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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지의 대형 서점에 들려 보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극장보다도 큰 건물이 온통 새 책들로 꽉 차 있다. 국내의 서점에서 볼 만한 신간을 만나기란 있을 수 없는 일로 알려졌던 시절에 비하면, 책방에 들른다 하면 으레 외국책이 대부분인 헌책방 찾아다니는 것을 의미했던 젊었던 시절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신문이나 잡지의 광고란을 보아도 책 광고가 차지하는 면적이 결코 적은 편은 아니다. 일본 신문에는 책 광고가 많은데 한국 신문은 영화 광고와 술 광고가 판을 친다는 한탄의 소리가 들렸던 30년 전에 비하면, 대견하기 짝이 없는 발전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만 변화하기는 어려운 일이어서, 출판문화의 양적 성장이 오로지 경사스러운 기쁨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출판의 외형적 성장이 반드시 독서의 내실화와 병행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문 또는 잡지가 크게 선전하는 책들의 광고를 보면 대개는 같은 책 또는 같은 저자의 책이 거듭 선전되고 있다. 출판사 측에서는 잘 팔리는 책에 선전비를 집중 투자하게 되고, 광고에 많이 나타날수록 물건은 잘 팔리게 마련이어서,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한군데로 몰리듯이, 잘 팔리는 책으로만 독자들이 쏠린다.

만약 잘 팔리는 책이 곧 좋은 책이라면, 출판시장에 있어서의 자연도태는 바람직한 현상이 될 것이다. 내용이 우수한 책은 살아남고 시시한 책들은 자연히 밀려나게 된다면, 독자들을 위해서 그 이상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깊은 지식 또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책을 읽기보다는 재미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요즈음의 경향이다. 뼈대가 있고 깊이가 있어서 소화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책들은 경원당하는 반면에, 일시적인 즐거움을 약속하는 서적이 환영을 받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악서가 양서를 물리쳐 버리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어떤 여성 잡지의 편집을 맡은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잡지가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명심하여, 마음의 양식이 되는 훌륭한 교양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그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잘 팔리는 잡지를 만들라."는 상부의 지시가 성화같아서 지금은 부득이 흥미 위주의 잡지를 만들고 있노라고 실토하였다. 그 '상부의 지시'의 근원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나라 기업 생리의 한 단면을 잘 나타내는 서글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잡지와 잘 팔리는 잡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잡지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독자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잡지를 구독하기 마련인데, '좋은 글'이 많이 실린 잡지는 유익할지는 모르나 감각에 호소하는 아기자기한 맛은 적다는 것이다. 살기에 바쁘고 신경이 피곤하기 쉬운 세상이다. 가볍게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손이 나가기 쉬운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심리를 따라서 흥미 위주의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수요에 응해서 오락성이 높은 책을 만들어서 판다. 그 자체에 별다른 잘못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에게 오락은 필요한 것이고, 오락을 위한 책도 필요한 것의 하나이다.

그러나 삶에는 오락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고, 보다 중요한 것들을 위한 책은 오락을 위한 책보다도 더욱 귀중하다. 오락을 위한 독서가 독서의 전부는 아니며, 진실로 독서다운 독서는 오락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을 위한 독서이다. 오락은 독서의 부차적 목적이 될 수는 있으나 그 본래의 목적은 아니다.

어리석고 저속한 자아 슬기롭고 유덕한 자아로 키워 가는 일은 삶의 목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좋은 책을 읽는 것이니, 좋은 책 한 권은 흥미로운 책 열 권보다도 더욱 소중하다.

자아의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많은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옛날에는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하라."를 좌우명으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 많은 책을 빨리 읽는 것보다는 적은 책을 생각해 가며 읽는 것이 자아의 성장을 위한 현명한 길이다.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하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책을 쓰는 일은 경제 행위로서는 아주 바보스러운 짓이나 좋은 책을 한 권 저술하는 일은 만금을 버는 일보다도 더욱 보람된 쾌거이다.

옛날에는 저술자가 시간과 심혈을 아끼지 않고 글을 썼으며 현대에도 소수의 저술가는 계산을 떠나서 좋은 책을 쓴다. 위대한 고전과 값진 신간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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