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 느낌

성윤석 시인

by 부흐고비 2022. 6. 29.

성윤석 시인
1966년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묘지 관리 일을 했고, 1999년부터 서울에서 벤처기업 운영을 하다가 실패했다. 2013년 5월부터 한 해 동안 마산 어시장에서 명태 상자를 나르기도 했다.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공중 묘지』, 『멍게』, 『밤의 화학식』이 있다. 제3회 박영근작품상, 제4회 사이펀 문학상, 2020년 김만중문학상 시·시조부문 대상을 받았다.

 



척(尺) / 성윤석
고작 수십 년 뒤에 아무 가치도 없을/ 것들을 위해 전철을 타고 화를 내고 울고/ 고작 몇 달 뒤면 아무 마음도 없을/ 일에 먼 곳까지 가고 가지 않고/ 아니 눈 한번 질끈 감을 사이/ 잊혀져 버릴 나의 것들을 위해/ 눈물을 두고 왔다고 생각하고// 나는 자를 가질 수 없다/ 꽃들은 피고 벌은 나는데/ 더 이상 내가 생각하지 않도록/ 멀리 더 멀리 질주하는 마음들에게/ 다만 나는 아무것도 잴 수 없는/ 자를 보내다// 나는 불안을 말하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사자의 서(死者의 序) / 성윤석
가령,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온 길이 처음 들어간 그 길이라면, 가령 벗어났는데 벗어난 것 같았는데 몸은 그대로요, 마음도 그대로였다가 이윽고 눈도 없어지고 콧김도 사라지고 입도 없어 단지 어떤 느낌만 있었었는데 가야할 길과 돌아가야할 길이 아무래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산길 조그만 집에 가위로 오려진 흰 종이 하나로 보였다가// 아아 이젠 무엇으로도 살 수가 없는 대낮이었다가 나의 약점들, 사랑해서 생긴 나의 약점들인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그제서야 떠올랐다가 어머님이 계신 정신병동이었다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가// 내내 내리던 수많은 빗방울 같은 망설임, 처음 가는 데도 와본 듯한 골목길 뛰어 나오면 다시 그 골목길, 본래 이 세상의 하나였으니, 하나는 이 세상의 것이니, 세상 그 자체였으니 이렇게 듣고 있는 나, 를 깨닫고 있는 나, 그제서야 무언가 어렴풋이 감지되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처음으로 욕심이란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감지되는 그것은 하나의 점이었다가,// 태초의 것이었는데 가령, 하나의 눈동자였다가, 코였다가, 아함 벌린 입속의 혀였다가 그것은 물속의 것이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힘이 생겨 무엇인가를 꽉 붙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는데// 假令, 나는 그때 假靈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죽음 / 성윤석
1,/ 죽음을 말한다는 것은 불랙 유머다. 노을이 구천(九天)으로 깨어져/ 다시 속을 뒤집는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 발광하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다만, 누군가가 닫힌 책을 열 때, 강물은 한 번 두 번 세 번 빛난다//
2./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물방울 튀는 저 꽃잎이/ 헛것이라 하더라도 이 몸 일체가 썩는다 하더라도 수천 년을 살아온/ 이 나. 라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다시 열일곱이 되어/ 이 별을 딛고 크게 울어 보일 것이므로//

힘든 밤인가 / 성윤석
죽음// 모든 사람이 정지해 있고 나 혼자 걸어 다니는/ 날이 있었다/ 나는 정지해 있고 모든 사람이 걸어다니는 날이/ 있었다./ 나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밀실에서 누가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산 채로 얼린 전갱이를 해동시켜 살리는 기술을/ 그가 보여줬지만, 두 번은 못할 일로 보였다//
삶// 냉동된 전갱이의 꿈같은 생각이 해안가를 떠돌게 했다/ 전갱이가 꿈을 꾸기는 할까/ 전갱이는 꼬리에서 몸통 쪽으로 바지 지퍼 같은 비늘이/ 나 있지 열었다 닫았다 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열거나 닫을 수 없는 생활이 여기저기에 있지/ 방파제 아래까지 몰려와 한 마리가 한 마리를 치고 달아나고/ 한 마리가 그 한 마리를 뒤쫓는 전갱이들의 장난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먹은 회가/ 다 올라 와// ㅋㅋ 그게 삶이라고 너는 말했지//

 

빙장氷葬 / 성윤석
먼저 시신의 몸속에 있는 칩들을 제거해야 하오 팔뚝이나 무릎에 있는 폰들과 인공지능이 감시하는 대체장기들 스스로 진화한 랜섬웨어 더블들 잔여파일들까지 수은과 납 성분 기타중금속들은 나중 문제지 다른 지역에선 어떻게 하는 진 모르지만 여기선, 우리는 액화질소가스를 사용하오 구시대적이지요 영하 200도로 시신을 얼려버리오 그리곤 분쇄하는 거지 그리고 나면 딱 30cm 짜리 관에 들어간다오 냉동 부활 그거 실패한 정책이오 부활은 성공했지만 자살률이 90프로지요 나머지 10프로도 정신수용소로 보내지오 어느 나라냐고 물으셨소 이 별엔 이제 나라 따위 국경 따위는 없다오 지도자 뭐 이런 존재도 없다오 더 나은 인간이 없다는 거지 오래전에 이 별은 투표를 통해 빙장을 승인했다오 그때도 지도자는 없었지 발기인은 있었어도, 투표는 10분만에 끝났고 모두 빙장을 선택했소 토양이 모두 오염되었거든 방금 화성을 얘기했소 ㅎㅎ 오염되었어도 이 곳만한 곳은 없소 분쇄처리가 끝난 관은 모두 오염지역으로 보내지오 그곳 땅에 묻히는 거지요 관도 모두 한 달안에 분해되오 미생물들이 다 분해하지요 놀라운 것은 이 분쇄된 시신이 묻힌 곳의 땅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거요 시신의 영양을 빨아먹고 꽃들이 벌레들이 살아나는 장관을 보인거요 근데 아까부터 수상했는데 당신은 어디에서 왔소 냉동에서 부활한 것이오 부활이라니, 그럴리가! 이리 온전할 수가 없소//

산동반점 / 성윤석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는 일은 닿아 보지 못한 언덕/ 그러니, 잘 지내고 있다고/ 답을 해줍니다/ 갈 수 없으니, 가는 게 아닙니까/ 저녁에는 저녁을 맞이하고/ 밤이 흘러가는 광경을/ 바라봅니다/ 기차가 지나갑니다/ 가로등이 켜집니다/ 비도 내리고 눈도/ 내립니다 사람들이/ 나랑 상관없이 싸우고 나에겐 묻지도 않습니다/ 한 사람은 아예 웁니다/ 퍼질러 앉아 우는 경지가 나는/ 부럽습니다/ 사람이 울 때는 멀리 멀리/ 동네를 돌아갑니다/ 잘 지내야 합니다 잘 지내는/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숙제 떠날 수 없으니, 떠났습니다/ 절벽이란, 눈앞의 벽마저 아래로/ 무너져 내린 것/ 나는 잘 있어요 나 있는 곳은 오! 혼자 있는 곳/ 잘 지내시길 잘 지내시는 일은/ 내가 눈 감고 만져보려는 풍경/ 골목 앞길/ 비닐 랩을 쓴 중국집이/ 크고 먼 나라를 감추고 있습니다//

인간의 동작 / 성윤석
성냥을 치익, 그어 담뱃불을 붙인 뒤 손을 모아/ 성냥불을 감싸는 그녀의 손/ 왜 웃으면서 그럴까 담배 필터 끝을 손바닥에 탁탁/ 친 뒤 입술로 가져가는 그는 왜/ 입꼬리를 살짝 올려놓을까/ 여기서/ 저기서/ 담배를 피울 땐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동작은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 항상 어딘가에 도착해 있고/ 어딘가로 다시 가고 있다/ 밤길도 밟는다고 생각하면 구불텅거리며/ 가던 길을 다시 가는데/ 보증서와 함께/ 오래전에 묻어두면 예쁘게 있다 사라질/ 거라고 팔아먹은 내 슬픔이 정말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2170년 12월 23일 / 성윤석
흐린 겨울 저녁인데 죽은 자의 글을 따라가는 앳된 소녀가 롤러스케이트 같은 기계를 타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땅은 좁아졌고 사람들도 줄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문장도 하늘로 떠올랐다 All’s Well That Ends Well* 결과가 좋으면 다 좋아요 공중에서 눈이 내렸다 검은 구름에서 흰 눈은 여전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구름 위를 한 사내가 바바리코트를 입은 채 걷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신인류였다 속도 중력 감정 들이 비틀어졌다 우리가 본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여성과 사내 들은 주로 공중에 떠 있거나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은 오염되었고 신인류는 이제 불행을 매수하지 않았고 내버려둔 채 세상 최후의 고독을 살았다 거기에 나는 없었지만 이에 대한 어떤 증거도 거기엔 없었다 고스란히 새와 식물 들은 보였지만 불법이긴 했지만 수명 단축 기계가 여기저기 도시의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아요’ 그 도시의 재해대책본부에서 쏘아올린 저녁의 문장이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신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마치 돛대 같았다//
* 셰익스피어 희곡 제목.

검은 개인 / 성윤석
만인에 의한 만인의 만인*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고/ 만인의 펜과 만인의 마이크를 쥐고 만인을 향해 소리/ 지른다 만인이 만인의 멱살을 쥐고 만인이 만인을/ 비웃으며 만 잔의 술을 비운다 이럴 때 만인은 각자의/ 만인 각자의 만인끼리 사랑하고 헤어지고 비난하며/ 뛰어다닌다 나는 개인이라서 만인을 경멸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만인이라서 만인을 지긋이 바라보고/ 그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을 생각한다/ 한 개인의 걸음 말이다/ 저녁이란 게 늘 이렇다/ 창밖 풍경이란://
* 토마스 홉스(1588~1679)가 표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서 따옴.

검은 개인 / 성윤석
부끄러운 일을 덮기 위해 또/ 부끄러운 일을 벌이고/ 부끄러운 일을 잊기 위해/ 다시 부끄러운 일을 한다/ 사업이 그렇고 혁명이 그랬고/ 문장이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나도 검은 개인으로 남을 것이다// 이 도시의 살롱 드 바에 가면/ 고리를 ........ 꼬리를 ....... 잘라야 한다/ 나는 나로부터 기어 나온 나의 고리를/ 만개가 자주 끼는 이 강의 도시/ 하수구와 시궁창을 흐르고 고이는/ 나의 고리를/ 검은 개인/ 내게 가는 길도 멀다/ 혀가 없어 목의 기관을 끌어내 놓은/ 바다 생선처럼/ 나에게서 살롱 드 바로 이어진/ 길고 긴 저녁이 생긴다// 너무 길다 이 저녁//

검은 개인 / 성윤석
흰 것들은 다 북극으로 가는구나 북극곰 북극흰 여우/ 북극에서도 북쪽으로 가는구나// 토끼도 없는데 얼음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으니,// 나 검은 개인/ 검은 무리가 아니라 검은 개인// 검은 것들은 갈 곳이 없구나 검은 곳에선// 간다 해도 다 똑같은 흑염소가 되니// 겨우 흰 것들의 코와 눈 발바닥으로 가는구나// 나 검은 무리가 아니라/ 검은 개인// 북쪽을 많이 얘기했던 후배 시인의 장례식장 나 검은 개인/ 북극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가지고 갈 것은 살아서 꾼 꿈뿐// 그 꿈마저 흰 곳으로/ 흰 곳은 언제나 북쪽이었으니// 아침마다 흑염소즙을 쭉쭉 마셔대며// 나 검은 개인/ 어떤 사태도 끌어만고 밥을 먹는 사람//

아우가 죽었다 / 성윤석
나는 이 모든 일이 영화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기절했으며/ 조문객들은 낄낄대며 술추렴을 했다./ 바람 부는 언덕에 상복을 입은 여섯 살 세 살 조카가/ 서 있었다./ 흔들리는 미루나무가 아이들을 거느린 그런 풍경이었다./ 대차에 실려 나온 아우의 흰 정강이뼈/ 아우는 연기를 정말 잘했다./ 나는 극장 통로를 천천히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 극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있었다./ 모든 작은 방들의 예쁜 밥솥들이/ 눈에 찍혔다.//

지상에서 2 / 성윤석
앞만 보고 갔다네/ 언제나 공사 중, 공사 중인 이 세상/ 맨홀에 빠질 뻔했다네/ 어두컴컴해서 배후가 보이지 않는 맨홀/ 우리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집과 집을 잇는 송수관이 보였다네/ 그래도 나는 걷는다네/ 도처에 있을 맨홀/ 그래서 더 우리가 다치지 않는지도/ 모른다네 동굴 같고 다락 같고/ 요나의 고래 뱃속 같고/ 한번 멋모르고 빠지면 깊게/ 들어가 온몸이 망가지는 심연 같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맨홀이/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며 산다네/ 한 번씩 뚜껑을 열고 세상을 쳐다보는/ 맨홀 내 심연은 어디로 갔나/ 여기에서 먼가//

셋방 있음 / 성윤석
수갑도 없이 들어갔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간혹 햇빛에 널어 말렸고/ 붉은 벽들이 그려진 벽지도/ 발랐습니다/ 기껏해야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해서 들어간 감옥입니다/ 낡은 침대며 깨진 거울까지/ 미리 짐은 다 뺐습니다만,/ 심심해하실까 봐 버려진 화분/ 하나 업어와 살려놓았습니다/ 소철나무 화분은 거리에서 살며,/ 병따개며, 잘린 신용카드를/ 받아놓고 있습니다/ 혼자 살았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무기징역을 받은 감옥이지요/ 그까짓 노역형/ 앞으로 백 명의 설움쯤은/ 수면고문 만으로도 진술을 받아줍니다/ 사랑했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나는 모범수였고/ 다시 자유를 외치는 잡범들의 거리로/ 이송됩니다/ 뾰족구두를 따라가는 바람과/ 길을 가로막고 서는 오월의 바바리 나무들/ 이 감옥에서 살면,/ 집과 감옥이 모두 나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조그만 창밖을 바라보며/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하면 먼 곳에서/ 길들이 두텁게 이곳으로 흘러들어 오는/ 게 보입니다/ 갓 출소해 어두워진 도부를 씹는/ 별들도 보입니다/ 어두컴컴한 벽을 질러야, 갈 수 있지만,/ 나한테 똥 싸고/ 검사도 되고 의사도 되었다고/ 깨진 변기가 늘 꼬르륵 목이 잠기는,/ 밤하늘도 잘 보입니다//

붉은 달 / 성윤석
모서리가 많은 집에 살고 싶다고 했던가 네가 말한 게/ 붉은 달 아래에서 불쑥 생각이 났다// 이탈리아 상인이 먼저 시작했다는, 부셔버린 좌판을 뜯어 와/ 수협공판장 바다 앞에서 불을 피우는/ 중국 어부들과 마주쳤는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바다 앞 아파트로 이사 온 것뿐// 작은 방에 큰 아이/ 작은 방에 작은 아이가 잠들어 있고// 모서리를 지나면 다시 모서리가 나오고/ 모서리는 계속되는데// 공포는 산 자들의 것이지/ 삭아버린 좌판을 부셔 버리고 사라지고/ 다시 좌판을 부셔버리고// 모서리 속에서 붉은 달을 본다// 월경이라, 시작한 곳이 없는/ 달의 좌판// 붉은 달 붉은 천들이 계속해서 나오던/ 너의 입술 속//

쑥 / 성윤석
나는 창문 숭배자였다. 자취방이 철거되자,/ 작은 창문을 들고 나올 정도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 얻은 집 창고에/ 넣어 두었던 그 작은 창문을// 어느 날 뒷산으로 가 묻었다./ 해마다 쑥이 돋는 자리였다.// 목성의 기호는 ®/ 쑥은 목성의 정기를 주머니에 넣고/ 아주 센 향을/ 얻는다고 들었지만// 다시 겨울이 가면/ 새로 솟을 쑥은 지난해 늙어/ 죽은 쑥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해마다 모두 내가 묻은 창을 닫고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창문은 다시 땅 속에서/ 조금씩 열릴 거라고.// 창에 비친 어둠의 깊이를 달고 나올 쑥들.// 나오며 박수를 치고 나오지 않았을까./ 지구를 지배하러 나오지 않았을까.//

저녁 / 성윤석
나이가 드니 내가 쓴 편지 글씨들도 겹쳐 보인다/ 벌레인 듯 기어 다닌다/ 바르게/ 고쳐 쓸 수도 없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저녁이 오면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지에 올리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밑으로 구겨 넣은 뒤/ 생각한다// 자기 밀밭을 가진 빵쟁이처럼, 약간은 오만하게// 생각하자 생각하자/ 반가사유의 자세로는 절대 똥을 눌 수 없으니//

당신의 입구 / 성윤석
물결이 물결을 밀어내어 물의 흐름을 쌓고 쌓아서, 해안은/ 이리도 가고 저기에서도 오고 있으니, 상인은 바다를 보고 서기는/ 바다를 기록할 수밖에, 자꾸만 밀려드는 당신의/ 걸음이 어디에서 멈추는가를, 나는 결코 미치지 않는 사내로/ 남아 당신을 기다리고, 바람이 비를 데리고 가서/ 웅덩이마다 항아리마다 당신의 눈두덩에도/ 가득 물을 채워 넣으니, 울기 싦어. 당신은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채운 채로 어두워져가고 늙어가네./ 한번 간 배 오지 말기를. 나무로든 철로든, 연금술로든 항구를 떠나는/ 배들은 스스로 먼저 젖어야 바다를 만날 수 있음을// 배 떠나네-/ 배 가네-//

밤의 화학식 / 성윤석
밤이 온다. 밤이 어둠을 받아 온다./ 당신의 밤엔 무엇이 많은가./ 그러니 모든 이들이여, 대답하라./ 살아 있어야 한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 그림은 성윤석 시인이 도식을 구상하고 장우희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

 

질소N / 성윤석
서서히 호흡이 줄어든 나무는 더 이상/ 산소를 만들어내지도 받지도 못했다/ 산소의 수치가 나뭇잎의 푸른 핏줄에서부터 말랐다/ 나는 나무의 그늘에서 더 이상 쉴 수 없었다/ 인공호흡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나무 의사는 돌아갔다 떠나며/ 나는 나무의 젊은 얼굴을 본 것 같다고/ 쓰고 싶었다 나무는 발끝에 저장해둔/ 질소를 버리고 어두워져갔다/ 나는 풀들과 열매들이 울음을 터뜨렸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래란 이런 일들로 가득하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티타늄Ti / 성윤석
녀석은.... 히키코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일 년 동안/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숫돌로 갈면 혼자서 흰 불꽃을 내는 저 금속처럼/ 녀석은 외톨이로 살았다// 음... 애니에서......... 가상현실........... VR에만 빠져 있어/ 일본 가서................. 혼자 살려면........ 슈퍼에도 가고/ 식당에도.......... 가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거기서는........ 잘 할 수 있겠다고,/ 다른 언어로는........... 잘 살 수 있다고.// 밖에 나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도 이젠.......... 다른 속도를 내는........ 언어가 좋다고/ 조금 느린............ 속도면 좋겠다고// 나도 다른 언어로...... 있고 싶고 가고 싶다고//

설탕 / 성윤석
그는 단 게 급해/ 설탕을 찾는다/ 고등어구이에도 설탕을 친다./ 섞일 수 없어 여기까지 왔다./ 어제도 상을 엎었고,/ 그는 자신이 쓰레기라, 모든 게 쓰레기로 보여/ 쓰레기라 했을 뿐인데/ 방마다/ 팔들이 나와/ 저리 가라고 내젓는다./ 설탕의 화학적 구조는/ C12H22O11/ 그의 마음은 번들번들 기름 같아서/ 물에 잘 녹기 위해/ 그는 설탕을 찾는다./ 설탕 같은 마음을 가져오기 위해서/ 네가 사는 세상과/ 섞일 수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너는 가버렸지만,// 제발 내 마음에서도 나가버리길// 아줌마 근데 설탕 좀 더 줄 수 없어요?//

멍게 / 성윤석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어부가 된 고양이 / 성윤석
어물전 간판을 어부가 된 고양이,라 써놓은 가게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 근처로 배달 다닐 때마다 이 세상을 후려쳐 파출소 간 게 미안해서, 더 이상 술 얻어먹기 미안해서, 헤어진 여자 곁에 사는 게 미안해서, 반월동 마산 바다 반달 하나를 팔뚝에 문신하고 원양선 타러 간 사내가 생각났다. 나도 그 사내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같이 간다고 해놓고 안 갔다.//

게 / 성윤석
게 한 마리/ 어쩌다가 공판장 나무 상자 톱밥 속에 묻혀 있다/ 갑갑해서 기어 나온 게 한 마리/ 어쩌다가 새벽 시장 중앙대로 한복판에 섰다/ 양쪽 집게발을 높이 치켜들고/ 집게발을 양옆으로 넓게 벌리고/ 게 안 마리가 어떻게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가를/ 게거품을 물고 몸소 묻고 계신다/ 눈알까지 부라리며, 최대한 벌리고 벌려// 이만한 세상, 아아 요만한 세상 하면서//

딸딸이라 부르는 이것 / 성윤석

내 영혼의 책상 위에 있던 방명록이 치워져버렸군 뜨거운 날씨 탓인가/ 가을이 와도 아무도 와서 이름을 적지 않겠군 누가 날 뜯어보고 버렸을까// 내가 다시 실어 날라야 할 나의 생선상자들에게 두 평 정도의 그늘을 준다 한들/ 당신의 고통조차 열네 박스의 생선상자 위에 얹어 둔다 한들 그리고/ 그 딸딸이 위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떨구고 나도 잠시 쉰다 한들/ 그 무엇인가가 나를 밀어 싣고 갈 리야 그 우엇인가가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여줄 리야//
* 딸딸이: 생선상자를 나르는 쇠수레

사랑 / 성윤석
나는 너와 불편해지기 위하여, 겱국은 불편해지기 마련인 사랑을 위하여/ 너늘 만나러 가는데, 너는 불편해지기 싫어서, 늘 편안한 상태로 있고/ 싶어서 나를 만나고, 나를 만나지 않고,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는 너와 헤어지기 위하여, 결국은 헤어지기 마련인 사랑을 위하여/ 너를 구두 뒷굽이 다 닳도록 생각하고 생각하여서, 너를 생각하는데/ 너는 헤어지기 싫어서 숨이 막혀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도망가고/ 도망하여서 어느 가파른 비탈길에 숨어 나오지 않고// 나는 너와 아프기 위하여, 결국은 아파서 떠나기 위하여 너를 보내러/ 가고, 보내러 가는데, 너는 웃기 위해서, 인형처럼 늘 웃기/ 위해서 나를 보내러 오네//

꽃과 생선 / 성윤석
아카시아 꽃이 피면 꽁치가 온다고 했다. 유자망들이 물살의 흐름에 따라 바다를 거둬가면 아카시아 꽃 피듯 꽁치의 입들이 그물에 핀다고 했다 아카시아 비린내가 꽁치의 비린내를 기다리는 거지 당신을 만나면 당신 생의 비린내를 끌어당겨 밤새도록 당신의 입술을// 빨고 싶었는데 만나서 만져야 사랑이었는데, 바라보면 당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바다가 길러 연근해 배들이 보내주었는데도 봄 꽁치는 늘 꽁으로 먹는 것만 같았다 산이 길러 다시 피게 하였는데 한 번 폭우에 아카시아 흰 꽃들도 사태져 내리는 게 사람으로서 미안했다 당신은 여전히 사라졌다 사라지고 있었다 수직으로 선 유자망 밤의 그믈들이 도처에 흘러다녔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꽁치가 온다고 했다//

상어 / 성윤석
마산수협공판장 1판장/ 상어가 누워 있다./ 오징어 오백 상자 사이에서 상어가 누워 있다./ 상어는 가끔 오랫동안 굶는다./ 굶어 상어는 상어/ 눈을 가진다./ 이놈도 오래 먹이를 먹지 않았네./ 상어 한 마리가 누워 있다./ 같잖은 수만 마리의 오징어 상자 사이에서/ 쳇, 하는 입 모양으로 누워 있다./ 나도 쳇, 하는 표정으로 가고 싶다./ 상어는/ 질주로 세상을 가른다./ 작은놈은 먹어치운다./ 가을 추석 대목이 가까워지자,/ 상어 눈을 한 사내들이/ 돌아온다./ 오래 굶은 사내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다른 이의 짐을 싣고 질주하는 것뿐이다./ 이들도 가끔 오래 밥을 먹지 않고/ 술만 마신다./ 가끔 상어 이빨을 드러내고/ 닥치는 대로 일행들을 물어뜯는다./ 굶어 사람도, 다시 떠날 힘을 얻는다./ 돌아온 자야, 떠나는 자야. 불러본다./ 당신의 어깨뼈 속에 들어앉아,/ 흐느끼고 있는 여자야./ 생에 답은 없다. 그러니 창고 가서, 창고에서/ 언 채로 잔다. 이제는 작업복이 되어버린/ 외투를 입고서/ 자거라. 모든 괴로움의 답은 잠이다./ 가서 자거라.//

바다 악장 / 성윤석
바다 곁에 살면 푸른빛을 얻는가. 어깨에 용 문신을 한 짐꾼/ 사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온다. 저 사내 생선궤짝을 자꾸만/ 엉뚱한 소매가게에/ 부려놓은 날은 여자가 죽은 날이었지./ 어떤 생애가 장어 골목 사이로 사라지고 해무가 뒤따라갈 때/ 바다는 머리를 풀어 눈 시리도록 시퍼런 파래 더미를/ 해안에 쌓고 구름이며 창문이며 바다에 나앉은 낡은 의자며/ 그런 것들을 붙잡고 바다 사람들은/ 멸치면 멸치를, 고등어면 고등어 좌판을 내놓는구나.// 음악을 건드려도 가라앉지 않는 상실감으로/ 떠난 후 다시 돌아온 짐꾼들이 얼어 죽은 생선들의 벌린 입을 다 모아,/ 바다의 비명을 들어보려 헤드셋을 낀 채/ 바다가 만든 방에서 일하고/ 바다가 꾸려준 침대에서 잠이 들 때/ 바다에 다시 돌아오면 푸른빛을 얻는가.// 새벽 푸른 입술을 가진 사내들이 고단한 아내들을 재촉하고/ 출렁거리는 가슴과 고무대야에 바다에게서 얻은 바닷물을 들이붓는 시간에/ 종이 생선상자를 함부로 뜯다가/ 죽은 생선들의 칼 같은 가시와 이빨에 찔리는 바다 밖 사람들// 바다를 떠나지 않으면 바다보다 더 푸른 빛을 얻는가./ 바다 재두루미 한 마리 물결 스티로폼 위에 외다리로 서/ 제 머리와 부리를 제 옆구리에 묻고 잠이 들 때/ 혼자서 돌아오는/ 한 인간의 영혼이여 당신도/ 바다를 만나면 바다보다 더한 바다를 얻는가.// 그때 물결/ 있는 대로의 제 높이를 다 드러내고 우는 바다//

도마 소리 /성윤석
된장은 끓고/ 양파를 써는지, 조개를 바르는지, 마늘을 빻는지/ 아득한 도마 소리/ 아닌 듯 들려와// 그 도마 소리 들은 지 오래/ 정신병원 요양병원 십수 년 창가에만 있다가/ 결국은// 울 엄마// 괘안타 괘안타// 그 도마소리 참 깨끗하고 맑은 소리// 다시 들려와// 그 소리 들리는 꿈에서// 한 백 년은 깨여나지 않는 꿈을 꾸었네// 집 밖에는 봄꽃이 모두 몸 달아 달리고 있었네//

손바닥을 내보였으나 / 성윤석
새로 이사할 때마다 밑이 꺼지고 천장이 뚫렸으니,/ 언제나 집 걱정은 안 하지 않았나. 짐도 작아져/ 어느 해엔 큰 가방 하나 들고 이사 가지 않았나.// 사람이 가버린 어느 해의 눈물도 어느새 많이 갔다 버렸으니,/ 적어도 남들보다는 봄꽃들과 가을 바다 저녁노을/ 강가의 안개 같은 것들은 더 많이, 더 오래 갖고 놀지/ 않았나.// 바닥이란 딛고 일어서는 것만은 아니질 않나, 바닥의/ 바닥 손바닥을 내보였으나.// 어느 어름밤엔 담 넘어 집에 가는 그녀의 희디흰 운동화를/ 받쳐주기도 하였다네//

바다傳 2 / 성윤석
바다 냄새를 제대로 맡은 사람은/ 집에 있질 못한단다/ 그 사람의 집이란 해초 밑/ 바다에 딸린/ 이름 없는 생선으로/ 잠만 자고 나오는 집일뿐이란다//

바다로 출근 / 성윤석
곤히 자느라 땀에 전 귀밑머리 아이 둘이 검은 바다 미역이 밀려들 듯/ 다가오는 밤을 뒤적이고 있는 새벽을// 새벽을 등지고 언젠가 데리고 놀러 갔던 천문대 망원경에서 손바닥에 담아 온 달 하나를// 창가에 걸어두고// 철제 대문은 오늘도 내 등 뒤에서 철컹 다시 한 번 철컹//

해파리 / 성윤석
​해월(海月)이라고도 불렀답니다. 바다의 달. 정약전은 유베지에서 얼굴과 눈도 없이/ 치마를 드리워 헤엄을 친다고 기록하고 있습죠. 달이 치마를 드리워 세상의/ 사람을 어디론가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이끌림과 당김을 향해 가게 하듯이 오롯이/ 바다가 뒤집어져야 해파리 떼들이 다시 사라지겠지만 오늘은 시월의 달이 너무 부풀어/ 저 빛의 치마를 견딜 수 없군요. 그래요. 떠나온 곳의 미련처럼 해파리 떼도/ 몰려왔군요// 그래요. 가고 있는 길의 두려움처럼 바다에 수만의 달빛 치맛자락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있군요. 저 꽃잎들이 간 곳을 내가 새롭게 기록한다면 달빛 하나 바람에/ 훅, 날려 당신 자는 곳 창가에서 휘날릴까요//

아귀의 간 / 성윤석
아귀의 간을 먹고 당신을 만나러 갔지만,/ 당신의 입술은 고개를 돌린 곳에 가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아귀의 간을 꺼내 먹고 당신을 만나러 갔지만,/ 당신은 다시는 나에게 입술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당신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알면서, 밥도 잠도 술도/ 저버린 채 아무것도 못하 한다는 걸 알면서/ 입술은 고사하고, 내 눈 속에서조차 망설이고 망설이는 당신입니다./ 나는 다시 아귀의 간을 삶아 먹고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이번엔 당신 입술이 돌아갈 그곳에 가 있기 위해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바다에 아직 아귀가 지천입니다.//

해무 / 성윤석
해무는 하나의 바다짐승이다. 비가 그치고 해무가 바다를 잇는 대교로/ 다가서자, 생선들은 마르고 여름이 다가온다. 야윈 전갱이의 내부를/ 들여다본 일이 있다. 생선들은 겨울이 와야 살을 찌운다. 여름에 잡은/ 것은 그나마도 살이 물러 맛이 없다. 무릇 잉태 직전의 생선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은 참 깨끗하고 맑은 해무를 만났다. 저런 해무로/ 집 짓고 살고 싶어 했으니, 그 안에 방을 들이고, 등불을 켜려고 했으니,/ 쯧쯧 떠나왔고 다시 떠나야 함이 당연한 말씀이다. 해무는 잠시만 있다/ 사라지는 바다짐승이다.까다로운 손님처럼 이 생선상자 저 생선상자/ 뜯어보자는 법이 없다.//

고등어 / 성윤석
마산 선창이다./ 부둣가 방파제에 아침부터 술에 전 사내가 간고등어처럼 누워있다./ 태평양의 끝에서 배을 열고 한여름의 사내는 그늘도 없이 널브러졌다./ 여자는 수시로 도리질을 하고 사내를 확인하며, 조개를 깐다/ 대합 살들은 아침 해의 살처럼 고무대야에 떨어지고/ 발로 차도 박살 날 것만 같은 생의 가게들./ 월명기(월명기)라 했나. 달도 너무 밝으면 고등어들은 흩어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했다./ 고기가 없어. 맞은편의 여자는 냉동된/ 고등어 내장을 파내며,/ 조개 까는 여자를 처다보고, 조개가 잠시 고등어 내장들을 쳐다볼 때/ 조개 까는 여자의 손마디 상처도 환해질까./ 고등어들은 갈비가 되어 저녁 술집으로 갈 테지만,/ 겨우 일어선 사내는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뱃전에서 방파제로 튕겨져 나온 고등어처럼/ 어리둘절 다시 바다를 쳐다본다.//

고등어 2 / 성윤석
딸아/ 고등어는 달이 너무 밝고 바다가 따뜻해지면/ 살이 마르고 입술이 부르튼단다 춥고/ 달이 어두운 저편에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살을 찌우지/ 딸아 자라다 보면 슾픔을 밥으로 먹고/ 설음이 책처럼 펼쳐지겠지만/ 사람도 춥고 어두울수록 아래로 내려가/ 영혼이라고 하는 걸 길러내야 한단다 그때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해//

명태 / 성윤석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내 엣 첫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복사꽃 그늘에서 바다로 걸어내려간 일이거나/ 흐려진 바다 상회들의 거리를 배회하며/ 노가리 코다리 명태 동태 황태 북어로 따로 이름 불리며/ 뜯기거나 얼리거나, 바람에 실리거나,/ 얼어 바닥에 내팽개처지는 일이거나,/ 가끔은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일만큼이나/ 횟집 수족관 유리에 비치는 것이었는데// 당신이 아는 사랑을 나에게만 애기해주길/ 나는 속앓이도 접고 바랐었는데// 오늘은 첫 마음 같은 이름 그대로 남고 싶어/ 불러보는 명태//

적어 / 성윤석
고등어는 파랗고 적어는 빨간/ 고기다 좌판 위에 나란히/ 깔린 고등어와 빨간고기 빨간고기는 아까라기도 하고/ 눈볼대라고도 하고 적어라고도 하는데 냉동된 빨간고기의/ 가시는 날카로운 창과 같아서 경력 수십 년 된 직원들도/ 손대기를 주저한다 대체로 손님들은 빨간고기 주세요, 해서/ 빨간고기다 나는 떠나온 서울에서 사람에게도 빨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다 사상이라는 말엔/ 원래 빨간색이 흐르고 있을까 철학은 흰색이고 시는 회색일까/ 별은 노랑이고 죽음은 검정이고 슬픔은 주홍일까 바다는/ 파랑으로 하양을 만들고 또 덮친다 당신은 무슨 색인가/ 파란고기인 고등어를 칼로 손질해보면/ 안다 파란 고등어의 피가 빨갛게 철철 흘러내리는 것을//

멸치 / 성윤석
봄꽃 다 떨어지고 오월 나무들은 바다와 같이/ 푸르름으로 마주 서고 공중화장실 거울을 보며,/ 야 이 개새끼야 스스로에게/ 소리 지를 때 생아. 내 젖통 내 젖통 하며 무거운 멸치젖통을/ 들고 뛰어다니는 거구의 일일상회 여자처럼/ 생아./ 메가리를 담은 종이 상자를 엇박자로 메어놓은/ 저 탱탱한 고무줄들처럼 생아./ 모든 약속들이 젓이 되어, 냄새마저 나지 않을 때/ 봄날의 간지러운 언약들이 다시 수만의 치어가 되는/ 꿈을 나는 꾸는구나 어느새 그 치어들 한 마리 한 마리/ 눈알들도 기억하고 있구나 생아./ 고단함의 고무통에 비닐을 씌우고 하루 벌이를 주물럭/ 주물럭 거리는 저 여자처럼/ 생아. 언제 어느 곳에서/ 내가 당신에게서 튀어 오르는 당신 생각들을 외면하며/ 방파제 등대에 기대어 서서 쓴 편지는 결코 보여주지 않으리//

임연수 / 성윤석
사람이 된 생선이 있다/ 임연수라는 바다 생선인데 함경북도에 사는 임연수라는/ 이가 잘 낚았다 해서 임연수라고 부른다 임연수가 임연수를/ 먹은 셈인데, 임연수는 참 맛있는 생선이라/ 손님들이 매일 불러 사람 이름을 얻었다/ 임연수 씨, 당신과 포장마차에서 독대해/ 오늘 또 한 잔/ 당신은 사람처럼/ 나는 한 마리 임연수어처럼/ 누가 누구를 먹었는지 모를 때까지//

고래는커녕, / 성윤석
당신에게 준 내 마음을 당신에게서 돌려받아/ 얼리고 얼렸더니, 그 언 살들은 얼음 창고 구석에/ 처박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다시 당신의 바다에 흘려, 흘려보낸 내 유자망/ 그물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 나는 마시네,/ 대구리배(유자망 어선)들만 선창에 오고 가고/ 마시네.// 등 터져라,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의 등./ 고래는커녕, 흥!/ 내가 고래다, 흥!//

비 / 성윤석
오늘은 서쪽 바다가 지워졌다 왼쪽 어깨를 다친 채/ 바다 안개와 아침참을 먹는다 오래된 냉동창고/ 식탁 위에서 희미해지는 여명, 비가 내렸다./ 강도의 칼과 도둑의 복면처럼 빗줄기 너머에/ 있는 세월 속 고함들이 들리지 않는다/ 서쪽 바다를 다시 찾는데 누군가 그 바다 사라진/ 지 수십 년이라 할 때/ 도리질을 하며 어디론가 밀려가는 동쪽 바다/ 상회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 방울들이 입김에 맺힌 뒤/ 지금 이 순간도 언제, 어느 때의 시간이라는 듯/ 사선을 그으며 동쪽 바다마저 지운다.//

사람 / 성윤석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과 가졌던 비밀/ 이 생각나 동백이 진 것도 아닌데 한 번씩은 얼굴이 붉어졌다/ 뉸밫 하나라도/ 좋고 스치는 손가락과 손가락의 느낌이라도 좋다/ 가끔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자고 있는 내 얼굴을 한 번은 내려다보고 싶어졌지만/ 어떤 날 밤에서라도 웃고 있을 것 같아 그 모험은/ 손수건처럼 접어두었다 동굴을 찾아 이름을 버리고/ 목놓아 울다 사라지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까/ 금니라도 빼서 춤추러 가고 싶은데/ 요즘은 춤추러 가는 사람들이 없다/ 어느 새 긴 머리칼을 자르러 가는 사람은/ 헝클어진 존재를 잘라내고 혁명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가서 손톱을 소재하는 것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걸 가끔 나는 까먹는다//

 

고통 / 성윤석
성(城)에서 데리고 온 나의 개와 함께 옛날엔 홀려 밤새/ 걸어 다녔지만, 지금은 다시 홀려 그냥 스친다,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낮설어진 아침 바다// 조금 더 날이 가면 내 잠재운 긍지까지 상자를 뜯어 보여줄 수도 있다// 홀리지 않고, 나는 나를 견딜 수 없어 아무런 대상도 없이/ 내 어떤 살부터 찢어 너에게 보여줄까, 한들/ 니밖에는 볼 수없는 나의 피가 뱃전에 흘건할 것이다.// 날 다 아는 체하지 마라. 결국엔 감기 걸린다. 너! 하며 나를 데리고 갈 이도/ 나쁜인 것을.// 세월 참 빨리도 와서, 목구멍으론 안 넘어가.//

시간들 / 성윤석
고장난 전등처럼 웅웅거리는 시간들 오래된 구식 세탁기처럼 탈탈거리는 시간들 내 어머니가 앓았고 내 스스로가 드문드문 앓고 있는 숟가락 들 기분마저 없는 시간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가수가 있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골목길과 그 너머에 악다구니 같이 널부러진 플라스틱 같은 시간들 게다가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인간의 도구로는 건져낼 수 없는 시간들/ 내가 너무 오래 만지고 놀아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당신과의 시간들// 고장난 전등처럼 웅웅거리는 시간들/ 오래된 구식 세탁기처럼 탈탈거리는 시간들/ 내 어머니가 앓았고 내 스스로가 드문드문 앓고 있는 숟가락 들 기분마저 없는 시간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시월의 마지막 밤을 모래하는 가수가 있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골목길과 그 너머에 악다구니 같이 널부러진 플라스틱 같은 시간들/ 게다가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인간의 도구로는 건져낼 수 없는 시간들//내가 너무 오래 만지고 놀아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당신과의 시간들//

달방 / 성윤석
사랑에서도 나 설움 밖에 챙긴 게 없어/ 월세 같은 세월에 밀려/ 달방에서마저 달만 들고 나왔다네/ 월영동 반월동 완월동 신월동 두월동/ 달방들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 나 바다에 다다르면/ 천막 포차 꺼진 백열구에 내 달을 넣어/ 밤마다 물결을 타고 넘고 싶었다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헤드셋을 건 채/ 바다로 질주한 생도 있었다지 아마/ 나 어두워진 채, 떠나온 달방을 보고 있다네/ 밤마다 물결 밤마다 물결// 물이 결을 세워 솟아오를 때//

밤의 산책 / 성윤석
밤의 막은 어떤 것을 붙들고/ 저리도 펄럭이며 펼쳐지는가/ 어둠은 밤이 길러온 개, 곳곳을 쏘다니고// 갈라지고, 부딪치고, 으깨어지며/ 애틋함을 알게 되자마자 당신과 내가/ 서로 무서워져 버린// 밤의 산책길 그 길에 쓴 편지는/ 내 고단이 어제보다 우아해진 달아 가 앉아 있다고// 사랑이란, 억새들이 흰 흐느낌으로 흩날릴 때/ 흩날리면 지는 것이어서// 늘 바람이 실어가는 당신 생각/ 실어가네/ 기약 없는 날에 떠넘기네/ 당신 생각//

목련 / 성윤석
발자크 씨, 나도 당신처럼/ 내가 글을 바친 여자 뒤에 숨어// 발자크 씨, 빚쟁이가 찾아오면/ 뒷문으로 수십 년을 도망다녔던// 당신의 아찔한 뒷골목을/ 나도 당신처럼 뛰쳐 달려나갔는데// 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하루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신 당신// 하루 수십 잔의 술잔을 비워도// 나는 당신처럼 일백 편의 장편소설을 쓸 수도 없고/ 당신이 쓴 일백 편을 다 읽을 수도 없으니.// 당신과 합께 달려 나가는 그 뒷골목에는/ 왜 그리 가계와 사랑의 난간들이 가파르게/ 구름에 걸쳐져 있는지// 무언가요?// 봄날 골목 끝에서 맞다뜨리던/ 희디흰 그 치욕들// 오히려 송이송이 꽃 피어/ 한 오후를 더 살고 싶던 오후//

바람의 문장 / 성윤석
추억이란 자신의 아둔함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러나 어쩌나. 학교보다는 어리석음을 먼저 배워버렸으니,/ 雲井驛에 와 나는 사라져버린 우물을 생각한다./ 우물은 구름이 되어 하늘에 떠 있다./ 바람이 데려가버린 우물./ 그 바람을 눈에 새겨 먼저 가버린 이를 나는 안다./ 식솔들이 뒤따라가/ 노잣돈을 녹순 문고리에 걸어두었으나/ 그는 구믐이 된 듯/ 내 어깨 위만 오른다./ 바람 속에서 누군가를 위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세월이 오고 있다./ 지난 일이란, 내 연못을 내어주었으나,/ 바람 부는 하천변 어두운 구멍으로 돌려받는 일./ 市井에 네 연못을 내어주지 마라./ 바람 부는 날 네가 앉을 물가 또한 없으리니.//

봄눈 / 성윤석
너무 늦게 온 눈은/ 너무 늦게 와서, 쌓인 눈에/ 앉지 못하고/ 나는 날 걷어차버린 네게 미안해서/ 손가락 두 개로/ V자를 만들어 보았지// 헤헤// 어떡하든/ 사랑아, 이제 너도 없구나.//

시장과 개 / 성윤석
오른쪽 뒷다리를 절룩이며 시장 대로를 오가는/ 저 개는 먹을 것이 없어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다// 재작년에 죽은 개의 주인이 시장을 오고 가며/ 저 개를 항상 곁에 두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루 수십 대의 오토바이와 물차가/ 오고 가는 시장 사이를 주인도 없이, 주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저 개가 시장에서 가고자 하는 곳은/ 여전히 주인이 곁에 있는 시장뿐// 나의 주인은 여전히 병중이시고/ 나 또한 시장 새벽 불빛에 매일 아파서,// 나는 저 개를 몰래 따라가본 일이 있다//

중력 / 성윤석
문제는 무게다./ 어떤 이에겐 구름도 무겁다./ 명자나무 꽃 위 부전나비는/ 하늘을 들어 올린 채 날고 있다.// 혼잣말을 하며 가는 사람 뒤를 걸으며,/ 나도 혼잣말을 한다./ 혼잣말이 나는 가장 무겁다./ 내가 나에게 말하고/ 짓눌린 채/ 한 번 대답도 못 했지.//

​경리외전(經理外傳) / 성윤석
경리는 침착했다. 새벽마다 외제 차에 도사견을 매달고 천천히 달리는 어느 사내에 대해, 눈에 핏줄이 터지는 어떤 밤들을 다루는 법에 대해 경리는 지켜보고 있었다. 경리 아닌 일이 없고 경리 아닌 자가 없는/ 어느 건물의 고요함에 대해// 경리는 생각했다. 회색의 계절이 오면 쓰는 자가 되어야지. 한 번 쓰면 말이 되고 두 번 쓰면 정의가 되고 세번 쓰면 소멸되어버리는 어떤 입술의 것들을. 경리는 그날따라 일찍 퇴근했다.// 경리는 납골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피스 차림이었고 죽기로 결정했고 죽고 난 다음의 세계와 매일이 늘 마지막 날이었던 세계와 매일이 늘 첫날이었던 세계를 조그만 항아리에 담아왔다. 그 항아리 안에 사탕과 돈을 넣어두면 영혼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경리는 사람을 찾으러 다녔다.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사람, 상대편에서도 아, 하는 소리가 나는 사람, 늘 먼저 가서 기다려버려서 만날 수 없었던 사람. 피아노처럼 피아노처럼 기다려야지. 중얼거렸다.// 경리는 산(算)하고 산한다. 산한 것들을 모아 계를 낸다. 날이 저문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산하고 산한다. 변할 게 없고 변하게 할 수도 없다. 경리는...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다. 경리는 산하고 산한다. 경리는... 산하고 산하면서, 산하지 않는다. 눈물을 가진 것들. 웃는 눈을 가진 것들은 산하지 않는다.// 경리는 느낀다. 어떤 아침에는 몸이 한없이 길어진다. 길게 길게 바다를 향해 길어지기도 하고 하늘로 치솟아 오르기도 한다. 어떤 날은 몸이 한없이 넓어지기도 한다. 넓어서 수심 오천 미터의 바다를 가둘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경리는 쓴다. 마침내 계절이 다했고, 계절이 다시 왔다. 반복은 계속 불빛을 켜는 것. 경리는 반복한다. 말을 아껴야겠다. 그 입 다물라. 의 입이 아니라 말이란 분홍과 붉음을 베어 문 입술의 일이라 생각하면서, 아, 아득한 봄날의 그 짧게 연했던 분홍과 붉음들의 일이라//

문선공文選工 / 성윤석
어떤 도둑에 대한 문자를 찾고 있어요/ 완성될 책이 작의적이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이 말도 여기서 배웠지만 세상에 작의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는 활자들을 뽑아들고 어디로 가져갈 것인가 이/ 물음은 오히려 우리 같은 이가 세상의 저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랍니다// 어떤 가을하늘의 빛에 대한 글자들을 찾고/ 있어요 휘발되는 글자가 아니라 쿡 쿡 찍히는/ 그런 자음 옆 모음들을요// 여기쯤에서 끊겼던 필름에 대한 문장을 찾고/ 있어요 뱉어 낸 핏덩이 같은 거// 활자들을 뽑아들고 창가 쪽으로 다가가는/ 그를 번번이 놓쳐요// 마음만은 늘 일분에 40자를 찾는 거죠 뭐/ 날아가는 거 말고 박히는 것을 찾아요/ 그래 봤자 발견되느냐 발각되느냐 그 차이/ 밖엔 없지만요//

극장에서 / 성윤석
뾰족구두 와이셔츠 밀치며/ 극장에 가면/ 우리 없는 세상은 어떨가 깜깜한/ 지충 한발 한발 밑을 요량하며/ 껌 씹으며 극장에 가면/ 밑바닥 꺼져/ 우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의자에 앉아/ 잠시 아팠다/. 잡음 내며 불 꺼지는/ 동시 개봉관에 가면/ 우리 사는 일도 번쩍번쩍 들어/ 올려질 것 같아, 일생의 북소리/ 바이올린 소리 탬버린이 흔들어대는/ 순간에 가면/ 사람들은 사랑과 정열만으로도/ 떠날 수 있고 누군가 복수를/ 꿈꾸는, 바람 불고 비 내리는/ 거리에 가면/ 나타났다 없어지는 죽음에/ 가면 우리 삶도 영화가/ 될까 새로운 필름을 예고하는/ 나날의 극장에 가면//

인디언표 티셔츠 / 성윤석
추장은 밤마다 옥상에 천체 망원경을 걸어놓고 하늘을 봤다 아마추어 천문협회 회원증이 그의 가슴에 빛나며 불고 작은 키, 그러나 추장은 우주의 블랙 홀을 날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에서 도시의 변두리로 변두 리에서 중심으로 시민들은 단숨에 법을 떨치며 도로를 건너가고 육교로 횡단보도로도 늘 건너기가 위험했던 추장의 그림자가 길게 지상에 깔렸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별똥 주위를 돌며 추장은 괴로운 생각으로 뒤척이며 잠들었지만, 아침마다 쏟아지는 뉴 모드 여름 옷에 박힌 자신의 모습을 한번도 눈치채진 못했다 그 여름 천체를 향해 연약한 화살 하나로 선,//

예고편 / 성윤석
다 들을 필요 없다/ 다 듣지도 않는다// 전반부/ 몇 페이지만 읽어도 몇 장면만/ 봐도 나머지는 짐작이 간다// 이런 인류가 없었다// 나머지 노래와 극 내용은/ 여러 버전으로 완성할 수 있다// 다 듣고 바로 내뱉는 그와 다 듣지 않고/ 알아버린 그가 밖에 서 있다// 우리는 외롭니?라고 묻지 않고/ 춥니?라고 묻는다// 우리 위에서 가장 높이 떠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한다// 다 보지는 말라고 다 듣지는 말라고/ 미리 보기/ 맛보기/ 예고편들의 파란은// 만장의 길이 된다//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관서 시인  (0) 2022.07.01
정윤천 시인  (0) 2022.06.30
박상률 시인  (1) 2022.06.28
임동확 시인  (0) 2022.06.27
임경섭 시인  (0) 2022.06.24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