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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식당’이어서 전주에 있어야 하고 ‘서울식당’이어서 서울에 있는 건 아니다.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밥집이름이다. 세월이 비껴간 도심 속 달동네처럼 예나 지금이나 매양 같은 모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가끔 이런 밥집을 간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내 아련한 시간들이 머물러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움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허름한 식당 구석자리에 앉아 백반 한 상을 기다리는 잠시잠깐의 그 시간이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 그 편안함이 내 안의 상념의 조각들을 불러낸다.
어머니가 차린 두레상. 두레상에 둘러앉은 가족들과의 기억들이 따뜻하다. 늘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 아침. 아궁이에 장작 타는 냄새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 무쇠솥에서 뿜어내는 흰 포물선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 같은 것이었다.
아침상을 차린다. 아버지는 전날 저녁에 접어둔 커다란 두레상을 편다. 동생들과 나는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을 통해 어머니가 담아 올리는 반찬그릇을 익숙하게 받아 상에 올린다. 이런 일은 매번 하는 일인데도 매번 즐거웠다. 그릇이 크거나 뜨거운 국그릇일 때는 아버지, 아니면 오빠가 받아 올렸다. 아버지는 오빠와 겸상을 하다가도 어머니가 바쁠 성싶으면 어머니를 도와주신다며 두레상 하나만을 고집하지만 결국은 상 하나를 덧대어야 식구들이 둘러앉을 수 있다. 온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는 이때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는 두 분의 잔소리였다. 유독 어머니가 심했다.
“밥상머리에서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해라. 음식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먹는 것 하나로 그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법이다.” 등
심지어 “복 있게 먹어야 복 나는 법”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밥 한 그릇이 상에 오르기까지 드린 공력에 대한 고마움 내지는 그것의 여정과 땀의 가치를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밥상에 둘러앉으면 두 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 했다. 이는 흔히 말하는 ‘밥상머리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밥상에만 앉으면 들었던 터라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을 왜 되풀이해서 들어야 하는가? 하는 일종의 내 어린 마음의 발로라 할까. 하지만 어머니 말에 항변할 만큼 용기가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무례한 행동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남들 앞에서는 우리의 장점을 칭찬할지언정 절대로 단점을 발설하지 않았다. 단점이 드러날 시는 조근조근 집 밖이 아닌 집안에서 다잡는 식이었다. 군기반장이 따로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의 그런 점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점이 우리를 꼼짝없는 순종파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밥상머리 잔소리만큼은 지나쳐 강박관념에 가까웠다.
지금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시절의 변화에 등장한 “농업은 과학이다” 라고 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저 들 아우토반에 내걸린 것에 어떤 반응을 하실까. 과학이라고 하는 알 듯 말 듯 한 단어에 흡족해 하실까. 평생 농사밖에 모르는 시골촌부로서의 충정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어머니. 어머니의 밥상머리 잔소리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거 봐라. 농사 일이 얼마나 중한 지 과학이라 하지 안하냐?” 라고 말이다. 한 낱 촌부요, 내 세울 것 없는 어머니가 신분상승이라도 된 양 화하게 웃으실까. 어쩌면 어머니의 강박관념은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갈수록 어머니의 밥상머리 잔소리가 그립다.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 안 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나를 비춰 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알까.
백반 한상이다. 밥 찌개 외에 양념을 얹어 쪄낸 자반과 지난가을 액젓에 담가 삭힌 고추가 오감을 자극한다. 입안에 드는 한입의 맛이 명치끝을 아릿함으로 스친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내 그리움의 원천은 어디일까.
돌아서면 또 그리워지게 될 백반 한상. 내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 나는 백반 한상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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