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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과 원문 |
상현과 하현에 파도 소리 줄면/ 해녀들 짝 이뤄 풀처럼 진을 쳐
돌아보며 옷 벗으라 재촉하고/ 허리춤 꽉 묶었는지 꼼꼼히 살피네
바다에서도 평지를 걷듯 하고/ 저마다 두레박 하나 끼고 있네
머리 숙여 발을 차고 입수하니/ 물에 사는 인어인가 의아하네
잠시 사이에 고요해져 그림자도 없으니/ 바다거북과 상어한테 잡혀먹히지는 않았는지
잠시 뒤에 보니 번갈아 머리 내밀고는/ 휘파람 불듯 숨비소리 내뿜네
오르락내리락 십여 차례 반복하더니/ 광주리에는 해산물이 가득
둘러앉아 해산물 헤아리는데/ 바위처럼 수북이 쌓여 있네
뛰어난 재주에도 천대받아/ 마을에는 함께 살지 못하네
중국 사람들 전복 크다고 자랑하며/ 손가락 몇 개 겹친 크기라 하는데
지금 보니 대야와 쟁반만 한 것도 있고/ 작은 것도 말 위의 자바라만 하네
그 맛은 해산물 중 으뜸이니/ 섬사람들 회와 구이로 실컷 먹네
여기와 멀리 떨어진 대궐에서는/ 담박한 음식으로 수라간 채우니
어찌하면 갓 채취한 해산물 받들어/ 만세 누리실 음식으로 바칠까나
月弦濤聲縮 월현도성축/ 女伴屯似苞 여반둔사포
相顧催渾脫 상고최혼탈/ 腰際審綰包 요제심관포
蹈海若平塗 도해약평도/ 長物人一匏 장물인일포
倒首歧足入 도수기족입/ 忽訝水居鮫 홀아수거교
移時閴無影 이시격무영/ 復㥘餌鼇蛟 부겁이오교
俄看迭出頭 아간질출두/ 砉砉聲如嚆 획획성여효
出沒十餘轉 출몰십여전/ 有物溢筐筲 유물일광소
週坐驗豊寡 주좌험풍과/ 墣墣象巖嶅 복복상암오
藝絶猶見陋 예절유견루/ 村閭禁幷巢 촌려금병소
漢人誇鰒大 한인과복대/ 或如數指交 혹여수지교
今看類盥盤 금간유관반/ 小如馬上鐃 소여마상요
其味冠海産 기미관해산/ 島傖飫膾炮 도창어회포
京闕道里遼 경궐도리요/ 淡薄充御庖 담박충어포
爭得奉新採 쟁득봉신채/ 薦作萬歲餚 천작만세효
- 이광사(李匡師, 1705~1777), 『원교집선(圓嶠集選)』 3권, 「기속(記俗)」
해설 |
신지도는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하는 섬으로, 현재는 전복의 산지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절도(絶島)의 유배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조선 후기의 저명한 서예가였던 이광사도 신지도에서 15년간 유배를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괴롭고 견디기 힘든 유배의 일상을 서예와 시를 짓는 일로 달랬다. 신지도에서 체계적 서예 이론서인 『서결(書訣)』을 집필하였고, 부령 유배지에서처럼 틈나는 대로 붓을 들어 시를 지었다.
유배형에 처해진 사람은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불안감, 개인적 울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내면의 정서를 시에 담아내기도 했지만, 유배지의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체험하면서 유배지의 풍경과 풍속, 지역민의 생활상을 시에 담아내기도 하였다. 이광사가 함경도 부령(富寧)에서 전라도 신지도로 유배지를 옮긴 뒤 물질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 위의 고시(古詩)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광사의 눈에는 신지도 바닷가의 풍경과 신지도 사람들의 일상이 이색적이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특히 해녀들이 무리 지어 물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해녀들의 입수 과정에서부터 물밑과 물 위를 오가며 숨비소리를 내뿜는 모습, 채취한 해산물을 세는 모습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시에 담아내었다. 당대 유배인들이 남긴 기속시(記俗詩)에도 바닷가 사람들의 삶과 그 모습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보기 드물다.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 중에 이광사 눈에 띄는 해산물은 단연 전복이었다. 대야와 쟁반만 하다는 표현에 과장이 섞여 있는듯하지만, 자신의 눈에 유난히 크게 보였던 완도 전복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서 그런 듯하다. 이광사가 신지도의 이색적인 풍경과 해녀들의 모습을 시에 담아낸 데에는 물론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던 해녀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근래에 완도군 신지면에 이광사의 적거지가 복원되었고, ‘원교 이광사 문화거리’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완도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광사가 신지도에 남긴 자취를 더듬어 봄직하다.
글쓴이 : 이승용(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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