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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등어 / 정성화

부흐고비 2024. 4. 25. 00:28

붉은 아가미를 헐떡이며 즐겁게 내달리는 고등어 떼를 TV화면으로 보았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아이들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물이 서서히 조여올 때까지도 고등어는 무리지어 유영을 즐겼다. 건져 올린 것은 고등어의 몸통일 뿐, 고등어의 푸른 자유는 이미 그물 밖으로 다 새어나가고 있었다.

싱싱한 고등어를 보면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동그란 눈 속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방추형으로 생긴 몸매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맵시가 난다. 짙은 색을 띤 등에는 물결무늬가 일렁인다. 제가 가본 바다를 기억하기 위해 고등어는 제 몸에다 그 바다의 물결을 새겨두었을까

고등어의 모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등과 뱃살의 대비다. 군청색을 띤 등은 눈부시게 흰 뱃살 때문에 마치 '눈 속에 묻힌 댓잎'처럼 보인다. 활기차고 명랑한 고등어는 죽어서도 그 기질이 변치 않는다. 냄비 안에서 누구를 만나든 쉽게 어우러진다. 무, 시래기, 묵은김치 등 저 혼자만의 맛을 고집하는 스테이크와는 영 다르다.

‘고등어’ 하면 나는 곧잘 남자 고등학생을 연상한다. 쫙 벌어진 어깨, 마음만 먹으면 태평양 한가운데까지도 헤엄쳐 갔다 올 것 같은 패기, 그리고 왁자지껄 더들면서 한테 몰려다니는 습성까지 그들은 왠지 고등어를 닮았다.

첫애를 가졌을 때 나는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교사 식당에 가면, 이틀에 한 번꼴로 고등어조림이 나왔다. 고등어조림이 지겹다고 불평하는 교사에게 고향이 남해라는 식당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고등어는 고등교육을 받은 생선이라 그 값을 톡톡히 할 테니 믿고 드시라고, 그전에는 나도 고등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비린내가 심하고 약간 떫은맛이 혀끝에 남는 게 비위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무와 함께 슴슴하게 조린 그 식당의 고등어조림은 정말 일품이었다. 무에 배인 고등어 맛과 고등어에 스민 무맛, 그중 어느 맛이 더 좋았느냐가 종종 교무실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고등어에 대한 ‘모태 애정’이 있어서일까. 아들은 제 애비와 달리 고등어를 좋아한다. 고등어조림뿐 아니라 고갈비도 좋아하고, 고등어 회 맛도 궁금해 한다. 성미와 몸매도 고등어를 닮았다. 책상에 진득하게 붙어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쏘다니길 좋아하는 것, 구속당하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점, 소파를 혼자 들 수 있을 만큼 힘이 센 것, 그리고 뱃살이 뽀얀 것까지 닮았다. 나는 그 애가 공부를 진득하게 하지 않는 게 늘 불만이었다. 내가 만일 그 애를 가졌을 때 고등어 대신 가자미를 즐겨 먹었더라면 어땠을까. 온종일 바다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있는 가자미처럼 어쩌면 그 애도 책상에 착 달라붙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가 도지 않았을까 싶다.

친정어머니는 언제나 연탄 화덕 위에 석쇠를 얹어 놓고 고등어를 구웠는데 고등어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파란 불꽃이 일었다. 검푸른 껍질이 부풀어 오를 즈음, 고등어는 자글자글 소리를 냈다. 뒤집는 순간 불꽃이 한 번 더 솟구쳤다. 바삭해진 껍질을 젓가락으로 벗겨내고 살점을 뜯으면 고등어는 훅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등의 살은 결을 이루면서 길게 뜯겨졌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등어가 상에 오른 날, 밥상은 그야말로 만선(滿船)이었다.

왜 하필 고등어였을까. 한창 클 아이들에게 넉넉히 먹이려면 값이 싸면서 살점이 많은 고등어가 적당했을 것이다. 몸에 힘 올리는 데는 그만한 생선이 없었으므로. 갈치나 청어에 비해 가시가 적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으리라. 아이가 생선을 저 혼자 발겨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가시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우리는 고등어를 발겨 먹으면서 세상의 가시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지 않았을까.

고등어조림을 한창 찢어발기고 있는데 고등어가 부산의 시어(市魚)로 결정되었다는 뉴스가 TV에 나왔다. 왠지 고등어살을 너무 심하게 찢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씩씩하고 활기차게 태평양을 누비는 고등어의 역동성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약하는 부산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조선 중기부터 이 지역의 특산물이 되어 가난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도와 온 고등어가 마침내 그 공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의 강한 자외선과 해풍에 그을려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약간 기름기가 도는 부산 사람들은 고등어와 싴크로율 백 프로다. 잡히는 순간 제 몸을 패대기치듯 버둥거리는모습도 부산 사람들의 거친 기질과 꽤 닮았다. 도시 곳곳의 포장마차에서 일 년 내내 고등어구이 냄새가 풍겨오는 걸 생각해도 당연한 결정이다 싶다.

제 살점을 다 내어준 고등어가 대가리에 등뼈 하나만 거느린 채 접시 위에 누워 있다. 당당해 보인다. 빼앗긴 자가 아닌 베푼 자로서의 여유로움이 보인다. 역시 시장(市長)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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