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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갈맷길 1.2구간: 임량-송정-해운대해수욕장-오륙도

이 땅의 동남쪽, 희망의 밝은 아침 태양이 먼저 솟아오르는 곳. 아기자기한 산과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바다가 위치해 있고, 그 가운데 우리네 삶이 어우러지는 도시가 있는 곳, 그런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부산 갈맷길을 찾아 나선다. 갈맷길은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다. 부산에서 아름다운 바다와 그 주변을 돌아볼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곳이다. 평소 답사 여행을 좋아하는 관계로 인터넷으로 잠시 대략적인 현황을 검색해 보고 배낭에 짐을 꾸려 무작정 길을 나선다.

처음부터 아는 것은 없다. 보고 듣고 체험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처음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새로운 희망과 기대도 되는 것이다. 서울에서 4시간 반을 달린 고속버스가 노포동 고속버스종합터미널에 멈춘다. 이곳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 인터넷으로 본 갈맷길 1코스 시작점인 임량 해수욕장에 가기 위해 갈맷길 지도를 부탁하고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관광안내소는 그 지역의 얼굴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데도 상냥한 미소에 친절하게 37번 버스를 타면 한 시간 반이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저녁 임량해수욕장은 여느 시골 해수욕장 풍경이다. 오래된 주택 담장에는 꽃과 사람 등을 그린 벽화가 정답다. 여기서부터 길을 걸어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항구 그리고 바위와 숲길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해변 길, 그 속에 자리를 잡은 횟집에 불이 켜진다. 어두워진 해변에 랜턴을 켜고 혼자 밤길을 걸어 본다. 일광해수욕장까지 2시간을 걸으니 밤 7시 반이다. 이곳에서 하루 여정을 마감한다.

아침이다, 해수욕장을 걸어보는데 어둠을 가르고 떠오르는 일출을 목격한다. 육지에서는 보기 또 하나의 장관이다. 수평선 너머에서 바다 위를 붉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태양은 역시 모든 생명의 원천이자 벅찬 희망의 빛이다. 백사장에서 위대한 자연의 감격스런 광경을 한참 동안 주시하다 보니, 시인이자 소설가인 난계 오영수 선생의 「갯마을 문학비」가 위치해 있다. 젊은 시절 잠시 이곳에 머물던 체험으로 쓴 소설이「 갯마을」이다.

내륙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기장군청에 들러 안내책자를 얻는다. 이곳 기장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의 만행으로 온 고을이 참혹한 고초를 겪은 지역이다. 바닷가로 이어진 길을 걸으니, 당시 삼중으로 축조한 왜성이 아직도 바다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 당시 왜군들이 주둔하던 성 아래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피눈물로 겪었을 아픔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기장은 멸치와 미역의 고장이다. 선조들이 겪은 아픈 역사를 가슴에 담고 살아온 해변마을인 월전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미역 말리기에 한창이다. 겨울부터 채취한 미역을 차에 실어다 널고, 리어카로 실어 덕장에 말리는 것이다. 미역을 말리는 덕장 풍경에 발을 멈추고, 한 현장에서 사진에 담아 본다. 다른 덕장에서는 널어서 말리는데 이곳은 줄에 걸어서 말리고 있다. 모녀지간인 듯 보이는 여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던 바쁜 일손을 멈추고, 잠시 미역 잎 몇 줄기를 주면서, 맛을 보고 쉬어가라고 한다. 길 가는 행인에게 베푸는 친절이 고맙고 아름답다. 간식인 떡과 과자도 주고, 점심에 먹으라고 생미역 긴 줄기 하나를 통째로 비닐에 넣어서 주는 넉넉한 인심을 보여 준다. 여행을 하면서 이곳 월전마을에서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가는 추억을 가진 행운을 얻는다.

대변항 포구에 다다른다. 이곳 초등학교 담장 안에 조선 말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척화비를 왜성이 지척에 있는 이곳 대변항에 세운 이유를 알만하다.

바닷가에 위치한 절경, 해동용궁사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으로 넘쳐난다. 송정 해수욕장을 지나고 스탬프를 찍기 위하여 헤매는데, 1코스의 마지막인 문텐로드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친절한 부부를 만나니 시간도 절약되고 여행의 즐거움도 맛본다. 1코스의 마지막이자 다시 2코스 시작인 문텐로드에서 석양을 보고, 해가 진 해운대, 젊음이 넘치는 곳에서 하루 여정을 마친다.

다시 이른 아침, 해운대 백사장에서 조선 선조 때 동래부사를 지낸 이안눌선생의 「해운대에 올라」라는 시를 만나고, 일출과 우거진 숲, 조망이 아름다운 동백섬 정상에서는 신라의 문장가인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주변에 시비詩碑를 만난다. 그리고 동백섬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세계 각국의 정상과 회담을 나눈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마린시티 빌딩들을 지나 광안리 해수욕장이다. 이곳 광안리도 넓은 백사장을 가진 아름다운 명소지만, 이기대로 오는 바윗길 산행코스는 부산의 색다른 코스로 또 다른 명승지다. 광안대교와 오륙도까지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며 이어지는 곳곳의 쉼터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위가 절경임은 두 말을 할 나위가 없다. 오늘 2코스의 마지막인 오륙도까지 오후 2시에 도착했다. 그렇게 해서 2박 3일 동안 52km를 걸으면서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도 보고, 곳곳에 시인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시詩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뜻깊은 여행을 하게 된다.

부산에 와서 갈맷길 전체를 돌아 본 것은 아니지만 부산의 바다, 산, 그리고 해수욕장은 자연이 준비해 놓은 천혜의 구성물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부산 시민들 모두 선택받은 분들처럼 느껴진다. 바쁜 시간 자연을 감상하며 사진에 담고, 또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한 편의 멋진 추억이 되는 느낌이다. 비록 초행길이고, 이정표가 잘 발견되지 않아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여행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추억이자 즐거움 그 자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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