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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배우기20

만년의 절조 / 이만도 번역문과 원문 시중(侍中) 강감찬(姜邯贊)은, 경술년(1010, 현종1) 거란이 처음 침입했을 때 여러 신하들은 항복을 논의하였는데 홀로 파천(播遷)하여 회복을 도모하자고 청하였고, 무오년(1018) 거란이 재차 침입했을 때 상원수(上元帥)로서 서도(西都)에 나가서 교전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기니, 10만의 강포한 적들 중에 귀환한 자가 수천에 지나지 않았다. 거란이 전투에서 이처럼 심하게 패배한 적은 없었으며 시중보다 훌륭한 공을 세운 신하는 없었다. 그러나 개선한 뒤 곧바로 고로(告老)*하였고 임금이 친히 금화(金花) 여덟 가지를 꽂아 주자 배사(拜謝)*하며 감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니, 공을 세운 것이 훌륭한 점일 뿐만이 아니라 고로한 것이 더욱 훌륭한 점이다. 일흔 살에 치사(致仕)*한 일은 고려 초에.. 2022. 7. 20.
신지도(薪智島) 해녀의 숨비소리 / 이광사 번역문과 원문 상현과 하현에 파도 소리 줄면/ 해녀들 짝 이뤄 풀처럼 진을 쳐 돌아보며 옷 벗으라 재촉하고/ 허리춤 꽉 묶었는지 꼼꼼히 살피네 바다에서도 평지를 걷듯 하고/ 저마다 두레박 하나 끼고 있네 머리 숙여 발을 차고 입수하니/ 물에 사는 인어인가 의아하네 잠시 사이에 고요해져 그림자도 없으니/ 바다거북과 상어한테 잡혀먹히지는 않았는지 잠시 뒤에 보니 번갈아 머리 내밀고는/ 휘파람 불듯 숨비소리 내뿜네 오르락내리락 십여 차례 반복하더니/ 광주리에는 해산물이 가득 둘러앉아 해산물 헤아리는데/ 바위처럼 수북이 쌓여 있네 뛰어난 재주에도 천대받아/ 마을에는 함께 살지 못하네 중국 사람들 전복 크다고 자랑하며/ 손가락 몇 개 겹친 크기라 하는데 지금 보니 대야와 쟁반만 한 것도 있고/ 작은 것도 말 위의.. 2022. 6. 8.
요즘 아이들? / 윤기 번역문과 원문 부모 없는 사람 있으랴만 효자는 드물다. 人孰無父母 而孝者盖尠 인숙무부모 이효자개선 - 윤기(尹愭, 1741〜1826), 『무명자집(無名子集)』 책10, 「독서수필(讀書隨筆)」 해설 윤기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다. 5,6세에 한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하였으나 50대에 늦깎이로 과거에 합격한 인물이다. 독서수필(讀書隨筆)은 ‘책을 읽고 붓 가는 대로 쓰다’ 정도의 의미다. 무명자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면 멀리 나가지 않으며 나갈 때 반드시 일정한 소재가 있어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라는 『논어』 내용을 읽었던 모양이다. 글을 읽다가 세태를 돌아본 그는 “세상에 부모 없는 사람 없지만 효자는 드물다.”라고 한탄하였다. 세태가 어떠했기에? 멀리 .. 2022. 6. 2.
나를 위한 휴식 / 조익 번역문 내가 젊을 때부터 말로 다른 사람 이기기를 좋아해서 매양 다른 사람과 시시비비를 논쟁하거나 농담과 해학을 하면 바람이 몰아치고 벌떼가 일어나듯 하였는데 기발한 생각을 재빨리 꺼내 항상 좌중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곤 하였소. 내가 젊을 때부터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마을의 술꾼들과 무리를 이루어 거나하게 마시며 주정을 부려 더러는 한 달 동안 멈추지 않고 마셨고 쇠해가는 나이인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마셨다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젊을 때부터 사람들과의 교유를 즐겼고, 약관의 나이에 사마시에 입격하여 태학에 선발되어 들어갔더니 사방에서 태학으로 온 사람들이 해마다 수백 명이었는데 교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심지어 뼈와 살을 나눈 형제 같은 자 또한 적지 않았었소. 이것이 젊었을 때의 기쁨이자 내가.. 2022. 4. 20.
모두에게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 어유봉 번역문과 원문 팔딱거리며 냇물에서 물고기들 뛰어놀고 지천으로 산새들 울고 있는데 나만 홀로 무슨 일 때문에 묵묵히 괴로운 마음 품고 있는가 끝없는 아득한 천지처럼 쌓인 이 한 어느 때나 평온해질까 회옹(晦翁)께서 하신 말씀 세 번 되뇌어본다 “결국 죽느니만 못하다” 潑潑川魚戱 발발천어희 得得山鳥鳴 득득산조명 而我獨何事 이아독하사 默默抱苦情 묵묵포고정 穹壤莽無垠 궁양망무은 積恨何時平 적한하시평 三復晦翁語 삼복회옹어 終不如無生 종불여무생 - 어유봉(魚有鳳, 1672~1744), 『기원집(杞園集)』 4권, 「한식이 지난 후 풍덕의 묘소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다가 시절을 느끼고 슬픔이 일어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말 위에서 두보(杜甫)의 시구 ‘面上三年土 春風草又生’으로 운을 나누어 읊조리다[寒食後, 自豊德墓下.. 2022. 4. 13.
책 향기가 난초 향기보다 향기롭다 / 이황 번역문과 원문 다행스러운 것은 먼지 묻고 좀이 슨 책에 실려 있는 성현이 남긴 향기가 사람에게 난초 향기가 스며드는 것보다 더 향기롭다는 것입니다. 惟幸塵編蠹簡 聖賢遺馥 不啻如蘭臭之襲人. 유행진편두간 성현유복 불시여란취지습인. - 이황(李滉,1501~1570) 『퇴계집(退溪集)』 17권 「답기명언(答奇明彦) 갑자(甲子)」 해 설 이 편지는 퇴계 선생이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에게 갑자년인 1564년(명종19) 12월 27일에 보낸 편지로 『퇴계집』에는 절략되어 실려있고,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 2권에 좀 더 완전한 모습으로 실려 있다. 이때 퇴계 선생은 고향에 물러나 있었는데, 고봉이 서울의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갈 생각을 전해오자 쓴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퇴계는 .. 2022. 4. 6.
완전한 혼자라는 신화 / 서경덕 번역문과 원문 나는 그대가 언젠가 펼쳐질 것을 안다. 굽어 있던 것이 펼쳐지는 것은 이치의 형세이다. 吾知子之伸有日. 旣屈則伸, 理之勢也. 오지자지시유일 기굴즉신 이지세야 - 서경덕(徐敬德, 1489~1546), 『화담선생문집(花潭先生文集)』권2 「김사신자사(金士伸字詞)」 해 설 ‘화담 서경덕은 별다른 스승 없이 자연과 홀로 마주하여 씨름하며 학문을 깨우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天 글자를 벽에 붙이고서 면벽 수행을 하듯 깊이 파고들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한 그가 사망한 뒤 30년가량이 지나 조정에서 추증 문제가 거론되었다. 선조는 서경덕의 저서를 살펴보니 기수(氣數)에 관해 논한 바는 많으나 수신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했고 공부에 의심.. 2022. 3. 23.
파자시(破字詩)에 담아낸 신라 멸망과 고려 건국 / 이광사 번역문과 원문 창근(昌瑾)의 거울 갑(甲)보다 사흘 앞서 팔(八)과 근(斤)을 폈네 실 하나로 그물을 엮어서 마침내 옹(雍)에서 현(玄)을 부수었네 불길은 거친 언덕에 번져 풀을 태우고 시내를 마르게 하였네 숭(嵩)에서 산(山)이 달아나고 쇄(灑)에서 수(水)가 빠졌네 동(同)이 수레[車]에 앉아 있고 수레[車]를 세니 수레[車]가 없네 밝은 해가 위에 있고 유(由)에서 싹을 전부 뽑았네 근(謹)에서 언(言)을 줄이고 옥을 바탕으로 삼네 사람이 태양 아래에 서서 강한 사내를 얻은 것을 기뻐하네 인(仁)에서 인(人)이 돌아가고 사(詐)에서 언(言)이 빠졌네 관(管)이 관(官)을 맡지 않고 부(府) 깊숙한 곳에 거처하네 주(周)에서 용(用)을 버리고 오직 영(令)을 따를 뿐이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섰으.. 2022. 3. 9.
말과 소리 / 조긍섭 번역문과 원문 군자는 되도록 어눌하려고 노력한다. 어눌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蓋君子之欲訥於言者 非徒貴其訥也 貴其言而得中也 개군자지욕눌어언자 비도귀기눌야 귀기언이득중야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20권, 「눌재기(訥齋記)」 해 설 조긍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다. 경남 창녕군 고암면 출신이다. 생몰년에서 나타나듯 그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당대 영남의 대표 선비였던 곽종석(郭鍾錫)에게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성리학과 문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용한 글은 조긍섭이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 1861〜1940)에게 지어준 기.. 2022. 3. 2.
혼조(昏朝)의 권신(權臣)에서 절신(節臣)으로 / 일성록 번 역 문 이조가 아뢰기를, “충청도 진천(鎭川)의 유학(幼學) 박준상(朴準祥)의 상언(上言)에 대해 본조가 복계(覆啓)하였는데, 그 8대조 박승종(朴承宗) 및 그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관작을 회복시키는 일을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윤허하셨습니다.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은 말하기를, ‘박승종은 혼조(昏朝)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자 폐부(肺腑)와 같은 인척으로서 16년을 지냈습니다. 만약 그가 임금의 과실을 바로잡고 이의를 제기하여 잘못이 없는 곳으로 임금을 인도하였다면, 실로 생사를 함께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고 사라진 때를 당하여 한마디 말이라도 내어 천지의 경상(經常)을 지킨 일이 있었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혼조를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은.. 2022.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