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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잠 / 김희자

부흐고비 2024. 5. 5. 02:52

연 이틀을 잠만 잤다. 때를 잊은 채 잠에 빠졌다. 동면하던 생물들이 기지개를 켠다는 경칩도 지났건만 잠 속을 파고들었다. 평소 늘어지는 성질이 못되니 수면시간도 짧다. 하루 네댓 시간을 자며 살아왔던 내가 이불 속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아보았지만 가라앉는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소태 같은 밥을 겨우 한 술 뜨고는 엉금엉금 기어 침대로 갔다. 창백한 낯빛이며 푹 꺼진 눈의 몰골,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정신이 흉하기 그지없었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전신까지 놓자 모든 것이 솜처럼 풀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을 빼고는 검불처럼 너부러져 잠만 잤다. 휴대폰도 멀리 했더니 무슨 일이 있냐고들 아우성이었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평소와는 다른 나를 별견하며 가만히 생각에도 잠겼다. 마치 엄마 뱃속처럼 따뜻하고 아무런 자극이 없는 곳을 원하는 사람 같았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몸을 작은 짐 꾸러미처럼 웅크린 채 잠속에 있고 싶었다. 잠 속에서 나를 세상과 차단하고 잠이라는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보금자리를 치고 둘째아이가 막 두 돌을 넘기던 날 다시 일터로 나갔다. 일을 시작하게 되자 삶의 긴장을 늦출 수 없이 분주했다. 삭풍이 불고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도 이린 두 딸을 유아원에 보내고 일자리로 내달렸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일을 하고 돌아와 어린이집 차에서 마지막으로 내리는 아리들을 마중했다. 매일 아침 씻기고 머리를 땋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하려면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한 남자의 아내와 두 딸의 엄마로,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며 쉴 틈도 없이 살았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는 낭만도 반납하고 흔들림 없이 질주만 했다.

바삐 달려온 세월이 올해 둘째 아이를 대학생으로 만들었다. 사 년 전, 첫딸이 서울로 떠나고 둘째마저 품을 떠나게 되자 나를 찾고 싶었다. 또 다른 길을 찾아 십 수 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도전하고 싶어 이틀 전에 뒤집기를 했다. 일은 끈을 놓지 않되 온전히 나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둔 직장에 대한 아쉬움이나 서운함은 추호도 없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떠나간 자리가 말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리를 청소하고 빈틈없이 인수인계를 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날 묵은 세월을 뒤로하며 긴 머리까지 잘랐다. 싹둑 자른 단발머리 또한 내게는 변화였고 도전이었다. 마흔의 절벽 끝에서 나는 도전장을 던졌다. 오랫동안 지고 있던 짐을 벗은 탓일까. 일을 그만두기 며칠 전부터 몸에 불청객이 슬며시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봄 몸살이 찾아와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겨우 이틀 주어지는 휴식이었지만 잠 속으로 빠져 외부 세계와의 관심을 끊었다. 외계에서 물러나 바깥 세계의 자극에서 나를 차단하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세상의 그 무엇도 알고 싶지 않았다.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없이 자유롭고 싶었다.

요양병원에서 새롭게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모두들 힘들 거라 입을 모았다. 우울해질 거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나와 가장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속이 요양병원이 아닌가. 유배지나 진배없는 아픈 노인들을 상대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 어지 나쁜 점만 잔재한단 말인가. 분명 그곳에도 좋은 점이 있을 것이고 배울 점도 있으리라. 두려움이 따르는 객기였지만 그 길을 결신하고 잠 속으로 빠졌다.

삶의 허기가 느껴질 때면 무언가에 빠져들었다. 뜻하는 바가 있어 잠은 늘 부족했다. 직장생활과 가사, 학업으로 몸은 마른 잎이 되어갔다. 빈틈없는 성격 탓도 한몫을 했겠지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존재를 기다리는 탓도 있었지만 꿈길에서 돌아왔을 때 내가 설 자리가 없을까봐 두려웠는지 모른다.

장자의 호접춘몽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언젠가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다. 내 스스로 아주 기분이 좋아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잠을 깨니 틀림없는 인간 나였다.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

우리 삶의 반은 잠이나 진배없으며 그 속에서 꿈이라는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경험하는 것이다.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꿈속의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꿈과 현실의 경계마저 초월한 장자처럼 나 역시 잠 속에만 빠져 있었다. 단 이틀간의 호사였지만 잠 속에 빠져 있어보니 잠만 자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잠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채워주고 허정(虛靜)의 시간으로 이끌어 꿈을 꾸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불을 털고 일어났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내일부터 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잠과의 그윽한 동침은 오늘로 끝이 나야 한다. 느슨해진 기운과 정신을 가다듬고 나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나의 감각을 깨워줄 수 있는 다정한 걸음처럼 나를 깨어줄 수 있는 일에 이끌려야 한다. 따뜻한 햇볕이 겨울을 밀어낸다. 남녘을 건너온 봄이 이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이정표처럼 들녘을 지키는 소나무도 겨우내 싸였던 먼지를 털어낸다. 내가 꿈을 꾸며 긴 겨울을 몰아내는 사이 봄은 벌써 와 문밖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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