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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끼젓 / 조경희

부흐고비 2022. 3. 16. 08:34

오랜만에 침이 돈다. 요리 맛의 절반은 추억 맛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추억이 깃들지 않으면 별로다. 내 고향에서는 간장게장인 '게젓'을 '끼젓'이라 부른다. 끼젓 맛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살아온 인생사에 많은 차이가 있다. 경상도 끼젓 맛은 소태 할배보다 짜다는 것. 그래도 땡겨서 자꾸 먹는 맛이다. 얼마나 짠맛인가 하면 끼 달가지가 열 개인데 집게 달린 달가지 하나면 충분히 밥 한 공기는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이다.

지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 녹산 신호리 명호 지역에는 김이 많이 났다. 또 민물장어 치어와 끼를 잡아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 특히 녹산 수문껄 밑에는 밤중에 횃불을 켜고 민물장어 치어를 잡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옛날도 지금도 민물장어 치어는 양식이 안 되었다. 오로지 자연산 치어를 잡아야만 양식이 가능해서 민물장어가 비싼 이유다. 그때 아버지는 낙동강 줄기 명지에서 김 양식을 했다. 부산 수산대학 수석 졸업생을 영입해서 했지만 5년을 못 견디고 김 양식은 문을 닫았다. 부산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녹산까지 가면 아버지가 마중 오셨다. 양식장과 끼 잡는 모습은 도회지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고 구경시켜주신 기억이 선명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쪽에서는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갈대밭이 굉장히 넓었다. 끼도 엄청시리 많았다. 끼를 잡으려면 물때와 날짜가 중요하다. 음력 보름께 끼를 잡으면 살이 없고 껍데기뿐이다. 맛도 먹을 것도 없다. 끼를 잡는 것도 2인 1조가 되어야 하고 끼를 파는 것도 2인 1조가 되어야 한다.

끼를 먹어본 사람은 낙동강 줄기 즉 사상, 구포, 녹산, 가락 명지, 삼랑진, 한림정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 끼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맛을 상상하기 힘들다. 얼마나 짜고 깊은 맛이 있는지 모른다. 끼는 주로 봄에 갈대밭에서 잡아서 소금에 담가 보리타작 끝나고 벼 심기 할 때쯤 팔러 나온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돈이 정말 귀하다 보니 돈으로 끼를 사는 사람은 부산 시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리를 주고 끼를 바꾸는 물물교환이라 보면 된다. 당시 그 지방 생활상의 특색이었다.

보리 석 되에 끼 한 사발을 준다. 이 사발은 간장 종지보다는 크고 옛날 밥공기보다는 적은 놋개우다. 또 이 끼를 팔러 오는 사람은 한 사람이 오는 게 아니고 부부가 한 조로 이루어져 있다. 끼젓 버지기를 인 여자는 앞에 걸어가면서 "끼젓 사이소." 하면서 먼저 가고 뒤에는 지게를 진 남자가 끼와 바꾼 보리를 짊어지고 따라다녔다. 지금은 개발로 사라진 상태다.

갈대밭에 사는 끼는 바다 끼가 아니고 민물 끼다. 그런데 대부분 바다 끼라 생각한다. 끼가 사는 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다. 그믐이 되면 횃불을 들고 건장한 남정네들이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끼를 잡는 대장정에 나선다. 곡식 까불 때 쓰는 챙이를 들고 물이 허벅지까지 오는데 통발도 그물도 보리 이끼도 없이 끼 담을 자루와 챙이와 부지깽이 하나만 있으면 끝이다. 갈대에 사는 끼는 민물끼라 바닷물에 잠기면 살지 못한다. 이 끼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용하게 안다. 바닷물을 피하기 위해서 갈대 줄기를 타고 올라가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까지 갈대 위에 있다. 횃불을 들고 들어가면 갈대에 끼가 오롱조롱 꽉 차게 달려있다. 그때 챙이 담당은 갈대 밑에 챙이를 대고 옆에 사람은 갈대를 흔들면 끼가 챙이에 떨어진다. 챙이를 든 사람은 재빨리 챙이를 흔들어 끼가 못 나가게 해서 자루에 담고 또 다른 사람은 갈대를 잡고 반복을 한다. 그중에 독한 놈은 안 죽으려고 집게발로 갈대를 꽉 잡고 있다. 그럴 때 부지깽이로 때려서 털어내서 전부 잡아 와서 끼 젓도 담고 볶아 먹기도 한다.

끼젓은 끼 무게에 천일염 20%를 넣고 교반을 잘해서 그늘에 둔다. 두 달 후 발효가 잘 되어 국물이 노리끼리하며 맛은 소태보다 짜고, 덜큰하고 고소한 끼장이 완성된다. 보리와 바꾼 끼젓은 꼬막단지에 담아서 살강 위에 올려놓고 식사 때마다 한 열 마리 정도 꺼내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 일단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끼를 한 마리 잡고 보면 끼젓 국물이 손가락에 묻어 이것을 한번 빨면 입에 있는 밥은 배 속으로 들어가고 다음에 한 숟가락 뜨고 집게 달린 달가지 하나 먹고 보면 끼가 워낙 소태라 그냥 밥이 없어진다.

또한 끼젓은 민간요법으로 완전 약이다. 햇보리로 한 밥을 먹으면 배가 아플 때가 많았다. 이때 끼젓 국물 한 숟가락이면 바로 낫는다. 끼젓에는 미네랄이 엄청 많이 들어있다. 육류, 곡류를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가 풍부해 소화를 잘 시킨다. 또 유익한 미생물이 많아 변비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아마 코로나19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것만 같다. 또 이 끼젓과 꿀과 감을 함께 먹으면 배합의 금기로 반드시 죽음이 뒤따른다고 한다. 그 당시 김 양식장 이웃의 할아버지 말씀이다.

이 끼에는 돌게(바닷게) 와 갈게(민물게)가 있다. 갈게와 돌게는 등껍질, 집게발, 모양 색깔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구별은 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김 양식을 그만두고 영도에서 보세창고업을 하셨기 때문에 그 뒤로는 이 끼젓 맛을 볼 수 없었다. 여름이 되면 빠지지 않고 상에 올라왔던 추억의 끼젓 맛이다. 찰기가 흐르는 흰쌀밥에 끼젓 국물 한 숟갈 넣어 비벼 먹던 그 계절이 성큼 다가온다.

*끼: 게
*땡겨서: 당겨서
*놋개우: 간장종지보다 크고 밥공기보다 작은 놋으로 된 그릇
*버지기: 옹기로 된 단지 뚜껑과 비슷함
*챙이: 키
*달가지: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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