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읽기

우리 집 벽에 귀가 달려 있다 / 조일희

by 부흐고비 2022. 6. 21.

딩동! 밤 9시다. 얼굴에 팩을 붙인 채 현관문 외시 경에 눈을 갖다 댄다. 모르는 얼굴이다.

“누구세요?”

“아랫집에서 왔는데요. 우리 집 천장에서 물이 새서요.”

다급한 내용에 벌컥 문을 연다. 두툼한 몸집의 여자가 집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아래층부터 담아온 말을 콸콸 쏟아낸다.

“저기요, 오늘 밤 물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근데 혼자 사시죠?”

이 무슨 맥락 없는 질문인가. 마사지 팩을 뒤집어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른 시간이다. 검은 박스를 든 남자와 플라스틱 양동이를 든 여인이 찬바람과 함께 문 앞에 서 있다. 수도 공사를 하러 온 아저씨와 보조로 따라온 그의 아내다. 아저씨가 둥근 헤드폰을 끼고 방바닥 가장자리를 훑는다. 정밀한 작업에 방해될까 뒤꿈치를 들고 베란다로 나오는데 일없는 보조가 따라 나오며 조심스레 이중문을 닫는다. 공사 일정을 물어보니 바닥을 깬 후 낡은 관을 교체하고 공구리 작업까지 마치는데 이틀 정도면 충분하단다. 그사이 물새는 곳을 찾았는지 아저씨가 놀고 있는 조수를 부른다.

“어이, 석순아.”

누수 탐지기를 벗으며 아저씨가 석순씨에게 한마디 한다.

“무슨 이틀이여. 넉넉잡고 나흘은 걸리겠고만.”

“아저씨, 밖에서 한 말을 어떻게 아세요?”

“이거 쓰면 윗집 아랫집 저 건넛집 소리까지 다 들려요.”

아저씨는 득의에 찬 얼굴로 헤드셋을 가슴까지 들어 올린다.

헤드셋을 쓰고 소리를 듣는 남자가 또, 있다. 영화 ‘타인의 삶’에 나오는 비즐러다. 건조한 눈빛, 일자로 다문 입,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타인의 삶을 도청하는 비즐러는 동독의 비밀경찰이다. 그는 어느 예술가 커플의 일상을 훔쳐보고, 기록하고, 상부에 보고한다. 그러다 두 사람의 인간적인 삶에 시나브로 융화되며 냉혈한冷血漢가슴에 따듯한 피가 흐른다. 그의 눈과 귀에 브레히트 시가 보이고 베토벤 음악이 들린다. 묵직한 울림을 주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타인을 훔쳐보는 행위는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이유로든 정당치 않은 일일테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본다. 땅 아래 숨어 특정 대상의 사생활을 엿 듣던 쌍팔년도와 달리 하이테크로 업그레이드된 매와 박쥐가 지상과 지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누구도 그들의 매서운 눈과 예민한 귀를 피해갈 수 없다. 혹여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라도 있으면 모를까. 벽을 뚫고 기기를 숨겼던 동독의 장치는 이제 동네 조무래기도 설치할 수 있는, 한물간 기술이다. 현대의 프로 사냥꾼들은 올가미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하게 지능적으로 매복해 있다가 알짜배기 정보를 잽싸게 낚아채 간다. 그렇게 포획한 정보는 그들만 아는 저장 창고에 차곡차곡 집적된다. 이 순간에도 저들은 사냥감의 기쁨과 슬픔, 내장에 숨긴 치부까지 샅샅이 훑고 있을 것이다. 단순하지만 단호해진 기계가 이기利器일까, 무기일까. 아리송하다.

작금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익명의 세상에 살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숨길 수 없는, 숨을 수 없는 노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첨단 기술자들은 확보한 글의 파편과 말의 색깔로 마음을 읽고 취향을 분석한다. 어쩌면 수시로 백업되는 정보를 통해 내가 모르는 나의 본성까지 파악했을지 모른다. 정보 수집꾼들은 감시와 감청에 대해 합법적 동의를 구할 만큼 용의주도하기까지 하다. ‘안 누를 거야? 그럼 너만 손해야.’ 오만하게 깜박거리는 예스 버튼을 재깍 누르지 않는 거로 소심한 반항을 해보지만 결국 검지에 힘을 주고 만다. 훔쳐보겠다는 심보를 알면서도 벨도 없이 허용 버튼을 누르는 이유는 저들이 던져주는 맛보기 정보를 얻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라고 핏대를 세워본다. 그런들 나는 이미 정보 사회에 길들여진 유닛인 것을.

너는 아는데 나는 모른다? 나만 모르는 정보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다. 나신裸身을 보여주고 얻는 정보 조각은 치사하고 아니꼽지만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 또 방패가 되고 창칼이 된다. 먹고 먹히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내게 없는 정보의 창을 상대가 갖고 있다는 것은 벌거벗은 몸으로 세렝게티 초원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다. 날카로운 창이 언제 내 심장을 찌르고 갈비뼈를 도려낼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자연인처럼 문명을 등지고 살 배짱은 없으니 철기로 된 창은 아닐지라도 짱돌 몇 개쯤은 꿍치고 다녀야 안심이 되겠다.

다년간의 공사 데이터를 축적한 아저씨의 예측은 적중했다. 양회를 굳히는 작업까지, 바닥 공사는 정확히 나흘 만에 끝났다. 그나저나 아랫집 여자는 무슨 근거로, 어떤 정보로 내가 혼자 산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우리 집 벽에 귀가 달려있는 모양이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춤 / 최운숙  (0) 2022.06.22
사향노루 / 정정예  (0) 2022.06.22
진부령 연가 / 최미아  (0) 2022.06.21
묵정밭의 봄 / 양일섶  (0) 2022.06.20
잉글리쉬 아이리스라는 향기 / 유영희  (0) 2022.06.17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