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승蝇, 덧없는 삶 / 김순경

부흐고비 2022. 5. 26. 08:31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댄다. 영역을 넓이고 세를 불리려고 합종연횡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맹수처럼 뛰어난 사냥 기술도 없으면서 먹거리만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여차하면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는데도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한다.

음식만 보면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게 문제다. 사흘 굶으면 포도청 담도 뛰어넘는다는 말이 있듯이 배가 고프면 어쩔 수가 없다. 한때 사서삼경까지 어깨너머로 배웠고 사대부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예의범절도 가까이서 보았지만, 허기가 극에 달하면 냄새만 풍겨도 목숨을 건다. 어른들의 밥상이나 치외법권 지대인 제사 음식에도 서슴지 않고 손을 댄다. 설사 그곳이 지옥이라 해도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먹을 때만큼은 품격을 찾는다. 묘猫공이나 서생원처럼 호시탐탐 노려보다가 빠르게 들고 튀거나 경망스럽게 갉아먹지도 않고 견공같이 꼴사납게 온갖 아양을 떨지도 않는다. 물론 대가를 지불하고 허락받은 것은 아니지만, 게걸스럽게 씹는 소리를 내거나 물어뜯지도 않고 격조 높은 양반 흉내를 낸다. 조심스럽게 과일 주스나 스무디를 빨아먹는 상류층 부인들같이 교양 있게 먹으려고 애를 쓴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다. 몸매가 늘씬하거나 피부가 곱지도 않고 진화하다 말았는지 아직도 검은 털이 온몸을 덮고 있다. 가능하면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콧바람에도 날아갈 듯한 수려한 몸매의 문蚊공이 늘 눈에 거슬린다. 하루 한 끼도 절대 과식하지 않고 자외선이 강한 낮에는 은둔생활을 하며 피부관리를 한다. 햇볕이야 어떻게 피하면 되지만 식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식단도 예사롭지가 않다. 아무것이나 먹지 않고 영양가 높은 액체만 쪽쪽 빨아먹는다. 볼 때마다 콧방귀를 뀌면서도 당장이라도 미용실에 가서 면도하거나 아예 모근을 제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식습관이 문제였다. 조상 때부터 부패한 음식을 주식으로 하며 살았다. 별다른 능력이 없어 음식을 만들거나 사냥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상하거나 썩은 음식에 침을 발라 표면을 녹이고 이를 다시 빨아 먹었다. 타고난 후각과 촉각만으로 살아가다 보니 쌀밥 보리밥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 심지어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곳에도 빨대를 들이대다 보니 병균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었다. 한번 낙인찍히니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모든 혐의를 뒤집어썼다.

졸지에 타도 대상이 되었다. 부엌은 물론이고 집 구석구석까지 이 잡듯 소탕 작전이 벌어졌다. 부엌에 사는 친구는 종이에 발라둔 밥알을 먹다가 즉사했고 방에서는 구석에 놓아둔 희멀건 죽을 핥다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천장에 매달린 끈끈이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어쩌다 털 하나라도 붙으면 영락없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신소재 플라스틱 파리채가 피바람을 몰고 왔다. 기습적인 공격에 수많은 일가친척이 봉변을 당했다. 이유도 없이 가족 전체가 몰살당한 집도 많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탁”하는 충격파가 발생할 때마다 선혈이 낭자한 주검을 지척에서 목격해야 했다. 때로는 한 번에 두셋이 나가떨어졌다. 추풍낙엽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젊은 사내들은 달랐다. 군사작전을 하듯 일단 방문을 굳게 닫아 퇴로를 차단하고 일망타진의 자세를 취했다. 이때는 무조건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였다. 각자도생이었다. 방향을 잘못 잡거나 어설프게 날다가는 공중에서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다. 높은 천장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큰 키에다 채까지 합치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도피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다. 명석한 놈은 위험을 예지하고 사전에 자리를 봐 둔다. 아주 비좁은 틈새나 구석이다. 죽은 듯이 붙어 있으면 생명은 보존한다. 겁먹고 섣불리 움직였다간 죽음을 재촉한다. 일급 피난처는 섣불리 내려칠 수가 없는 도자기 같은 귀중품이다. 차려진 밥상이나 할아버지 머리 같은 곳도 차선책이지 안전지대는 아니다.

문제는 화생방 공격이다. 제네바 조약에 따라 전쟁 때도 사용할 수 없는 살상 무기를 집안에서 사용한다. 재래식 무기가 한물가고 첨단과학이 동원된 최신형 전기 전자 무기마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화학무기를 사용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려 놓고 방문을 닫으면 도망칠 수가 없다. 신병훈련소를 다녀온 사람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숨을 참는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바로 정신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중 삼중으로 틀어막아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하이섀시 창문일 때는 대형참사로 이어진다.

앞날이 걱정이다. 전염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이 되면서 삶의 터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식물의 꽃을 수분시키는 일이다. 열매를 맺게 하는 가루받이는 벌 나비도 하지만 조족지혈이다. 종국에는 과일이나 채소의 섭취량이 부족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먹이사슬의 파괴도 문제다. 사마귀나 거미는 물론이고 양서류 등의 먹거리가 바닥나면 연쇄적인 멸종도 일어날 수가 있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암컷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백여 개가 덩어리로 뭉쳐진 알을 틈틈이 낳아도 성과는 미미하다.

편협되고 왜곡된 교육 탓이다. 물론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공과를 분명하게 가르쳐야 할 교육자들마저도 책임을 전가했다. 한때는 벽에다 혐오스러운 포스터까지 붙여 놓고 나쁜 인식을 각인시켰다. 심지어 잔인하게 죽인 사체를 가져오라고 아이들에게 숙제까지 냈다. 선생들은 비닐이나 성냥 통에 담아온 시체를 검시하듯 마리를 세기도 했다. 방금 도배한 천장이나 벽에다 똥을 싸고 밥상 주위를 배회하며 성가시게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똥파리라는 오명을 덮어쓴 채 묵묵히 견뎌냈다.

지금은 풍요 속의 빈곤 시대다. 생활 습관과 위생 관념이 바뀌면서 삶의 터전이 대부분 사라졌다. 화장실이나 쓰레기장이 줄어들고 퇴각하는 군인들이 모든 곡식을 거둬가고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처럼 동이 트기 전부터 청소부들이 쓸고 닦기를 반복하니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예전처럼 재래식 무기나 첨단 무기를 사용한 대량 학살이 없어도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어디를 가도 아기 울음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고 저승 가면 조상 볼 면목이 없다는 어른들의 탄식만 담을 넘는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한쪽이 잘살면 다른 한쪽은 빈곤층이 늘어난다. 지금도 무상 급식소 앞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비가 내려도 목숨 걸고 줄을 선다. 천지에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남자 / 남정언  (0) 2022.05.27
취약지구 / 송복련  (0) 2022.05.27
등 굽은 나무 / 이인환  (0) 2022.05.26
달, 세상에 물들다 / 정재순  (0) 2022.05.25
두루미를 날려 보내며 / 양희용  (0) 2022.05.2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