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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정보 시스템의 '잠시 후 도착' 칸에 내가 탈 버스의 번호가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먼저 도착한 버스를 타기 위해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람처럼 달려온다. 급하게 앞문에 오르면서 그녀의 지갑에서 흘러나온 동전 하나가 바닥으로 떼구루루 굴러간다. 문이 닫히면서 버스는 곧바로 출발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전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기다리던 버스를 탄다.

빈자리가 없어도 서서 갈 공간이 충분해서 좋다. 예순이 넘은 중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사람도 없지만 그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에 넋이 빠져있는 학생 옆에 자리를 잡으면 서로 눈치 볼일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넣는다. 조금 전에 주운 동전이 만져진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몹시 아쉬워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동전을 꺼내 앞뒤를 살펴본다.

'이름: 500, 본적: 한국은행, 출생: 1989년'

동전의 나이가 서른둘이다. '이야! 서른둘.' 참 좋을 때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막내가 태어났고 큰 애는 세 살이었다. 아내는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고, 나는 의욕이 넘치는 초보 교사였다. 산복도로 셋방에 살면서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동전을 몇 번 뒤집어 본다. 동전 앞면에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두루미鶴다. 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02호'이면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새다. 10원 동전에는 다보탑이, 50원에는 벼 이삭이, 100원에는 이순신 장군이 그려져 있는데, 동전 중에 가장 액수가 큰 500원짜리에는 왜 두루미 형상을 압인했을까.

예로부터 두루미는 선비의 고매한 기품과 기상을 상징하여 문인과 화가들의 작품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조선 시대 문관들이 착용하는 관복의 흉배에는 학 문양이 새겨져 있다.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에 학이 포함되어 있어 '학수鶴壽를 누린다'는 말도 사용한다. 두루미는 짝을 찾을 때 서로 마주 보고 날개를 펄럭이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빙빙 도는 행동을 한다. 이런 학의 동작을 모방하여 춤을 추는 학무鶴舞가 『악학궤범』에 소개되어 있다. 부산 지역의 '동래학춤'도 학무의 일종이다. 여러 가지 상징성과 함축성 때문에 두루미가 500원 동전의 모델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연천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무논이나 호수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두루미를 여러 번 보았다. 몸통은 흰색, 꼬리와 목은 검은색인데 정수리의 붉은 색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단정학의 자태는 매우 우아하다. 그 멋진 모습을 보다가 가끔 농약을 삼키거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며 날지 못하는 두루미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새는 날아야 한다. 먹이 활동을 위해,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해 날아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닥칠지라도 미래를 위해 퍼덕거리며 날아올라야 한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도 있다. 달리기를 잘하는 타조와 날개가 화려한 공작새, 알을 잘 낳는 닭이 그런 종류다. 푸른 하늘 대신 대지를 선택한 '주금류'는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면서 몹시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새는 우리가 바라는 새가 아니다.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새도 있다. 새장이나 동물원에 갇힌 새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 날 수는 있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다. 인간들의 편의와 행복을 위해 그들을 쇠창살로 가두어 놓고 완상하며 먹이를 준다. 그들은 건전지만 넣으면 움직이는 자동인형에 불과하다. 구속된 새들에게 푸른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비상하는 새들을 보면서 인간도 언젠가 날 수 있다는 꿈을 꾸었고, 누군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20년 넘게 일하고도 월급 한 푼 받지 못한 염전 노예, 시골의 돼지농장에서 일개미처럼 일만 하고 살았던 지적장애인, 인신매매를 당하여 짐승처럼 사는 아이들이나 여성들에 관련된 안타까운 기사들이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지만, 아직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이 자유를 누리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집으로 가는 내내 동전 속 두루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두루미를 컴퓨터 옆에 앉혀 두었다. 저금통에 넣을까, 승용차의 동전통에 넣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 동전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나에게 500원 가치 이상의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꽃을 보고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나는 동전에 박힌 두루미를 수시로 살펴보면서 글을 쓴다. 그러면서 두루미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고민한다.

어떤 예술가가 사진이나 박제된 두루미를 보고 500원짜리 동전 속 그림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두루미는 날개와 다리를 힘껏 펴고 하늘을 막 날아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누군가가 생명력만 불어 넣어준다면 금속 테두리를 박차고 나와 창공을 힘차게 날아갈 것 같다. '그래! 이 글이 완성되는 날, 동전 속에 갇힌 두루미를 하늘로 날려 보내야겠다.' 달포가 지나면서 나름의 글이 완성되었다.

두루미를 주운 지 50일이 되는 날이다. 두루미를 승용차 조수석에 앉혀 황령산으로 향했다. 봉수대가 있는 정상에서 손바닥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따뜻한 입김을 후후 불어 넣었다. '이제 가거라. 너의 꿈을 향해 어디든지 날아가렴.'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를 향해 동전을 힘차게 날렸다.

반짝거리는 햇살을 받은 은빛 동전에서 하얀 두루미 한 마리가 푸드덕 뛰쳐나와 하늘에 빗금을 그으며 날아오른다. '뚜루루' 두루미 울음소리가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사라진다. 서른두 해 동안 동전 속에 갇혀 있던 두루미가 제 길을 찾아 날아갔다.

나도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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