란 H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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