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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연필 / 모임득

부흐고비 2022. 4. 8. 08:51

반듯하게 깎인 연필이 필통에 가지런히 있으면 뿌듯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보자기 둘러메고 십 리 길 뛰어 학교에 가다 보면 필통의 연필은 흐트러지고 까만 연필심은 고단함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필통 뚜껑만 열면 늘 잠자던 나무 향이 배시시 깨어났다. 그 향은 들뜬 마음을 안정시켜 주곤 했었다. 나무 안에 감춰진 까만 속심, 연필도 요즘은 형형색색이다. 한번 검정 연필이면 평생 검은색으로만 써진다. 사람으로 치면 고지식하지만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눈 뜨면 들로 산으로 다니시며 농사짓는 일밖에 모르던 아버지 같다. 밭 갈고 쟁기질하던 거친 손으로 입학하는 딸을 위해 연필을 깎아주셨던 아버지. 부러진 연필을 깎고 또 깎아서 짧아진 몽당연필을 볼펜 껍데기에 끼워 침 바르며 공책에 삐뚤빼뚤 써 내려가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

달포 전, 볼펜도 샤프도 아닌 몇 자루의 연필을 K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어떤 뜻으로 연필을 주셨을까. 철학적 안목으로 하얀 종이에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엮어내라는 의미일까. 생의 행로를 한 글자 한 글자 까만 속심 닳아 없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쓰라는 의미일까. 연필은 넙데데한 얼굴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웃어주던 착한 K 선생님 같다.

선물로 받은 연필을 깎아본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에 앉아 칼로 연필을 깎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러 연필을 깎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연필을 깎는 것은 먹을 가는 것처럼 들떴던 마음을 다스리며 한곳으로 모으는 훈련이다. 적당한 힘으로 칼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사르륵사르륵 육각형의 나무를 깎아내고, 뾰족하게 까만 심을 갈아내는 일은 마음에 굳게 박힌 아집을 갈아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마트폰의 내장된 펜을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 펜으로 글씨를 쓰면 마치 실제 종이에 쓰는 것처럼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붓부터 연필까지 여러 형태의 펜 종류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 재미를 더한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이 시대에 연필을 선물 받은 걸 보면 그래도 연필로 쓰기를 고집하는 이들이 있어 반가운 세상이다.

내 마음을 연하게 그려내는 연필은 수수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연필로 적는다면 선물 받은 네 자루면 가능할까.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지우개로 지우고 마음 가는 대로 다시 써도 된다. 볼펜처럼 한번 써 놓으면 절대 지울 수 없는 똥고집이 아니다. 잘못 쓰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써도 절대로 성내는 일이 없다. 그만큼 연필은 포용과 배려의 상징이다.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니 매 순간 치열한 삶이었다. 길고 쭉 빠진 온전한 연필에서 이순을 바라볼 만큼 살다 보니 내 몸은 겨우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짧은 몽당연필이 되고 말았다. 책보 속에서 뜀박질할 때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연필처럼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순수했던 마음은 침 묻힌 연필로 얼키설키 낙서해놓은 것처럼 까매졌다.

살아온 생을 글로 적는다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살고 싶은 나이가 어디쯤일까. 건강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다시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보고도 싶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삶을 사랑하려고 한다. 한평생 글씨 쓰는 일에 온몸을 바치다 몽당연필같이 된 삶도 내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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