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국 시인 전남 신안 어의도에서 태어났다. 공주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시와 정신》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했다. 2010년 《시와 사람》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새점을 치는 저녁』이 있다. 19회 오월문학상, 2004년 전태일문학상 수상. 광주전남작가회의 사무처장, 죽란시사회 동인. 새점을 치는 저녁 / 주영국 새점을 치던 노인이 돌아간 저녁/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도 새를 불러본다/ 생의 어디에든 발자국을 찍으며/ 기억을 놓고 오기도 해야 하였는데/ 난독의 말줄임표들만 이으며 지내왔다/ 누군가의 경고가 없었다면 짧은/ 문장의 마침표도 찍지 못했을 것이다// 생의 뒤쪽에 무슨 통증이 있었는지/ 진료를 받고 나와 떨리는/ 손에서 노란 알약을 흘리고 간 사내// 산월동 ..
딩동! 밤 9시다. 얼굴에 팩을 붙인 채 현관문 외시 경에 눈을 갖다 댄다. 모르는 얼굴이다. “누구세요?” “아랫집에서 왔는데요. 우리 집 천장에서 물이 새서요.” 다급한 내용에 벌컥 문을 연다. 두툼한 몸집의 여자가 집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아래층부터 담아온 말을 콸콸 쏟아낸다. “저기요, 오늘 밤 물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근데 혼자 사시죠?” 이 무슨 맥락 없는 질문인가. 마사지 팩을 뒤집어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른 시간이다. 검은 박스를 든 남자와 플라스틱 양동이를 든 여인이 찬바람과 함께 문 앞에 서 있다. 수도 공사를 하러 온 아저씨와 보조로 따라온 그의 아내다. 아저씨가 둥근 헤드폰을 끼고 방바닥 가장자리를 훑는다. 정밀한 작업에 방해될까 뒤꿈치를 들고 베란다로 나오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쉽지 않았다. 서울 맛을 본 뒤여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기는 싫었다. 비빌 언덕도 없으면서 오빠 집에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평창에 영양사 서류를 내러 간다고 했다. 영양사 자리를 같이 알아보러 다니던 친구였다. 그때는 영양사를 채용하는 회사도 많지 않았고 자리가 있어도 알음알이로 들어갔다. 절실하다 보니 ‘영업사원’ 모집광고도 ‘영양사’로 읽히곤 했다. 여행 삼아 친구와 평창교육청으로 갔다. 담당자가 고성군에도 자리가 있는데 나도 자격증이 있느냐고 물었다. 외국 무상급식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학교급식을 시작한 80년대 초였다. 전국 도서 벽지에 500여 개 급식학교가 있었다. 그 중 강원도에만 100여 개가 있었는데 도내에 식품영양학과가 없어 영양사가 모두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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