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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苦雨) / 오횡묵

부흐고비 2022. 7. 13. 09:12
번역문과 원문


모든 일에는 중도가 귀하거니
즐거움의 끝에는 슬픔 또한 생기는 법
홍범(洪範)에 비 오고 볕 나는 것은 길흉의 징험이니
너무 없고 너무 많은 것 전부 흉하다고 하였지
가물 때는 비가 그리워 많이 와도 싫지 않다가
막상 많이 올 때는 그 근심은 또 어떠한가
농가에서 백로에 비 오는 것 가장 두려우니
한 뙈기 땅에도 지나치면 벼가 상한다네
조물주의 심한 장난이 어찌 편벽되었단 말인가
내 구름 타고 올라가 하늘에 고하여
비렴에게 짙은 구름 쓸어버리게 하고는
지팡이 짚고 외곽으로 나가 싱그러운 광경 보고 싶다네

萬事中爲貴 만사중위귀
樂極亦生哀 락극역생애
箕疇雨暘叙休咎 기주우양서휴구
極無極備均㐫哉 극무극비균흉재
旱時思雨不厭多 한시사우불염다
及到多時悶又何 급도다시민우하
農家最怕白露雨 농가최파백로우
差過一犂損稼禾 차과일리손가화
造兒劇戱一何偏 조아극희일하편
我欲梯雲上問天 아욕제운상문천
詔使蜚廉掃宿霧 조사비렴소숙무
杖藜出郭覩晴新 장려출곽도청신
- 오횡묵(吳宖默, 1834~1906) 《총쇄(叢瑣)》 5책 詩

 

조선 시대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의 문집이다. 《총쇄록(叢瑣錄)》 전체에서 시문(詩文)을 초선하여 수록한 24책의 괘인사본으로 현전하는 저자의 시문 선집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그러나 표지의 책차(冊次)가 어떠한 기준으로 순서를 정한 것인지 불분명하고, 권차(卷次) 역시 연결되지 않는 면이 있으며, 일부 중복 수록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정리 단계의 미정고본(未定稿本)로 생각된다.(글 요약 출처: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포털)

 

해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비에 여러 이름을 붙이곤 하였다. 계절 명을 붙인 춘우(春雨), 추우(秋雨) 뿐만 아니라, 매실이 익을 무렵에 오는 비를 매우(梅雨)라고 하는 등 시기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있었다. 또 상황에 따른 명칭도 있었다. 오랜 가뭄 끝에 오는 단비를 희우(喜雨)라고 하였고, 장마가 오래되어 지나치게 오는 비를 음우(淫雨)라고 하였다. 또 한해 농사일을 망칠 만큼 모질게 오는 비는 ‘고통스러운 비’라는 의미로 고우(苦雨)라고 하였다.

이 시를 지은 오횡묵(吳宖默)은 무과에 급제하여 관로에 들어선 후 정선, 자인, 함안, 고성, 지도 등 10여 지역의 수령을 지냈다. 위 시는 그가 함안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지은 작품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배경은 가을걷이를 할 때인 백로(白露) 무렵으로 보인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농사에 치명적이다. 박지원도 농업과 관련된 저서인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 ‘백로에 비가 오면 온 경내가 고통스러워한다.(白露雨來一路苦)’라고 기록하였다. 백로의 비는 그야말로 고우(苦雨)인 셈이다.

비는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너무 적거나 많으면 안 되고 딱 알맞게 와야 한다. 우리 삶에서 중도(中道)가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과거에는 수재, 한재 등의 자연 현상이 위정자의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는 정치의 득실과 국가의 치란(治亂)이 드러나기 전에 비[雨], 햇빛[暘], 더위[燠], 추위[寒], 바람[風], 때에 맞는 기후변화[時] 등의 징조가 먼저 나타난다고 하였다. 또 이 징조가 너무 한 가지만 나타나도 흉하고, 너무 없어도 흉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 해 농사가 잘될 수 있는 조화로운 환경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위정자의 올바른 정치 행위와 덕성의 함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횡묵은 홍범의 구절을 언급하여 재해를 초래한 원인이 위정자의 행위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위로는 임금부터 수령으로 있는 자신까지 자연재해 앞에서 하늘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함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고는 비가 안 와도 걱정이고 많이 와도 걱정이라며 직접 하늘에 올라가 조물주를 뵙고 바람의 신인 비렴(蜚廉)을 시켜 비구름을 쓸어버리게 하고 싶다고 하였다.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고자 하려는 지방관으로서 고뇌와 애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과거의 위정자들은 기후의 변화로 재해가 생길 때마다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고 스스로를 성찰하였다. 임금이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지어 올리게 한 구언(求言) 등이 대표적이 예이다. 이를 통해 재해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에 공감하고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며 시정하고자 하였다. 올해도 그야말로 고우(苦雨)가 내려 피해가 크다. 오는 비를 어떻게 막으랴. 그래도 위정자라면 재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했던 옛사람들의 자세를 본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글쓴이 : 김준섭(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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