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문과 원문 군자는 되도록 어눌하려고 노력한다. 어눌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蓋君子之欲訥於言者 非徒貴其訥也 貴其言而得中也 개군자지욕눌어언자 비도귀기눌야 귀기언이득중야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20권, 「눌재기(訥齋記)」 해 설 조긍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다. 경남 창녕군 고암면 출신이다. 생몰년에서 나타나듯 그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당대 영남의 대표 선비였던 곽종석(郭鍾錫)에게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성리학과 문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용한 글은 조긍섭이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 1861〜1940)에게 지어준 기..

번 역 문 이조가 아뢰기를, “충청도 진천(鎭川)의 유학(幼學) 박준상(朴準祥)의 상언(上言)에 대해 본조가 복계(覆啓)하였는데, 그 8대조 박승종(朴承宗) 및 그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관작을 회복시키는 일을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윤허하셨습니다.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은 말하기를, ‘박승종은 혼조(昏朝)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자 폐부(肺腑)와 같은 인척으로서 16년을 지냈습니다. 만약 그가 임금의 과실을 바로잡고 이의를 제기하여 잘못이 없는 곳으로 임금을 인도하였다면, 실로 생사를 함께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고 사라진 때를 당하여 한마디 말이라도 내어 천지의 경상(經常)을 지킨 일이 있었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혼조를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은..

번역문과 원문 열네 번째 오늘날 보건대 염치는 삽사리 배속에나 있네. 늘 제 밥그릇이나 긁을 뿐 부엌을 향해서는 앉지도 않네. 其十四 今日看廉恥금일간염치 靑狵肚裏存청방두리존 尋常櫟釜際심상력부제 不欲向廚蹲불욕향주준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권15 「갈역에서 이것저것 읊다(葛驛雜詠)」 해 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자가 자익(子益), 호가 삼연(三淵), 시호는 문강(文康)입니다.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청에의 굴복을 반대했던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며,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이었던 김창집(金昌集)과 조선후기 낙론(洛論)을 이끌었던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입니다. 부친과 큰형이 사화로 죽은 뒤로 일체의 출사를 포기..

번역문과 원문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나 너구리가 사는 수풀 속 돌에 이름을 새겨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아득히 날아가 버린 새의 그림자만도 못한 것이니, 후세 사람이 과연 무슨 새였는지 어찌 알겠는가?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㹳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대장부명자 당여청천백일 태사저저책 광토명저구 구구입석어림망지간 오리지거 구욕불후 막불여비조지영 후세과오지하여조야 - 조식(曺植, 1501-1572), 『남명집(南冥集)』 권2, 「유두류록(遊頭流錄)」 해설 남명 조식은 1558년 4월 10일부터 26일까지 지리산 ..

번 역 문 내 나이 쉰네 살에 오른쪽 잇몸 첫 번째 이가 아무 이유 없이 흔들리니 통증을 견딜 수 없기에 의원에게 뽑게 하였다. 느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쓴다. 내 나이 세 살에 네가 처음 나서 내 입의 빗장이 된 지 오십여 년이구나, 분쟁과 우호가 너에게 달려 있었고 음식의 맛을 너를 통해 알았지. 내가 한창 강건할 때는 너 역시 튼튼해서 말린 고기와 딱딱한 떡도 칼처럼 잘랐었다. 내가 항상 옥보다 더 귀중히 여겨 이불을 물어뜯지도 돌로 양치하지도 않았지. 원 문 吾年五十四, 右車第一齒無故動搖, 痛不可忍, 令醫拔之, 感而有作. 吾生三歲, 汝始生焉, 爲我口關, 五十餘年. 興出戎好, 職汝所爲, 酸鹹甘苦, 由汝得知. 吾方強健, 汝亦堅牢, 乾肉勁餠, 截之如刀. 吾常寶愛, 不啻珙璧, 不曾嚙被, 不曾漱石. -..

번역문과 원문 고을 수령이 되는 자는 아침에 바뀌고 저녁에 갈려서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는데 구실아치들은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변함없이 일을 맡으므로, 마음대로 부려서 늘였다 줄였다 함이 오로지 그들 손에 달려 있으니, 단지 장부를 숨기고 재물을 훔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세속에서 이른바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爲官者朝更暮遞 席不暇暖 而胥輩從少至老 任事自若 操縱伸縮 專在其手 非止絶簿書盜財物而已 俗謂江流石不轉以此 위관자조경모체 석불가난 이서배종소지로 임사자약 조종신축 전재기수 비지절부서도재물이이 속위강류석부전이차 - 이수광李睟光,1563~1629), 『지봉유설(芝峯類說)』 16권 「잡설(雜說)]」 해 설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
번 역 문 예산현(禮山縣)의 출신(出身) 현진국(玄鎭國)은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우애하며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잘 도와주었습니다. 작년 8월에 큰비가 내렸을 때 입암면(立巖面)의 들판이 온통 물에 잠겨 근처에 사는 백성들이 장차 물에 빠져 모두 죽을 염려가 있었는데 현진국이 사람들을 모으고 배를 빌려서 1000여 명을 구해내었습니다. 그러고는 물이 빠지기 전까지 5, 6일 동안 음식을 마련하여 먹이고, 물이 빠진 뒤에는 빚을 얻어 곡식을 구해다가 집집마다 나누어 주어 각기 편안히 살게 해 주었습니다. 전후로 들어간 비용이 거의 수천 금이 넘었습니다. 또 춘궁기에는 밥과 죽을 공급하고 돈과 쌀을 계속 나눠주어 원근에서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이름난 부자가 아닌데도 이렇게 의로운 마음에서 사람의 목숨을 ..
번역문과 원문 자리에서 일어나 한가로이 걷노라니 산이 깊어 누가 다시 이 길을 지났으랴! 산그늘은 온통 안개 낀 듯 어둑한데 숲속 눈은 절로 꽃으로 피었구나. 괴이해라! 소나무는 바위에 서려 늙어가고 가련해라! 부처는 암자 벽화 속에 많구나. 종 울리니 절밥이 다 됐나 보다 까악까악 까마귀들 쪼아대는 걸 보니. 睡起吾閒步 수기오한보 山深誰復過 산심수부과 峰陰渾欲霧 봉음혼욕무 林雪自開花 임설자개화 石怪盤松老 석괴반송로 菴憐畵佛多 암련화불다 鐘鳴齋飯熟 종명재반숙 啼啄有寒鴉 제탁유한아 - 박태관(朴泰觀, 1678~1719), 『응재유고(凝齋遺稿)*』 권상 「관음사에서[觀音寺]」두 번째 수[其二] * 凝齋遺稿: 朴泰觀의 詩集이다. 『응재유고』에는 김창흡과 이병연의 비평 27항이 실려 있다. 해 설 이 시를 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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