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천년사찰 희방사를 감싸고 흘러가는 숲이 울울창창하다. 소백산 아래 고즈넉한 희방사! 불자들이 삼삼오오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이 해사한 잎을 흔든다. 흐르는 계곡물은 감로수처럼 신령스럽다. 숲 향기가 훅 풍기자 맹맹했던 코가 뻥 뚫린다.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향기가 숲 향기라 한다. 거대한 소백산 숲 향기에 온몸이 경쾌해진다. 희방사로 오르는 길에서 얻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 가슴 또한 설렌다. 자연은 늘 그러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좋다. 서로를 조화롭게 보안하는 자연이라는 웅장한 이치가 길을 나선 나그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들꽃 소소한 이 길은 생경하지 않다. 희방사에서 십 리쯤 떨어진 풍기에서 유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작로..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붕딤이산(부엉이산) 아래 가실마을은 단아하다. 아치형의 나무 터널을 벗어나자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다가온다. 널찍한 주차장을 지나면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성당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백 년 성상이 서린 가실성당이다. 가실성당 정문 앞에 있는 작은 녹원이 눈을 끌어당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잔디밭이며 잘 가꾼 수목이며 여느 집 뜨락처럼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이다. 한티재로 안내하는 표지판, 방문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담은 작은 집, 하얀 조각상을 중심으로 둘러쳐진 작은 나무들. 모든 권위를 내려놓은 주인장처럼 친절하게 나를 맞는다. 성당 앞 정원의 배롱나무 가지마다 붉은 꽃이 가득하다. 내가 찾는 배롱나무다. 오래도록 가실성당의 역사를 목도한 나무로..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예천 용문사는 소백산의 깊은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단풍나무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회전문 앞이다. 합장한 채로 자운루를 올려다본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회담 장소로 호국불교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호국의 염원이 응집된 소리들을 내 마음속에 받아 적으며 대장전으로 향한다. 용문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곧장 대장전을 찾았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그 자체가 보물이다. 대장전 안에는 4개의 보물이 모셔져 있다. 손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 2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남아 있고, 목각후불탱,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잠을 앗아 간 더위와 싸우다 문득 오래전 어머님이 장만해 주신 삼베 홑이불이 생각났다. 이제는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지만, 침대 위에 깔아 놓으니 등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렁인다. 며느리 여름나기까지 자상하게 살피던 어머님을 회상하며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 마을을 찾았다. 시골 동네는 겉보기에 고요한 듯하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줄기 속에 물과 양분이 끊임없이 이동하듯 내면에는 끈끈한 전통이 흐르는 기운을 느낀다. 마을을 안은 비봉산 산봉우리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산 아래로 비단 폭을 펼쳐놓은 것 같은 길안천이 너른 들판을 적시며 여유롭게 흐른다. 거리에는 인적이 뜸하다. 한낮의 맑고 투명한 햇살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농가의 이끼 낀 기와만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여보, 우리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울이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이렇게 속삭이며 당신 가슴팍으로 파고들면 언제나 당신은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어린아이를 두고, 또 둘째를 임신 중인 아내를 남기고 31살의 젊디젊은 남편이 죽었다. 편지를 쓴 여자는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였다. 구구절절 남편을 사랑한다는 원이 엄마의 편지가 460여 년을 잠자다가 남편 무덤에서 나왔다. 옆의 원이 엄마 무덤에서는 생전에 병중인 남편의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하필 장마철에 그 먼 곳을 간다고 약속을 잡았을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앞에 두고 새벽 창가에 섰다. 심상찮은 분위기다. 네 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기에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번뇌의 물결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훌훌 털고 나서 보니 어느새 팔공산 입구다. 마음이 걱정을 만들었다. 1천365개 계단을 알리는 푯말 앞에 섰다. 일 년이라는 숫자에 눈길이 머문다. 삼백육십오일 지켜주고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의미로 만든 계단일까. 그도 아니면 매일 고민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중생의 마음을 표현한 걸까. 계단을 다 오르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니 걷는 수고쯤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으리라. 정오에 가까워진 햇볕은 따갑고 깎아지른 듯 ..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지방을 밟고 넘는다. 바닥에 경사면이 느껴진다. 움푹 닳아 파인 면과 닳지 않아 불룩한 바닥 면이 시차를 두고 신발에 닿는다. 올려다보니 정문에 이인문(履仁門)이란 현판이 당당하게 걸려있다. 인(仁)을 밟고 있는 내 발끝이 잠시 무거워진다. 수봉정(경북기념물 제102호)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자리한 수봉 이규인의 고택이다. 수천 평 면적에 수봉정, 홍덕묘, 전사청, 열락당, 무해산방, 중간 사랑채, 안채, 곳간 등이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지형 따라 둘러쳐진 담장이 이웃과 인정을 나누었던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경북문화재로 지정한 후 수리한 공간과 세월 따라 무너진 담벼락에서 지난날 융성했던 가문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불국사 가는 한적..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솟을대문의 빗장을 푼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대문이 스르르 열린다. 오수에 잠겼던 고택이 기지개를 켜며 낯선 이에게 품을 내어준다. 천하의 길지, 운문산 시루봉 기스락에 자리 잡은 내시 종택이다. 조선 마지막 내시로서 정3품 통정대부를 지낸 김일준의 집이다. 국가 민속 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되었으며 운림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대문에 들어서니 왼쪽 편 큰 사랑채가 안채를 향해 날아갈 듯 서 있다. 대문 맞은편으로는 중 사랑채가 안채를 지키는 호위무사인 것처럼 가로로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 사랑채 마지막 칸에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인 중문을 달았다. 큰 사랑채와 중 사랑채에서 안채로 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내시 고택에 어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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