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문 적막했던 문 앞에 시종과 말이 가득하니 부족하게나마 상을 차려 신년 손님 대접하네 탁주 마다않는 임 파총(把揔)이요 떡국 맛좋다 하는 김 생원(生員)이네 羅雀門前僕馬闐 나작문전복마전 聊將薄具餉新年 요장박구향신년 不厭濁酒林把揔 불염탁주임파총 絶甘湯餠金生員 절감탕병김생원 - 이하곤(李夏坤, 1677~1724), 『두타초(頭陀草)』 4책 「새해 아침 장난삼아 배해체로 짓다[元朝戱作誹諧體]」 해 설 조선 후기 시인인 이하곤은 어느 해 설을 맞아 7수의 시를 지었다. 시 제목에서 보이는 ‘배해[誹諧]’는 풍자, 농담, 해학의 의미로,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고 유쾌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위는 7수 중 세 번째 수이다. 1구의 ‘나성문(羅雀門)’은 참새잡이 그물을 칠만큼 조용한 문이라는 뜻으로 찾아오는 이..
번 역 도적이 없다고 도적을 못 잡는 신하를 기르지는 않는다. 不以無盜而養不捕之臣 불이무도이양불포지신 - 조귀명(趙龜命, 1693~1737), 『동계집(東谿集)』권5 「오원자전(烏圓子傳)」 해 설 조귀명의 「오원자전」은 고양이를 오원자라는 인물로 의인화하여 쓴 가전이다. 작중에서 오원자는 원래 미천한 신분에 도적질까지 일삼던 금수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도적 자씨 일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오원자의 능력을 알아본 황제의 특명을 받고 도적떼의 소굴로 진격하여 일망타진하는 공을 세운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오원자에게 포상으로 고기와 가죽과 ‘오원자’라는 제후의 작위,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의 수장 자리를 하사한다. 그리고 오원자의 공을 치하하는 조서(詔書)를 내리는데 위에서 인용한 부분은 바로 이 조서..
번 역 문 한 번 웃으며 만나는 데 뭔 인연이 필요하단 말인고 쓸쓸한 마을 기나긴 밤에 홀로 잠 못 이루고 있네 오늘 아침에 도리어 쌍성(雙城) 향해 떠났다 하니 하늘 끝자락의 구름과 나무는 더욱 아득하여라 一笑相逢豈有緣일소상봉기유연 孤村永夜不成眠고촌영야불성면 今朝却向雙城去금조각향쌍성거 雲樹天涯倍渺然운수천애배묘연 - 이춘영(李春英, 1563~1606), 『체소집(體素集)』 상권 「미곶(彌串)으로 신경숙(申敬叔 신흠(申欽))을 찾아갔더니 경숙이 이미 떠났다기에 홀로 자다가 감회가 들다. [彌串訪申敬叔, 敬叔已去, 獨宿有感.]」 해 설 ‘만남’을 뜻하는 한자는 제법 많다. 우(遇), 봉(逢), 조(遭), 해(邂), 후(逅) 등등 소위 ‘책받침(辶)’이라는 부수가 들어가는 이런저런 글자들이다. 그런데 이 글자..
번역문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면서 빈둥거리는 내가 답답하였던지 처가 형제들에게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나에게 자리라도 짜라고 성화를 대는 한편 이웃 늙은이에게 자리 짜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하였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누르고 해보니, 처음에는 손에 설고 마음에 붙지 않아 몹시 어렵고 더딘 탓에 하루종일 한 치를 짰다. 이윽고 날이 오래되어 조금 익숙해지자 손놀림이 절로 빨라졌다. 짜는 법이 마음에 완전히 무르녹자 종종 옆 사람과 말을 걸면서도 씨줄과 날줄을 짜는 것이 모두 순서대로 척척 맞았다. 이에 고단함을 잊고 일에 빠져 식사와 용변 및 접객할 때가 아니면 놓지 않았다. 헤아려보건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는 됨직하니, 잘 짜는 사람에 견주면 여전히 무딘 편이지만 나로서는 크게 나아진 셈..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假)’와 ‘이(異)’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夫語眞語肖之際 假與異在其中矣 부어진어초지제 가여이재기중의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別集)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해 설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기 쉽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이다. 나는 박지원의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박지원은 「녹천관집서」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글 짓는 법’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더 나아가 ‘우리의 삶’ 혹은 ‘나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박지원은 이 글에서 옛글을 모방하여 글 쓰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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