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싸움구경 / 강경주

부흐고비 2022. 3. 15. 09:14

사람들은 옆집에서 음악소리가 나거나 즐겁게 떠 드는 소리가 들리면 항의를 하지만, 싸우는 소리가 날 때는 오히려 조용히 들으며 참아주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뜻밖이었지만,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상황이라면 배려일 수도 있고 호기심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침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뒷베란다 쪽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밖을 보니, 중년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감정섞인 목소리를 주고받더니 드디어 싸움으로 바뀌었다.

옷차림 새로 보아서 중년의 여자는 이제 막집에서 나온 차림이었고, 몇 살쯤 어려 보이는 남자는 다인승 차량 의문을 열어 두고 싸우고 있었다. 꽤 이른 주말 아침이었지 만한, 두 사람씩 구경꾼이 모여들더니, 어디서 나왔나 싶게 금방 열 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중년의 여자가 날카롭게 일방적으로 소리를 쏟아부었고 남자는 작은 소리로 한두 마디로 방어하는듯한 상황 이십 여분 간지 속되었다.

너무나 사납고 아량 없이 몰아붙이는 중년의 여자를 보면서, 내용은 알지 못해도 조금씩 남자가 안쓰럽게 느껴지며 동정심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성을 가지고 싸우던 남자도 이제는 존댓말도 쓰지 않을 만큼 격앙되었고 누군가 말리는 듯하였지만 소용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곧 밀치기라도 할 기세로 턱을 치켜세우며 몸이 더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남자의 입에서 금기어가 튀어나왔다.

“이 여자가 말이야!”

이쯤되면 판이 커질 때로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중년의 여자가 등지고 있던 대문의 이층 집 현관문이 튕기듯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뭐라고 했냐고!”

순간, 모두는 위쪽으로 바라보았다. 부부싸움이야 흔하게 하고 살았지만 타인끼리 거리에서 싸우는 것을 보기란 드문 일인데, 바늘만큼 시작된 싸움이 홍두깨만큼 커진다는 옛말처럼, 생각보다 큰 싸움이 될 것 같아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너 지금 어른께 무슨 말버릇이냐!

어른들 일에 참견하지 말고 어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빨리 들어가!”라며 중년의 여자가 위를 보며 말하자,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는 고개를 잠깐 숙이고는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중년 남자는 신발 아래의 모래알을 비비며 고개를 숙였고, 마치 전력질주로 달리던 100미터 달리기가 급제동에 걸린 것처럼 싸움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예기치 못한 결말에 나를 포함한 구경꾼들의 표정은, 영상의 버퍼링이 느려져서 얼굴의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긴장된 모습이 역력하였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거리에서 싸울 수 있는 용기도 굉장하였지만 감정이 최고조인 클라이맥스에서, 옳고 거름의 판단으로 on-off를 순간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중년의 여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던 상황이었다.

싸움이 자랑스러울 수도 없고 남의 싸움에 호기심을 가진 것도 쑥스럽긴 하지만, 그날의 싸움은 회차를 뛰어넘은 드라마처럼 예상 밖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의 마무리는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남자는 오래도록 참았으며, 여자는 그 순간 내 감정보다는 아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무엇이 더 중(重)한 지를 깨달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오지 않았다면 비겁한 것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국가 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정계에서 일어나는 정쟁과 개인들끼리의 싸움까지 넓혀서 생각해보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매일 일어났을 것이다.

싸움만큼, 에너지가 소비되고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불필요한 것도 없겠지만 사람의 이성이 어디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자면 더러는 싸울 일도 있을 터인데, 절대로 괜찮은 싸움으로 마무리되지 못할 상대는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어른과 싸우는 것과, 남자가 길에서 여자를 이기는 것과 같은 일은, 이겼다고 개운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어렵더라도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끼젓 / 조경희  (0) 2022.03.16
시(詩)와 바다와 갈매기의 길 / 김재근  (0) 2022.03.15
그놈 목소리 / 류정희  (0) 2022.03.15
되로 주고 말로 받고 / 이용미  (0) 2022.03.14
바람학 개론 / 김길영  (0) 2022.03.1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