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읽기

툇마루 / 이혜영

by 부흐고비 2022. 5. 23.

오랜만에 어머님이 사시던 집에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지만 집은 주인이 있는 양 온전하다. 나름 견고하게 지은 집이라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의 온기가 가신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기둥은 예나 다름없이 기개를 펴고 있다. 마루 역시 세월의 흐름을 표면의 얼룩진 자국들로 감추진 못해도 저만큼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다.

“이 마루 우리 집으로 옮기면 좋겠다.”

네모만을 고집하는 요즘의 아파트가 싫어 남편은 주택을 선호한다. 나 역시도 아파트의 폐쇄된 공간이 마땅찮아서 남편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다행이 여유로운 집터에 산 지 오래 되어 좁은 공간에 들면 답답함을 밀어내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문득 거실 앞에 툇마루라도 놓고 싶은 욕심이 일어 남편에게 의견을 내놓았다가 지청구만 맞았다.

“그게 어울리기나 할까?”

그이의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라는 표정에 스스로 거두고 만다. 그러나 나의 머릿속은 옛날의 추억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시어머님과 함께 한 시간 속으로 깊이 들어선다.

어머님의 집은 음식을 만드는 정지, 그리고 방과 마루로 되어 있다. 정지는 아낙들만의 공간이었지만, 방과 마루는 온가족의 삶터이기도 했다. 방에는 온돌을 놓아 추위를 견딜 수 있는 공간이었고, 마루는 더위를 피해 시원함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방은 폐쇄적인데 반해 마루는 개방적이다. 그래도 폐쇄적인 공간에는 창호지 문을 달아 사람의 소리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으니, 조상들의 슬기가 엿보인다. 얇은 창호지는 달빛도 드나들어 사람의 간장도 달래 준 것 같다. 마루에는 벽이 개방되어 있고 난방을 하지 않아 시원했다. 귀틀 위에 얹은 마루판 사이로 첩바람이 드나드니 시원함은 극치였다. 더운 날 마룻바닥에 누워 있으면 틈새로 바람이 감질나게 슬쩍 슬쩍 불어오니 첩바람이라 칭하지 않았을까.

여름날이면 하루 종일 마루에 앉아 어머님께 시댁의 내력을 들었다. 방안에서 풀어놓지 않으시던 이야기도 여기서는 자주 들려주셨다. 물론 아낙의 삶이란 손에 일을 달고 살아야 했기에 이야기의 시작은 으레 시집살이에서부터 출발했다. 추운 겨울날 냇가로 나가 광목 빨래를 하던 이야기에서 시작하면 시할아버지로 가서 끝이 났다. 광목을 골백번 빨아 줄에 널며 깨끗해지기를 기다렸고, 풀 먹이고 다림질하여 놓으면 시할머니는 냅다 다시 찬물에 던져 버렸던 이야기며, 시할아버지가 작은댁을 두어 한 집에서 같이 산 이야기가 나와야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어떻게 한집에서 같이 사셨을까요?”

마루를 사이에 두고 본처와 작은댁이 같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궁금해서 묻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워낙 부잣집이라서 땅도 많고 농토도 넓어서 일손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 사정으로 자식들을 많이 낳으려는 욕심이었다고 했다.

초저녁에는 작은 부인 방에서 지내다가도 잠은 반드시 안방에 건너가서 주무셨다고 하니, 그 상황이 더 화가 치밀 것 같아 내가 열을 올리면 어머님은 웃기만 하셨다. 폐쇄된 방안에서는 속앓이를 해도 마루에 나오면 아무 일이 없는 듯이 가족으로 터놓고 살았을 조상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와 쉬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여름밤은 고부간의 이야기로 깊어 갔다. 그러니까 마루는 가족 간의 소통의 장소였고,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곳이기도 하다. 날이 저물면 툇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어머님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저녁마다 이어졌다. 왜 그리도 사연이 많았는지….

밤바람이 밀려와 고부간을 더 가깝게 묶어주던 곳. 어머님과 함께 누워 바라본 밤하늘에는 수많은 사연을 안은 별들이 가득하고, 별만큼이나 쏟아낼 사연이 많으셨던 어머님의 이야기는 어설픈 며느리에게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어져 가족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마루는 어느 집이든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마당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댓돌을 밟고 툇마루에 걸터앉기 마련이다. 어머님에게 이곳은 사람들과의 소통의 자리였다.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교량이었다. 농사일에 지쳐 지나는 이웃이 있으면 흙발로 걸터앉아 시원한 냉수라도 한 대접 들이키게 하고 담소를 나누던 곳, 푸성귀라도 한 소쿠리 이고 가면 끌어 앉혀 같이 다듬어 주던 곳이 이 툇마루다. 한가로운 날에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앞산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뻐꾸기가 울고 채마밭에는 놓아먹이는 닭들이 들어와 흙 목욕을 한다고 분주한 모습이다. 역시 툇마루는 사람만의 소통이 아니고 자연과도 소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툇마루를 옮기고 싶다. 아무리 남편이 단호해도 설득해 보리라. 빈 집에 있는 무용지물이라서가 아니다. 소통의 자리가 필요해서다. 가뜩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 간의 거리가 멀어졌으니 이거라도 옮겨와 사랑방이라도 차려야겠다.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우리 집. 찾아 온 방문객들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자연을 바라보며 서로 정을 나누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엄한 남편 앞에 다가앉게 한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시아, 1950 / 이기식  (0) 2022.05.24
백반 한상 / 김신희  (0) 2022.05.24
가해자 / 이혜영  (0) 2022.05.23
시간은 지우개 / 박일천  (0) 2022.05.21
달궁에 빠지다 / 박일천  (0) 2022.05.21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