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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엄마와 종이학 / 김향용

부흐고비 2023. 5. 10. 20:20

엄마는 요즘 매일 알록달록 작은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는다. 올해 엄마 나이 구십하나.

​엄마가 종이학을 처음 접기 시작한 시기는 2016년 봄, 내가 야간 M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다. 학교는 집에서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늘 대학 공부를 꿈꿔왔던 나는 쉰일곱에 어렵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만학도의 열정으로 2년 동안 개근했다.

​어느 깊은 가을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늦은 밤 11시가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는 그 시간까지 종이학을 접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 오니?” “저녁은 먹었니?” 엄마는 내가 집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접던 학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드셨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러 가는 딸의 고단한 생활이 걱정되어 종이학으로 지키고 계셨지 싶다.

​돌아보면 아득한 유년 시절이다. 엄마는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 오 남매를 키우셨다. 아버지 월급으로 일곱 식구가 살기에는 빠듯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후로 3년 동안 아버지 병환으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장티푸스 열병으로 몇 개월을 앓아누워 고생하셨다. 다행히 다른 가족들이 전염되지 않은 것은 엄마의 정성으로 밥그릇과 숟가락을 매일같이 삶고 소독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한번은 초저녁에 엄마와 가족들이 논두렁에 나가 후레쉬 불빛으로 개구리를 잡았던 기억도 난다. 아버지 보양식을 위해서다. 두 번째 닥쳐온 시련은 오래갔다. 평소 술을 좋아해 아버지가 간장염 수술로 인해 회복하는 일 년 동안 병원에 계셨다. 이때 엄마는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다고 했다. 아버지 병원비에 어린 자식들 때 거리 걱정에 막막했을 엄마의 나이는 삼십 중반이었다. 살면서 한꺼번에 큰 산을 넘어야 하는 고비마다 엄마는 가정의 가장으로 참고 견디셨다. 엄마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련을 이겨 내셨는지 지금은 우리 엄마가 훌륭한 분이시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엄마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많다. 검버섯이 드리워진 속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듯해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매월 25일이면 아버지 월급날이다. 엄마는 얇고 누런 봉투에 든 일 만원이 채 되지 않은 월급으로 제일 먼저 한 달 먹을 식량과 연탄을 샀다. 그리고 오 남매의 기성회비, 육성회비를 떼어 놓다 보면 한꺼번에 다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성적순으로 학교에 낼 회비를 엄마한테 타야 했다. 성적표를 받아 오는 날, 학년 전체 일등을 하면 제일 먼저 육성회비를 낼 수 있고 건빵 한 봉지의 보너스도 있었다.

​가난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엄마의 강인함과 사랑은 끊이지 않았다. 자식들이 원하는 학교를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늦깎이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두말없이 허락을 하셨고 밤길 운전하는 딸의 안전을 위해 종이학을 접으며 기다리셨다.

​한 마리 학이 완성되려면 정사각형 종이를 열네 번 접어야 날개를 편다. 접힌 선을 따라 손으로 서너 번씩 만져 다시 펴서 각을 맞춘다. 그 부분을 반듯하게 잘 맞추어야 마지막에 오뚝이 같이 선다. 졸업하기까지 2년 동안 무탈하게 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종이학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년 동안 접은 종이학은 수천 마리가 되었다. 엄마의 사랑과 마음이 담긴 학들을 유리병에 담아 오 남매와 이웃들에게 한 병씩 가득 채워 나눠 주기도 했다.

​엄마가 다시 또 종이학을 접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새해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힘들 때 엄마는 하루를 텔레비전 앞에서 학을 접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지난 번 보다 크고 두꺼워 질감이 다른 종이를 선택했다.

​엄마의 답답한 마음만큼 두꺼운 종이는 잘 접히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나는 문득 엄마 나이를 생각하고 오늘 접는 종이학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 9월 뜻깊은 소식을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시는 복지관 에어로빅 강사님께서 추천해 주신 덕분에 충주시 화제의 인물에 엄마가 뽑혔다.

​“종이학 접는 아름다운 손” 백세를 바라보는 망백(望百)의 나이에도 소녀의 감성을 품은 채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물 흐르듯 화내지 말고 살자’는 좌우명을 지키며 이제껏 살아왔다는 이 효신 씨가 그 주인공이다.

​에어로빅반 반장을 맡은 이후로는 책임감을 갖고 반원들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이 씨는 틈틈이 종이학을 접고 300~500마리가 되면 유리병에 가지런히 담아 이웃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충주시 예성신문 9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엄마의 종이학은 무언의 기도다. 오 남매 자녀들의 무사 안녕과 집안의 평안을 위하여, 매일 출근하시는 경로당 할머니들의 강녕을 위하여 손으로 드리는 기도다. 접히는 부분마다 엄마의 고단한 삶도 여러 번 접히고 풀며 힘든 고비를 넘겼다. 날개를 펴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

​책상 위 유리병에 담긴 종이학을 바라본다. 엄마의 주름진 손길이 어른거린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천 번, 수만 번 부르는 엄마라는 이름이 세상을 떠받쳐주는 무형의 대지가 아닐까, 그 대지를 믿고 이루고 싶은 꿈을 하나씩 이루며 세상 모든 자식들은 오늘도 건재하다.

​엄마는 마음을 담아 꼭꼭 접은 종이학이 누군가를 지키고 보살피며 행복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흐뭇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부자가 된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으신다. 

// 제29회 동양일보신인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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