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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꽃밭에는 꽃들이 / 조이섭

부흐고비 2022. 3. 22. 08:25

올 삼월에 도심에 자리한 오래된 개량 한옥 한 채를 빌렸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ㄱ자 집 안채 건너, 마당 맞은편에 두어 평 남짓한 꽃밭이 있다. 꽃밭의 남쪽은 담벼락에 막혔고, 담 너머 한 뼘 간격도 없이 옆집 건물이 서 있다.

꽃밭에는 어른 가슴팍 높이까지 오는, 허벅지 굵기만 한 가지 세 개가 덩그러니 남아 있는 오동나무가 서 있다. 마치 고층 건물 앞의 어울리지 않는 조각품처럼 볼품없는 모양이야 그렇다 치고, 주인이 바뀐다고 제 살이 무참하게 베어져 나간 오동나무의 처지가 안쓰러워 보였다.

이사한 후, 이 나이 되도록 텃밭 한 번 가꾸어 보지 못한 내가 문우들에게 꽃밭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꺼냈더니 후원자가 줄을 이었다. 초롱꽃을 한 줄 심어주는 이, 꽃 잔디를 심어 놓고 가는 이, 치자꽃과 모란꽃모종을 사다가 심어주기도 했다. 집에서 아끼며 가꾸던 화분이나 다육식물을 들고 오는가 하면, 심지어 국화 모종을 가져다가 분을 여러 개 만들어 주신 선배도 있었다. 나도 보고 들은 바는 있는지라, 지인에게 꽃밭에 어울릴만한 돌을 부탁했더니 직접 세 개를 싣고 와 자리를 잡아 주었다.

어느덧 봄이 무르익어 꽃밭에 화초들로 채워질 때까지 기둥 같은 오동나무 가지 세 개는 움도 트지 않고 메마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가지를 너무 짧게 베어버려 고사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하였으나 기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여기저기 움이 트기 시작하더니 그 자리마다 차례로 팔을 뻗어 내었고, 벋어나간 줄기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잎이 났다.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잎이 드랑드랑 달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꽃밭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혼자 집을 지키던 오동의 초록 이파리가 살랑살랑 춤을 추며 가장 먼저 반겨 주었다. 마루에 앉아 꽃밭 쪽으로 눈길을 주면, 오동잎이 사르르 사르르 말을 건넸다. 비가 오면,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풍운(風韻: 풍류와 운치)을 돋우었다. 문우들에게 비 맞는 오동의 동영상을 찍어 보냈더니 막걸리 사 들고 오겠다는 대답이 줄을 이었다. 오뉴월 꽃밭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오동이었다.

오동은 대나무처럼 빨리 자라고 쓸모가 많은 나무다.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어 그 딸이 자라서 시집갈 때, 그동안 자란 오동으로 농이나 문갑 같은 가구를 만들어 혼수로 보냈다. 오동으로 가야금을 만들면 소리가 맑고 우아하다. 장구통도 오동나무로 만든 것이 공명이 잘 되고 소리가 좋아 최고로 친다. 그런데 오동이 좋은 값하느라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끝 간 데 모르게 올라간 가지와 넓은 이파리가 꽃밭의 지붕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담과 옆집 벽에 가려 남향 볕은 구경도 못 하는 총 중에 오동이 하늘을 가리고 있으니 온종일 따뜻한 볕 한 줌 바닥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문제가 심각했다. 나팔꽃이 자줏빛 꽃 두어 송이를 피우고는 그뿐이었다. 줄기와 잎은 무성하게 올라가는데 봉오리를 맺지 않았다. 초롱꽃도 아침 햇볕이 잠시 드는 쪽 포기만 꽃대가 올라와 하얀 꽃 대여섯 송이가 열렸으나, 온종일 햇볕 구경을 못 하는 안쪽에서는 봉오리조차 맺지 않았다.

큰 나무 그늘에서는 풀뿌리도 다리를 못 뻗는다고, 오동나무의 무성한 가지와 잎이 우로(雨露)와 햇빛을 가려 버린 탓이었다. 꽃밭의 화초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풀들은 그늘 속에서 말라갔다. 노심초사하던 차에 원예에 정통한 분이 무성한 오동나무 가지를 쳐 주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꽃밭의 주인 노릇을 하던 오동을 가지째 잘라내려니 가슴이 아렸다. 작심하고 잘라낸 줄기와 이파리가 마당에 수북했지만, 꽃밭 바닥에 햇볕이 들기는커녕 캄캄하기만 했다. 아픈 손에 약 바르기로 가지 자르는 손이 뻣뻣하게 오므라들어서였다. 다시 용기를 내어 가지 몇 개를 더 쳐내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일단 하루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나와서 햇볕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바깥쪽에 잠시 잠깐 볕이 드는 게 전보다 나은가 싶더니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하는 수 없이 굵은 둥치에서 나온 잔가지, 잔가지라 해도 긁기가 엄지손가락 두 개 만큼 굵은 놈 두 개씩만 남기고 모조리 잘라내었다. 남겨둔 가지에 붙어 있는 이파리도 손닿는 데는 몇 개만 남기고 모두 떼어내었다. 그제야 오동잎 사이로 하늘 구멍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오동에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아래에 남은 풀이나 꽃들을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극단의 조치였다. 무성하던 잎이 사라져 텅 빈 듯한 꽃밭을 바라보니 허전했다. 그 아래 꽃과 풀들이 그나마 햇볕을 쬐고 크게 숨을 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오동나무의 역할이 크고 쓰임새가 많지만, 그렇다고 작은 꽃들을 무시할 수 없다. 화초나 풀도 제 나름의 꽃을 피우고 결실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동이 제 팔다리와 살을 떼어내어 햇볕을 나누어 줌으로써 꽃들과 상생의 길을 가게 되었다. 바닥의 봉숭아꽃, 초롱꽃, 나팔꽃도 한두 송이가 아닌 무더기무더기 피워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 오동나무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널따란 이파리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제 발아래 오순도순 앉아 있는 화초와 풀에 골고루 햇볕을 보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손바닥만 한 꽃밭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람 사는 일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부모가 자식보다 앞서서 아이 할 일까지 도맡아 해버리면, 아이는 오동 아래 화초처럼 되어 버린다. 그뿐이랴. 큰 기업이 국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기여를 많이 하지만 거기에 마냥 취해 있다 보면, 작은 기업이나 공장이 힘을 쓸 수 없다. 부모는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고, 잘사는 사람은 넉넉하지 못한 사람을 곁들어주어 모두 함께 행복을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아야 한다. 오동나무 아래에도 꽃이 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꽃밭 주인이 오동나무를 캐내고, 꽃밭마저 뒤집어엎어 버리고 남새밭을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조이섭 님은 경북 고령 출생이다. 계명대학교 행정실장을 역임하고 정년퇴직하였다. 영남일보 주최 책 읽기 공모전, 상춘곡 문학제 문예 작품 공모전,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경북일보 문학대전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수필세계』신인상(2016년 겨울호)으로 등단하였으며, 수필사랑문학회, 수필세계작가회, 대구수필가협회, 한국에세이포럼 회원이다. 그림그리기를 즐겨 대구사생회, 상화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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