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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면 여러 해 전에 길에서 만난 어떤 제자가 던진 시답잖은 질문이 가끔 머릿속에서 맴돈다.

오랫동안 공주에서 살다가 정년을 계기로 대전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해의 여름으로 기억된다. 삼복더위에 무슨 급한 볼일이 생겼던지 나는 낯선 거리를 땀을 뻘뻘 흘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지난날의 여자 제자를 만났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는 그쪽에서 인사를 안 하면 얼굴을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치는 일도 없지는 않다. 또 헤어지고 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만났던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기가 일쑤다. 그 제자도 그런 경우인 셈인데 다만 그때 나에게 던진 질문 한 토막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서로 근황을 묻는 인사가 끝나고 나자 그 제자는 나에게
"선생님은 여름하고 겨울하고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하고 물어온 것이다. 좋다는 말은 지내기 편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 근처의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데, 점심시간에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나를 만난 것이다. 더위를 몹시 타는 듯 땀을 주체 못하게 흘리며 여름이 지겹다고 푸념을 한다. 그래서 늙은 스승에게 응석을 부리는 셈으로 해본 질문인 듯싶다. 여름에는 겨울이 마음에 더 끌리고, 겨울에는 여름이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을 사람들의 변덕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닐는지 모른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생명력이 충만한 여름철과 휴면기인 겨울을 같이 놓고 견주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 한철의 폭염을 견딜 일을 생각하면 누구나 여름이 별로 달가운 기분만은 아닐 듯싶다.

나는 지금까지 두 계절을 견주어서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사실 조물주가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든 두 계절을 견주어서 어쩌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이 나이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다소 겸연쩍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여름에서 연상되는 것은 농촌에서 자란 회상이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 같은 또래들과 어울려서 물놀이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느새 긴 여름의 하루해가 저물었던 것이다. 그때는 어디를 가나 개울물은 맑고 깨끗했으며, 그 속에서는 별의별 어족들이 떼를 지어 놀았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시절의 그 정경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겨울에는 특별히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없는 것이 유감스럽다.

장성해서 겪은 나의 일생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두 사건도 다 여름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하나는 1945년, 조국이 광복되던 해의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때 일본군의 학도병 신분으로 용산 부대에서 복무 중이었다. 그런데 4월 13일에 같은 동족의 전우들과 함께 용산의 헌병대에 구금이 되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일이 있지만 중경의 임시정부로 망명을 모의하다가 탄로 났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의 뒤를 캐서 구속에 앞장섰던 자는 같은 동족의 조선인 헌병 놈이었다. 한 달 동안 헌병대에서 가죽 매와 숨통을 막는 물고문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다. 그 뒤에 군법회의의 예심을 거쳐 이태원의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해방되고 열흘만인 8월 25일에서야 풀려났다. 한여름을 고스란히 철창 속에서 갇혀서 죽어지내는 신세가 되었었는데 하나의 악몽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암울한 시련이었다.

다른 하나는 6·25 전쟁의 와중에서 겪은 피난생활을 들 수 있을 듯싶다. 동란이 발발하고 열흘쯤 지났을 때 나는 어떤 일 때문에 직장이 있는 공주읍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날로 고향으로 통하는 금강대교가 작전상 이유로 폐쇄되어 나는 그답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민군의 전위부대가 이미 고향 가까이까지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고향에 남아 있었으면 나의 신상에도 어떤 수난이 닥쳤을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피난길을 떠난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모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을 인공 치하에 남겨 두고 석 달 가까이 부산 바닥을 헤매며 겪은 심신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9월 말경에 연합군이 북진을 감행하자 나는 방위군에 편입되어 그들 뒤를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역사적인 9.28 수복이다. 그 뒤부터는 가끔 여름을 생각할 때면 나는 두 사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조금 빗나갔는데 길에서 만난 여자 제자는 꼭 나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한 질문은 아닌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삼복더위에 사제간에 우연히 만나서 동행을 하게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던 것이다. 실지로 나는 그때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운 여름이어서 겨울에 더 마음이 끌렸고 또 앞서 밝힌 암울한 회상 때문에 겨울 편을 들었는지도.

그러나 그 사건들은 이미 지난 일들이 아닌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석방'과 '수복'으로 이어진 일이어서 그것으로 자위해 온 터였다. 그때 나의 대답이 어느 쪽이었는지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지금의 나에게는 별 의미도 없는 일인 듯싶다. 이제는 앞으로 내 앞에 남아 있는 세월인지 네월인지에 더 관심이 있다고나 할까. 사실은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어 지금 당장 떠나도 별로 미련이 남지 않을 나이이기는 하지만.

어떤 성직자는 내세는 슬픔도 괴로움도 없는 청정무구한 세계라고 말했고,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갈파하는 스님도 있다. 두 분의 말씀이 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나같이 미련한 식충이들이 문제라는 말일 듯싶다. 어려운 듯하면서도 쉽고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내세관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생각이 난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짐승의 정체를 대라며 테베 산의 고갯마루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괴롭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뭇사람들을 가차없이 험한 계곡으로 떠다박질러서 물고를 냈다는 말도.

그 수수께끼는 오이디푸스가 인간이라고 풀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냐’ 하는 더욱 난해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리지 않아 인간의 고뇌는 지속된다든가. 그 해답은 어쩌면 각자의 몫일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일단 ‘한철의 짧은 여름 인생’ 이라고 결론을 내려본다.

사건으로 점철된 수다한 여름의 흔적을 한평생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인간을 하루살이 짐승으로 본 스핑크스보다는 많이 흔한 편이나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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